근데 학자형 군주는 역사적으로 보면 당대 또는 그 이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의 경우도 세종 이후나 영정조 이후 정치가 문란해졌죠. 모든 왕조에 다 적용되는 경우도 아니고 왕조마다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왕조 자체만 놓고보면 군주가 학문에 빠져있다는 것이 꼭 좋은건 아닙니다. 한쪽에 빠져있는 경우 다른쪽에 소홀해지거나 그쪽에 무관심한 경우들이 많아서죠. 그리고 공부에 빠진쪽보다 더 안좋은 군주는 예술쪽에 빠진 군주. 물론 이쪽도 예외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서 세종이나 정조를 조선시대 최고의 임금으로 생각하죠.
문제는 그 이후죠. 이건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와 관련해서는 영화 '사도'를 보고 한번 생각해보시도록. 물론 그 사례말고도 다른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전 도올강의인데 한번 봐보시도록.. 제가 위에서 한 것과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해당얘기와 관련부분으로 찝어놨으니 바로 보시면 됩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정무도 열심히 하고 당연히 격무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면 자연히 건강을 해쳐서 2세쪽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식교육이나 그밖의 궁중의 일에 소홀해질 수 있죠. 아니면 영조처럼 완벽주의의 경우 자식들도 여러모로 피곤해지죠. 제가 위에서 다른 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이건 주로 2세쪽과 관련된 부분이고 세종은 그러한 경우는 아니지만 아예 정치쪽으로 소홀해질 경우 같은 왕족들이나 심지어 자기 아들에게 암살되거나 찬탈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가지 잘 한다고 나머지 못하는 건 평범한 능력자인 경우에 한합니다.
평범인들이 비범한 사람들 까는 주논리중 하나가 저 사람은 공부를 잘 하니깐 다른 건 젬병일거야 같은 거죠.
세상이 자기 역량만큼 보이는 거죠.
그 사후 500년 가까이 나라가 지속되었는데도 학자형 임금의 한계라고 우기시지요.
남들에게 왕권을 빼앗긴 게 아닌데도 유약한 학자형 임금의 문제라고 우기시지요.
맏아들인 문종이 40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걸 모르고 왕위를 넘겨준 것도 학자형 임금의 한계라고 우기시지요.
친척에게 왕권을 빼앗긴 것도 아니고, 손자의 왕위를 첫째를 그리 따르던 둘째가 빼앗을 걸 예측 못한 걸 학자형 임금의 한계라고 우기시지요.
대마도 정벌이나 사군육진같은 국외 정벌을 한 거의 유일한 조선의 왕을 학자형 임금의 한계가 있었다고 우기시지요.
헐뜯으려 들면 누군들 헐뜯지 못할까.
지 건강관리 못해서 요절한 병딱 알렉산더나, 지 부하와 양아들에게 암살당한 등신 시저나, 영생하겠다고 생지랄 떨던 진시황이나 수많은 피정복민을 학살해대던 학살마 징기스칸이나, 자기 왕에게도 신임을 못받던 정치고자 이순신이나..
세종을 학자형 군주로 보는 게 잘못은 아니겠지만 꼭 그런 범주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자형'으로 불리는 군주는 문약하다는, 즉 학문에만 지나치게 몰두해 다른 분야를 소홀히 했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세종은 그런 부류는 전혀 아니었으니까요. 4군 6진 개척 등의 군사적 업적도 있고... 친정해서 뭘 해냈다면 학자형 이미지를 확실히 뗄 수 있었겠지만 당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었으니.
굳이 말하자면 국정과 관련한 모든 사안에 관심이 있었고, 또 어느 분야에서건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만능형이었다고 봅니다. 뭐 그런 범주를 설정할 수 있다면 말이죠.
세종과 정조 이후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선 원인도, 양상도 달랐지만 그거야 뭐 다들 아시는 얘기일 테니 패스.
학자형 군주???
이 무슨 신박한 멍멍이소리를..
요 바로 위 운드르님께서도 언급하셨고 상기 본 글타래에 언급된 것처럼 거의 모든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그야말로 하늘이 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나셨던 천재셨습니다.
그 업적만으로도 세계사 전체에서 상위 다섯 손가락 군주 안에 들어가실 분이십니다.
더군다나 그 업적의 동기가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애민정신이라 그 업적이 더 빛을 발하는겁니다.
이런 분을 학자형 군주(?)라는 뜬금포를 날리시다뇨 ㅡ.ㅡ
세종대왕은 학자형 군주라기보다는 학문을 하는 군주라고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실제 경연을 빠지지 않았고, 신하들과 회의하고, 설득하면서 정치를 했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거의 정치9단이라 할 수 있지요.
실제 신하들이 경연에 빠지면, 그날까지 반대하던 문제를 덜컥 승인해버려 신하들도 경연을 소홀히 할 수 없었자 전해지니...
거기다 인재의 활용도 대단해서 황희정승이 청백리는 아니지만, 업무능력이 상당해서 죽을때까지 일시켰다는 일화도 있고...
세종대왕은 정치를 잘하는 왕이었고, 거기에 학문에 대한 소양이 깊어 학문이 제도에 반영된 사례가 많아요
너무 안타까운게 문종의 건강이 평범하기만이라도 했어도 세종대왕의 버금가는 업적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분이셨음~ (세종대왕도 만성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세종대왕 후기의 치적은 거의 세자였던 문종의 업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님) 세조 또한 충분히 상급으로 쳐줄 수 있는 왕이며 카리스마 장난 아닌데도 형인 문종앞에서는 설설 기었음
심지어 공주들조차 뛰어나서 역사에 큰 기록이 없어도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울 정도... 그 정도로 자식교육도 잘시키신 분이 세종대왕이시고 자식들의 능력치도 뛰어난 편이었는데 문종은 수명이 짧았고 세조는 무리하게 왕위에 오르다보니 사회가 분열되고 그 과정에서 권신들에게 너무 많은것을 쥐어줘버려서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