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는 극단적 1:9형태의 공격 전술식으로 단순화 였지만
60년대를 지배한 본격적 자율적 공격형 전술이 브라질의 전성기를 이끈 4-2-4 이고
이후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네덜란드에서 토탈사커라는 신개념의 전술이 나왔지만
이는 네덜란더의 정서나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 당시에 다른 팀들은 이런 전술을 성공적으로 소화하기 힘들었던 상황이였군요.
이후 마라도나를 필두로 하는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보인 3-5-2 시스템의
본격적 미드필더를 강화 미들지역을 장악하는 압박 축구를 통한 공격으로 월드컵을 제패하면서 이후 중원 지역의 싸움이 현대 축구 전술사에 엄청난 그리고 기본 정석화되어 버림.
이때문에 90년대는 골 가뭄이 심할 정도의 기근 현상을 보였지만 하여튼
이런 마라도나의 엄청난 돌파력과 이들 아르헨티나가 보란듯 성공시킨 중원에서의 압박 축구는 이전 네덜란드에서 주로 성공한 토탈사커를 미들 강화의 전술을 통한 현대 압박축구의
본격적 보편화의 촉매제가 된것이 사실이군요.
2018 러시아 월드컵 2018.06.14 ~ 07.15 프랑스
2014 브라질 월드컵 2014.06.13 ~ 07.14 독일
2010 남아공 월드컵 2010.06.11 ~ 07.11 스페인
2006 독일 월드컵 2006.06.09 ~ 07.09 이탈리아
2002 한일 월드컵 2002.05.31 ~ 06.30 브라질
크루이프가 이끌던 네덜란드의 토탈사커를 보고 영감을 받은 아리고 사키가
토탈사커를 하고 싶어서 만든게 압박축구입니다.
이전까지의 축구는 공수를 완전히 나눠서 축구를 하는 식이었거나.
수비때는 전원이 일단 수비진영으로 완전히 복귀하여 2줄 3줄의 수비라인을 볼 뒤로 구축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토탈사커가 이 틀을 깨죠. 공격하다 짤린 지점에서 공격수가 바로 수비를 시작하는거죠.
다만 네덜란드 토탈사커의 전원수비 전원공격 이라는 개념은 당시에는 선수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형태였습니다. 모든 선수가 적절한 자의적 판단을 통해서 공수를 시도했기에
그런 판단이 가능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서만 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아리고 사키는 이 부분에 착안을 합니다. 그런 판단을 스스로 완벽히 할 수 있는 선수들을 구할 수 없다면.
전술적으로 그런 판단을 모두 전부 사전에 지시해버리면 되겠다는 발상을 하게 되죠.
그래서 필드 구역을 나누고 이 지점에서 볼이 전개되면 어느 포지션 선수들이 이렇게 움직여서 압박한다는 식으로 압박을 전술적 차원에서 시스템화 시켜버립니다.
이게 압박축구예요.
아리고 사키는 이 압박축구를 구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포메이션을 4-4-2 로 생각했습니다.
스위퍼 3백 시스템의 몰락이후 세계축구의 흐름이 된 4-4-2의 등장이 여기서 시작된거예요.
아리고 사키가 감독하던 당시의 세리에는 카테나치오로 대표되는 2줄 3줄 수비라인을 구축하는 형태의 축구가 주류이던 시절입니다.
수비를 그냥 뚫어서 공격을 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시절이죠.
애초에 그래서 사키가 이런 발상을 하게 된거지만요.
상대가 공격을 할때에는 최종수비라인외에 나머지 선수들이 전진한다는데 포커스를 맞춘겁니다.
최종수비가 볼을 간수하고 있을때에 이를 뺏으면 2,3줄 수비를 상대해야하는게 아니라
최종수비만 돌파하면 바로 키퍼와 1:1 찬스가 되죠. 이때문에 전방압박을 강력하게 하는 축구가 탄생해버린거예요.
여하튼 이러한 현대축구의 전술사적 흐름을 아리고 사키가 만들어내서
압박축구를 비롯한 이런 부분들을 사키이즘이라고 하고
현재에도 사키이즘을 벗어난 축구로 시대를 제패한 감독은 없습니다.
펩같은 경우는 아리고 사키가 아예 현대축구의 룰을 만들었다고 빨아대는 판국이고
클롭같은 경우도 아리고 사키의 축구에서 모든걸 배웠고 자기는 아직 그것도 제대로 못 따라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요.
멕시코 월드컵때 마라도나는 저 골 뿐 아니라 벨기에전 골도 멋있었음 저런 멋진 골을 허정무때문에 못 볼뻔 했음 당시 허정무가 마라도나 다리를 차고 걸고 심하게 다뤄서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영국,벨기에를 상대로 그림같은 골을 못 봤을테고 아르헨티나 우승도 없었을 거임 기술의 마라도나 스피드의 손흥민 둘 다 대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