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간 카밀리아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금과 같은 태평성대에서 무슨 더 바랄 것이 있겠냐 하겠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우리 카밀리아의 행보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자주 드나드는 일부 팬사이트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했음을 미리 말해둔다.
대개의 팬사이트가 그렇겠지만, 누구보다 팬심이 강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가 자랑하고픈 마음을 가진 팬들이 많을 것이다. 간혹 알게 모르게 그 팬심을 같은 소속원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종종 팬 유대감을 결속시키는 도구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이는 카라팬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팬사이트와 별개로, 열린공간을 지향하며 팬심을 발휘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여러 곳에서 자신의 스타를 알리며, 같이 사랑해주길 바라는 팬심일테다. 이 때, 이런 홍보활동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일반 대중이나 안티들이 등장할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다툼의 한가운데 설지도 모른다. 세력이 큰 팬덤이야 어느 사이트에서건 그 동지가 여럿 존재할 것이고 그만큼 수월하게 자신만의 힘을 과시하며 강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하지만 카라가 그만큼 큰 팬덤을 가진 세력도 아니고, 또한 카밀이 싸움을 즐겨하는 성향도 아닌지라 한두번 다툼이 있은 후, 바깥으로 걸어나가길 주저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다보면, 카밀 스스로 발을 팬사이트에 묶는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고, 결국 카라는 카밀이라는 한정된 계층이 즐기는 제한된 문화컨텐츠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더러운 꼴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눈팅이나 하련다...
수많은 카밀들이 뛰어 놀기에는 팬사이트라는 공간은 너무나 협소하고, 한두명의 말잘하는 유저나 컨텐츠제작자들만이 게시글을 독차지할 뿐, 대다수의 유저들은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 활동이 끝나버리는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댓글수는 줄어들고 게시판의 활기는 잃어가며, 컨텐츠의 양도 떨어지는데다가, 또다시 이런 현상은 눈팅러들의 발길마저 끊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시판이 살아숨쉬기 위해서는 기존 컨텐츠제작자들의 활동도 중요하겠지만, 더 많은 눈팅러들을 끌어들이고, 무엇보다 새로운 유저들이 등장해서 게시판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바깥활동을 자제하고 팬사이트에 안주하고 있는 한, 새로운 유저들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본다.
축소지향의 카밀이 아니다.
카라외의 그 무엇인가에 여력을 쏟고 싶지 않음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안으로만 안으로만 향하는 속성에는 문제가 있다.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로 이어질 수도 있음이다. 또한 더 발전적인 카라팬사이트의 모습으로 나아가지 못함이다. 가벼운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비틀거릴 수 있는 면역력이 약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더 넓게 나서야 한다. 모든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소통하는 공간이 한곳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다른 곳과 이곳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로서, 결코 커보이지 않는 나라는 존재의 역할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 연결고리를 타고서 카라팬사이트를 향하는 발걸음도 생기게 된다. 바로 이 때, 우리는 더 넓은 포용력이 필요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주 드나드는 발걸음을 멈춰 쉴 수 있게 만드는 포근함이 필요하다. 카라팬질이라곤 잘 모르는 어떤이의 설익은 발언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매질을 할 이유는 없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그러한가 먼저 알려주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것이 한번이 되건 두번이 되건... 수십번이 되건...
오래전 카게가 처음 태어났을 때, 수많은 라이트팬들이 진짜 카라팬으로 거듭나게된 이면에는 그들의 설익은 팬질을 나무라지 않고 도와주던 많은 카게 식구들이 있음에 가능했다.
야이 안티새퀴야 꺼져버려.
욕질하면서 내쫓기 전에 한번 더 고쳐물으며, 왜 그러한지를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팬의 입장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먼저 접근했다. 그래서 그곳에 자리잡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사람냄새가 나서 좋아요...
그렇게 한명두명 모였던 이들이, 이제는 엡카, 카게, 카말... 여러 카라 팬사이트로 흩어졌지만, 각팬사이트의 규모가 작아지지는 않았다. 기존 칼갤이나 공카에 있던 카밀들도 많이 찾아오기 시작해서, 그만큼 많은 카라 팬들을 끌어안아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부분이 문제다.
분명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그 정체성 또한 분명해야 했다.
카라팬이라는 정체성.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더 큰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카라팬사이트라는 정체성만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가치였다. 때문에 이를 두고, 더 넓게 포용해야 한다는 관점과 더 순수하게 카라팬이어야 한다는 관점은 늘상 부딪히게 되었다. 한 때 이런 관점차로 인해 각 팬사이트들이 서로간의 특성에 따라 유저들을 달리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조금 경계가 모호해진 감도 있고, 어찌보면 그런 특성을 다시한번 되잡기 위한 내홍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 새퀴는 안티가 분명해.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자들을 보듬으려는 유저와 내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유저간의 반목이 생겨서는 아니된다. 팬사이트는 어디까지나 카라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겠지만, 또한 그 팬사이트를 구성하는 '사람' 또한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같이 카라를 향해야 한다. 내가 앞서려 하면 그것은 이미 팬질이 아니다. 군림이다.
유대인이 아니다.
우리는 카라라는 유일신을 믿고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라도 카라팬으로 선택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카라팬이기도 하고 또한 다른 누군가의 팬이기도 하다. 내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 그 누군가를 책망하려 한다면 팬질을 접고, 종교지도자가 되는 것이 낫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지,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카밀리아는 가족이다.
그러나, 그 가족이 날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