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반응
HOME > 해외반응 > 회원번역 참여
[EU] 오은선씨는 식인귀가 아니다
등록일 : 10-05-21 02:37  (조회 : 7,330)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엘 빠이스는 스페인 최대 일간신문으로, 아래 사설을 통해 오은선씨를 바라보는
스페인 여론을 대략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은선씨는 식인귀가 아니다

ÓSCAR GOGORZA 27/04/2010

 

지난 1999년 등반가 후아니또 오이아르사벨씨는 안나푸르나를 마지막으로 8천미터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등반에는 엄홍길씨와 아시아 최고 여성 등반가로 꼽히는 동료 지현옥씨가 있는 한국 등반대도 함께 했다. 정상에 오른 그날, 지현옥씨도 현옥씨의 세르파도 최종 캠프 텐트로 복귀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정상을 밟았는지 아니면 그 전에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아니또를 비롯한 일행이 지현옥씨를 마주쳤을 때, 등반대는 현옥씨에게 주위를 돌아보라며 정상을 오르는데 필요한 시간을 훨씬 초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현옥씨는 고개를 저었으며 불행한 셰르파를 이끌고 등반을 고집했다. 현옥씨의 비보에 등산 애호 국가인 한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현옥씨의 모친이 전화를 걸어 정확한 딸의 사망 정황을 확인하는 동안 엄홍길 등반대장은 생애 최악의 15분을 감내해야 했다.

오은선씨(43세)는 그때 당시만 해도 여성 최초 14좌 완등이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물론 지난 97년 가셔브룸 2봉 등정에 성공하기도 했고, 또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존경하던 지현옥의 뒤를 이을 인물로 떠오르고는 있었다. 그러나 은선씨가 본인의 두번째 '8천미터 고지'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기까진 무려 7년이 걸렸고 국내 초점은 줄곳 지난 2001년-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았지만-14좌 완등에 성공한 박영석씨와 엄홍길씨에 맞춰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히말라야 공증인'으로 불리는 영국인 홀리 여사가 인증을 꺼려해 결국 로체로 발길을 다시 돌려야(재등정)했고, 엄홍길씨의 경우엔 이것도 모자라 시샤팡마까지 재등정해야했다. 이 비극은 오은선씨에게도 반복될 수 있다.

서방 세계는 그간 한국 산악인들에 대해 줄곳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심지어 세르파들은 한국 등반대를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과도하다 싶은 이들의 야심과 고지대에서 짐꾼을 부리는 데 서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럽 산악인들은 정상을 향해 돌격하는 한국인들의 이러한 '카미카제'식 관행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대게는 주위의 기대에 대한 압박감으로 히말라야 정복에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은선씨는 이러한 경멸어린 선입견을 넘어서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강인함을 지닌 산악인임을 증명했다. 지금껏 히말라야에 올랐던 이력에 자족하고 산을 사랑하는 후배들을 키우겠다는 생각에 안주하려는 순간, 또다른 등정을 갈구하고 기대하는, 뛰어나면서도 현실감각을 지닌 등반가임을 드러낸 것이다.

은선씨는 지난 2008년 단 5개월 만에 4개의 8천미터 봉우리(마칼루, 로체, 브로드 피크, 마나슬루)를 등정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는 극히 드문 일로 은선씨는 이를 계기로 당시 에두르네 파사반, 니베스 메로이, 겔린데 칼텐브루너가 독점하던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칼텐브루너씨의 경우 특히 정상에 이르는 방식과 윤리의식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방식을 놓고 보자면 은선씨와 파사반씨가 그간 구사해왔던 전략은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몇미터인지 구분도 안되는 고정 로프, 신장이 각기 다른 짐꾼을 고용하거나 숙련된 등반 대원들이 고된 노동을 한다는 점, 몇몇 고봉의 경우 출발지점(베이스)까지 헬리콥터로 이동한다는 점 등, 그야말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옛말에 틀린 게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2009년 낭가파르바트 하산 과정에서 은선씨의 동료 고미영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나, 파사반의 표현처럼 "매력적이면서도 비범한" 오은선씨의 강한 등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파사반씨도 한결 마음이 놓일 듯 하다. 자신의 라이벌이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었음을, 또한 자신이 그렇게 탐탁치 못한 인물(바스코 사람이라는 이유로 악인 취급을 받았다)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선씨 스스로는 산을 오르는 이유가 -나머지 경쟁자들처럼- 기록 때문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히말라야에 대한 은선씨의 집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스폰서의 압력과 또한 몇 달 전 울음을 터트리던 자신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압력 밖에는 달리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시 은선씨는 논쟁거리가 되던 칸첸중가 등정에 자신이 성공했다며 눈물로 호소했었다. 등반에는 심판이라는 존재가 없으며 따라서 판관 역할을 하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양심이었다. 그러나 14좌라는 목표를 향하는 이번 여자 레이스 경기에서는 실제 경기에서처럼 '통상적' 재판이라는 절차에 따라 순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인으로 생각이 깊고 진중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장 트로일렛씨는 80년 대 수차례 히말라야를 등정하면서 당시 과감하면서도 빠르고 앞서가는 방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동시에 그는 14좌 완등을 향한 남자 달리기 경주를 실제로 지켜본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쟁 끝에 왕좌는 레이놀드 메스너에게 돌아갔지만 트로일렛씨는 그 와중에 유명을 달리한 3명의 도전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트로일렛씨가 던진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여자들까지 그렇게 어리석은 줄은 젼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엘 빠이스


Oh Eun Sun no era un ogro

ÓSCAR GOGORZA 27/04/2010

En 1999, Juanito Oiarzabal tachó el último de los 14 ochomiles en el Annapurna, compartiendo expedición con un equipo coreano en el que figuraba Hong-Gil Um y la mejor alpinista asiática, su compatriota Miss Gi. El día de cima, ni Gi ni su sherpa regresaron a la tienda del último campo de altura. Imposible saber si la pareja pisó la cima o si pereció antes de hacerlo, pero cuando Juanito y su equipo se cruzaron con la coreana le rogaron que diese media vuelta haciéndole ver que había rebasado con creces el horario más prudente para hollar la cumbre. Obstinada, agitó la cabeza y siguió su camino, arrastrando consigo al desafortunado sherpa. La noticia de su muerte causó una fuerte conmoción en Corea del Sur, país que adora el montañismo: cuando la madre de Miss Gi telefoneó al campo base para informarse de las circunstancias exactas de la muerte de su hija, el líder de la expedición, Hong-Gil Um, pasó el peor cuarto de hora de su vida.

Oh Eun Sun (43 años) parecía entonces bien lejos de convertirse en la primera mujer en hollar los 14 ochomiles, aunque ya podía exhibir la cima del Gasherbrum II lograda en 1997 y se asomaba como el relevo natural de su admirada Miss Gi. Con todo, a Oh Eun-Sun le costó siete largos años adjudicarse el Everest, su segundo 'ochomil'y en su país los focos seguían apuntando hacia las figuras de Young Seok Park y de Hong-Gil Um, quienes habían completado la lista de los 14 'ochomiles' en 2001, no sin polémica. Ambos tuvieron que regresar al Lhotse y Hong-Gil Um , además, al Shisha Pangma cuando la 'notario del Himalaya', la inglesa Miss Hawley, no quiso concederles dichas cimas. Una triste historia que bien puede repetirse en el caso de Oh Eun-Sun.

Los alpinistas coreanos siempre han sido observados con recelo desde la óptica occidental, e incluso temidos por los sherpas, que conocen muy bien su ambición desmedida y su falta de tacto con los porteadores de altura. Entre los alpinistas europeos circula la preocupación por las costumbres 'kamikazes' de los coreanos en sus ataques a cima, muchas veces presionados por la expectación que genera sus incursiones en el Himalaya. Sin embargo, más allá de los tópicos despectivos, Oh Eun-Sun ha demostrado ser una alpinista tremendamente fuerte, amén de una excelente escaladora en roca, práctica que añora y que espera retomar en cuanto zanje su carrera himaláyica y afronte su sueño de educar a los más jóvenes en el respeto y el amor a la montaña.

Oh Eun-Sun fue capaz en 2008 de escalar cuatro ochomiles (Makalu, Lhotse, Broad Peak y Manaslu) en apenas cinco meses, algo al alcance de muy pocos y un esfuerzo que le catapultó en una competición que hasta entonces sólo ocupaba a Edurne Pasaban, Nives Meroi y Gerlinde Kaltenbrunner, ésta última mucho más preocupada por la ética y el estilo que por subirse al cajón más alto del podio. En cuestión de estilos, las maniobras de la coreana y de la vasca han sido similares: muchos metros de cuerda fija, varios porteadores de altura o alpinistas cualificados trabajando duro, traslados en helicóptero al pie de algunas montañas...Esto es, haciendo bueno el dicho: el fin justifica los medios.

Ni la muerte de su amiga Go Mi-Sun, cuando ambas regresaban de la cima del Nanga Parbat, en 2009, puso freno a la irresistible ascensión de Oh Eun-Sun, una mujer "encantadora y de lo más normal", a juicio de Edurne Pasabán, quizá aliviada al descubrir que su rival no era un ogro y que su figura (demonizada por el entorno de la vasca) no merecía tantas reticencias. Lo cierto es que aunque la coreana, como el resto de sus rivales, asegura que no escala montañas "para fijar récords", su bulimia himaláyica sólo se explica por la presión de su patrocinador y de la misma audiencia que meses atrás pudo verla estallar en llanto jurando que había hollado la cima del cuestionado Kangchenjunga. En el alpinismo, ante la ausencia de árbitros, la conciencia individual siempre ha hecho las veces de juez de paz, pero en la carrera femenina por los 14 parece haber tanto en juego que un tribunal 'ordinario' determinará las posiciones del podio.

Jean Troillet, suizo reflexivo y sereno, realizó en los años 80 varias ascensiones en el Himalaya impresionantes por audaces, veloces y adelantadas a su tiempo. De paso, fue testigo de la carrera masculina por hacerse con los 14 'ochomiles' y recuerda asqueado cómo la competición que entronizó a Reinhold Messner acabó con la vida de tres aspirantes. "Nunca pensé que las mujeres fuesen tan tontas como los hombres"", resume Troillet.


EL PAIS

 





해외 네티즌 반응 전문
가생이닷컴
www.gasengi.com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Creative Commons License
번역기자 : 이태원에서아침을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