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혁명을 통해 사회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 사회로 무산자, 노동자 계급의 나라로 만든다는 기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여러 사상이나 지식, 혹은 헤게머니가 모두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라고 간주하고 기존의 제도나 법은 오로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공산 진영의 국가들은 정규전보다는 유격전이나 게릴라전을 적극활용하기도 합니다.
전세가 불리하면 총동원을 통해 극복하는 것도 근대 국민주권국가의 전력전의 개념에 속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짖지 않고 민간인을 전장에 내 모는 것은 정규군을 보유한 국가의 전쟁 술책으로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과거 동양의 전쟁, 특히 우리나라의 수비전, 공성전, 청야전 이런 양상이 민관군이 합심하여 자신들의 터전과 가족과 이웃을 지킨다는 개념이었으나 이것도 사회주의 국가들의 게릴라전과는 비교가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 후 남쪽에 고립된 군대를 정치 교양을 통해 주민 포섭을 시키고 더불어 이들에게 무기를 쥐어 줌으로써 게릴라 부대로 후방 교란 임무르르 맞깁니다.
원래 게릴라 부대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민병대 혹은 저항 세력에 가까우나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빨치산'은 정규군과 같이 당의 명령과 정치 사상적 활동을 하는 별도의 군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전술은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을 어렵게 하고 본의가 아니게 빨치산을 돕는 그들의 가족이나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게 됩니다.
더욱이 후방 교란과 테러, 암살 등을 수행하는 이들은 그에 맞서는 정규군의 입장에서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전쟁범죄자들로 치부됩니다.
따라서 이들로 인해 유발된 피해가 다시 그들의 은거지 주민들에 대한 복수로 이어진 사례가 많았고, 이들로 인해 2000년대 이후의 전장에서는 민간인도 무기를 소지하고 있거나 무장세력을 도울 경우 적으로 간주한다는 전쟁 수칙을 만들기도 합니다.
과거 베트남 전쟁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념 확산을 목표로 민족주의를 이용한 전쟁으로 북베트남의 대규모 정규군은 물론 주변국, 그리고 남베트남의 베트콩 세력이 대규모로 이용된 전쟁이었습니다.
베트공은 북베트남 정규군의 무기 지원은 물론 정치 사상교육까지 제공 받은 남베트남의 불손 분자나 범죄자, 신분적으로 매우 가난하고 어려운 계층, 그리고 북베트남 연고자 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북베트남이 이들을 관리하고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후에 베트남 통일 이후 베트콩들은 '혁명 전사'들로 불리며 정치 사상적 선전선동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많은 베트콩 출신들이 훈장을 받고 당원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저명한 인사가 됐습니다.
과거 사회주의 베트남은 가난 등의 현실에 주민들이 동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 대한 정치 사상 교육을 실시하였고 사회주의 선전선동 수단을 위해 미국 및 미국과 함께 싸운 남베트남, 우리나라 등의 군인들을 악마화 하는 여러 사업을 추진합니다.
그 중 하나가 "증오비"로 이 증오비라는 것은 미군, 남베트남군, 그리고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잔혹행위를 고발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지는 비석을 말합니다.
이 비석은 당시 경험자의 증언이 있으면 고증 없이 건립이 되는데 대부분의 제보자가 베트콩 출신이거나 당원, 혹은 전쟁 유훈자들입니다.
우리와 베트남이 적극적으로 경제 교류를 하면서 이들의 베트콩 전략에 대한 비판보다는 혹시나 우리군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베트남 국민이 있다면 배상과 보상을 하겠다고 정부간 조사와 협력을 먼저 요청했으나 베트남 당국이 석연찮은 이유로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계속 정부적 접촉과 노력을 표명 했으나 실제 움직이지는 못 했고, 일부 민간 단체가 베트남 현지 활동을 통해 우리군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고 이를 우리 사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지인의 말만 믿고 제대로된 검증은 하지 않았고, 오로지 눈물만이 증거라며 우리나라 이미지를 셀프로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사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군의 잔혹 행위가 없었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산국가들의 게릴라 전술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애초에 그들의 비인륜적 전술에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휴가나 외출 나온 장병을 유인해 참수하고 이를 부대에 던지고 가는 행위는 전쟁범죄가 아닙니다. 그냥 테러 행위죠. 왜냐하면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에 대응해 베트콩을 잡아서 목을 자른다거나 성기를 보려낸다거나 하면 그것은 전쟁 범죄적 행위죠.
뭔가 일방적이기도 합니다.
베트콩은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그냥 테러분자일 뿐이지만 군인은 나라의 명령에 의해 총을 든 사람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규율도 많고 규제도 많죠.
그래서 항상 군인은 공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참전 용사들은 당시에는 젊은 혈기로, 혹은 베트콩에 대한 반발로 같은 수준의 잔혹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아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서전을 통해 그런 행위를 자백하고 공적인 반성을 하겠다고 하죠.
그것을 또 진보적 단체에서 이용해 이분들을 선전 무대에 세우고 우리군이 잔혹했으며 베트남 등에게 죄를 지었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행위는 '전쟁 범죄' 행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행동이며, 군 단위의 집단적 학살이나 잔혹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행위입니다.
군은 개인적 행동을 철저하게 금합니다. 사소한 통제 밖의 행동에도 보고를 하게 돼 있으며 처벌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인 한 명의 행동과 군사 조직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군 전체를 범죄자로 모는 것은 엄청난 비난 행위가 됩니다.
'베트콩에 맞서 동급의 잔혹 행위를 한 한국군은 잔혹하다.'
는 표현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며 우리군을 비하하는 발언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한국군 전체를 잔혹하다고 호도한 것으로 각개 병사들이 한 행동이 조직적 명령과 군의 구조적 행위 속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행위죠.
더불어 베트남 전 당시 한구군은 미군처럼 수색 및 정찰과 섬멸이라는 작전을 사용하지 않았고,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주둔지를 거점으로 안전지대를 확장하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미군철머 베트콩이 나왔다고 마음 주민을 추방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작전'은 없었고,
대민 지원과 대민 융화책을 통해 주둔지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 이들을 지키며 베트콩들을 고발하게 하는 작전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작전을 펼치는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했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표현이죠.
하지만 이에 대한 철저한 정부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통한 발굴 조사가 없습니다.
이런 지점에서 아직도 베트남은 '베트콩'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화뇌동하여 베트남의 책동에 동조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