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 북한 급변사태시 전세계는 북한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물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물질이 알카에다 뿐만이 아닌 티벳, 신장위구르 테러리스트들이나 체첸 반군들 손에 넘어갈 경우를 대비하여 중국과 러시아 또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논하였으면, 유사시 중국 혼자 북한에 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해 보겠습니다. 조중조약은 일반적인 형태의 상호방위조약이며, 한미연합사와 같은 연합군 체제를 명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군의 자동개입은 북한이 침략을 받고 있는 경우에 한정됩니다. (단, 조약에 의한 자동개입은 조약 자체를 개무시할 경우 그걸로 그냥 끝납니다)
1. 북한은 중국을 불러들일 수 없다
일단 북한의 입장에서 유사시 중국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을 신뢰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도와준답시고 내려온 인민해방군이 그대로 밀고 내려와 인민들을 ‘해방’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이러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조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됩니다. 중국군의 북한 진입은 로열 패밀리들과 그들에게 붙어살던 자들에게 있어서는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괴상한) 분들은 북한 권력층이 그대로 중국 측에 붙으리라 망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심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중국에 붙어 권력과 부를 보장받는다… 겉으로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과연 약속 그대로 이행되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북한 권력층에게 있어 더 이상 협상할 카드가 없어진 다음에도? 설사 미국이나 유럽연합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로 일방적인 신뢰를 보낸다는 것은 심히 비상식적입니다. 더군다나 김정일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중국을 믿지 말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보면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김정은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북한 권력층들이 그동안 저질러놓은 일이 많은 상황에서 중국은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북한 권력층들의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중국의 주인님들이 하는 말을 잘 듣는다면 말입니다. 중국이 토사구팽, 견토지쟁과 같은 짓을 벌일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헛소리를 철석같이 믿을 정도로 사고방식이 단순한 분이 계시다면 세상살기가 조금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연도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좀 높은 셈이니 말입니다.
여기까지 논하였다면 북한정권으로서는 ‘설사’ 급변사태가 터지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버리지 않는 이상) 중국의 개입을 요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에 ‘누가 들어오던간에’ 북한은 굴러들어온 돌에 의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중국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2. 중국은 멋대로 북한에 진입하거나 주둔할 수 없다
일단 한미상호조약과 주한미군의 개념을 바탕으로 조중조약과 조중관계를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한마디로 하자면 한미연합사가 뭐하는 곳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1975년에도 베트남 민주 공화국, 즉 남베트남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긴급한 시기에 사실상 정치적으로 남베트남을 버렸습니다. 더 이상 파병이나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내심으로는 무능하고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에 잠정적 사형선고를 내린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초짜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은 사실 오래 전부터 이러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개전 초창기부터 UN 사령부가 결성되어 UN 사령부에 모든 것을 위임한 상태로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은 구식 일본제 무기 외엔 가진게 X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병력의 질이나 훈련도도 심히 떨어지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시는데 UN군 사령부는 UN의 정식 보조기관입니다. DOD나 미합중국 대통령은 위임의 형식으로 집행기능만 할 뿐 직접적인 소속기관이 아님)
시간이 흘러 UN군 사령부가 해체되던 시점이 바로 월남이 패망하던 시점이었습니다. 미군도 힘들면 발을 뺄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이 합작하여 만든 것이 바로 한미연합사입니다. 한미연합군의 지휘통제는 양국이 협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작통권의 경우 대북 군사적 조치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을 겸하며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의 명시적 위임을 받아 한미연합군을 지휘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일단 대북관련 작전이 아닌 이상 양국군의 지휘통제는 완전히 별도로 이루어집니다. 흔히 떠도는 유언비어가 바로 미국 대통령이 한국군을 지휘한다는 것인데, 전혀 사실무근 개소리 입니다. 작전권 위임은 주한미군 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인 미8군 사령관에게 위임한 것이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왜 구구절절 썼는가 하면… 한미연합사의 (다소 복잡한) 운영 시스템을 안다면 아무리 동맹국이더라도 마음대로 타국으로 진입하는 것이 (다시 말해 주한미군이 한국에 들어오듯, 혹은 주독미군이 독일에 들어오듯) 그리 쉽지 않으며, 전시작전권 일부를 위임하거나 군사적 통행을 사전승인하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실병력을 이끌고 진입하는 행위는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침략 행위에 속한다는 겁니다.
결국 중국이 북한에 진주하려면 국제법상 북한의 승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침략국가로 낙인찍힐 뿐입니다. (합법적인 다른 방식대로 한다면 먼저 유엔안보리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상임이사국들이 하나라도 베토를 하지 않아야 결의가 발생합니다. 즉 중국이 혼자서 합법적으로 진입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유엔을 통해 진입하려면 미국과 필히 딜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1번 항목에서 말씀드렸듯 북한에 중국군이 넘실거리는 상황은 김정은이 절대로 피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힘이 완전히 빠진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구한말 각국 열강들이 조선을 기웃거릴 때 조선이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러시아와 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고,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와 러시아, 미국 등을 끌어들이고 삼국간섭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의 세력에 지나치게 기대면 망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3. 좀 설명이 지리했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중관계는 한미관계와 다르다. 따라서 한미관계를 대입하여 조중관계를 진단하는 것은 오류이다. 특히 가상의 조중연합사령부 같은 것을 상정하면 곤란하다
2) 중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진주하는 것은 북한정권에게 종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한정권이 그 정도로 중국을 신뢰할 지에 대해 심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3) 중국으로서는 혼자서 단독으로 북한에 진입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직접적 제재와 핵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하여 진입을 하고 싶더라도 합법적으로 하려면 필히 안보리이사회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침략행위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