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의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경쟁이나 관행은 익히 잘 알려져 있죠.
그 매체가 우파 매체든 좌파 매체든 국내 언론사가 해외 기사를 인용해서 기사를 올릴 경우에는 원문을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선동되거나 낚이기 십상이니까요.
제목부터 비교해 봅시다.
국내 언론 - "한국의 미국 군사기술 도용 심각"
F.P. 원문 - 남한은 미국의 군사기밀을 도용하고 있나? (Is South Korea stealing U.S. military secrets?)
원문 제목 어디에도 심각하게 한국이 기술을 훔치고 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해 제목을 선정적으로 뽑는 겁니다.
1. K-1 전차 관련 보도
헤이글 장관이 그 날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본 K-1 전차들조차 어쩌면 부분적인 모방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한국형 전차들의 사통장치는 미군 전차와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Even the tanks Hagel watched on the range that day may be partial knock-offs:
The Korean models have fire control systems that appear to be all-but-identical
to the American versions)
위에서 볼 수 있듯, 포린 팔러시(FP)에서는 "한국 무기들이 우리 무기랑 꽤 비슷하게 생긴 거 같은데 혹시 이거 우리 물건 베낀 거 아닌가?" 이 수준의 얘기를 하는 것일 뿐 "심각하게 도용했음"을 증거와 함께 확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2. K-1A1 전차 관련 보도 비교
국내 언론 - "K1A1 전차는 120㎜ 활강포, 업그레이드 된 전자 시스템, 최신형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고 있는데, 미국은 사격통제장치가 미국의 기술을 도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F.P. 원문 - 미국 관리들은 K-1A1 전차에 탑재된 사통장치가 미국 기술을 베꼈을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은 상품성이 있는 민감한 기술을 훔친 것이다. (American officials fear that fire control system aboard the K1A1 tank is
essentially a rip-off of its own technology, which, if true, would represent a
theft of a sensitive -- and marketable -- capability)
보다시피 원문에서는 "만약 사실이라면(if true)"이라는 표현을 넣고 가정법 조동사(would)를 사용해서 이게 가정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음에도 국내 언론은 이걸 팩트로 왜곡시켰습니다.
3. 해성 대함 유도탄 관련 보도 비교
국내 언론 - 미국은 또 우리의 대함미사일인 '해성' 역시 미국의 대함미사일 '하푼'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F.P. 원문 - 한국의 해성 대함 유도탄도 K-1A1 전차의 사통장치와 마찬가지다. (중략) 미 국방부 관리들은 한국이 해성을 개발하면서 사용한 제반 기술이 미국 기술과 매우 닮았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Ditto for the Koreans's Haesung anti-ship missile. (중략) Again,
American defense officials have raised concerns with the Koreans that the
technology upon which the Harpoon (해성의 오류) missile is based is very similar to the
American technology)
K-1A1에서 가정법을 이용해서 표현했는데 해성도 K-1A1과 마찬가지 (Ditto)라고 했습니다. 해성 얘기도 같은 분위기의 논조라는 겁니다. 뒤에 따라오는 문장들을 봐도 특별히 뭘 "심각하게 도용했다"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기술적으로 비슷한 거 같은 데 혹시...?" 이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터키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기술을 수출했을 때를 기억해봅시다.
터키애들이 한국이 제공한 기술을 이용해 '터키 독자 모델'을 만들어서 수출까지 했을 때 우리 언론이나 밀매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FP가 하는 얘기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았었고, 터키에 이젠 무기 팔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에 욕까지도 서슴치않고 나왔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FP는 훨씬 낮은 톤으로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정법으로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딱히 문제가 될만한 얘기는 아니고, 오히려 이제는 한국의 방산기술 수준이 미국 언론에서 신경 쓸 정도로 한층 더 높아졌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