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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7 19:39
[기타] 미군 역사상 최초로 적에게 포로로 잡힌 장군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4,953  

http://i2.ruliweb.com/img/17/07/27/15d830e76cf132bda.jpg

윌리엄 F.딘

 

2차 세계대전에도 연대장으로 참가한 베테랑

 

그의 연대는 포로가 적기로 유명한 부대였으며

 

그 역시 평소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바로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다니는 참 군인이었다.

 

그는 1950년 주일미군 미 육군 24사단장에 재임중이었으며 한국전쟁 발발후

 

인민군을 막기 위해 한반도로 급파되었다.




https://i1.ruliweb.com/img/17/07/27/15d830e7ac7132bda.jpg

그의 미24사단은 금강방어선-대전지구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국군이 전 전선에서 퇴각할때 그의 사단은 북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사단의 대전차 전력인 채피 경전차와 3.5인치 슈퍼바주카로는

 

인민군 T34-85전차를 막기엔 중과부적으로 24사단 역시 후퇴를 시작했다






http://i3.ruliweb.com/img/17/07/27/15d830ee267132bda.jpg

후퇴하는 중에도 그는 최전방의 대전차반에서

 

직접 수퍼바주카를 쏘아 전차를 격파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그의 대전차반은 12대의 인민군 전차를 격파했다

 

하지만 결국 미 24사단은 얼마가지 않아 와해되었으며

 

그는 소수의 병력과 후퇴하다 부상병에게 줄 물을 뜨러갔다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남은 병력과도 헤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약 한달 후 전북 진안에서 주민 한두규의 밀고로(수정함) 인민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혔으며

 

평양으로 압송후 탈출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 1953년 10월에 풀려났다

 





http://i3.ruliweb.com/img/17/07/27/15d831a889e132bda.jpg

??: 그냥 도망가면 되는데 왜 직접 싸우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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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 17-07-27 19:45
   
북진할려고 한적없고. 퇴각중에 잡힌거임. 직접 싸운건. 전차가 시내로 들이닥첬기 때문임. 한국전쟁사를 보면. 초기 전투지역에 전후방이 없었음. 전투지역에 돌파당해서 적부대가 본부로 들이닥치는게 부지기수 였음
치면튄다 17-07-27 19:45
   
당시에 도망가던 울나라 그놈보단 훨씬 훌륭한 분인데
한강철교 17-07-27 20:06
   
밀고자...
     
몽골메리 17-07-27 20:57
   
고자라니...
푸른능이 17-07-27 23:12
   
저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사람이 밀고하려던게 아니라 같이 남쪽으로 가다 우연히 북한군이랑 마주친걸로 알고있는데요.
그리고 이름은 기억안나지만 포로로 잡힌 미군 장성은 한국전쟁 이전에 여럿 있었습니다.
최초는 아니에요.
없습니다 17-07-27 23:31
   
포로로 잡힌 미군 장군들은 그 이전에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필리핀항복때 사령관인 웨인라이트 장군을 비롯해 다수의 장군이 일본군의 포로가 됐었죠.
없습니다 17-07-27 23:32
   
나무위키에도 나와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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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딘 장군이 포로가 된 사연을 보자면 여기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있다.

하나는 해당 사건 당시, 월리엄 딘 장군이 약간의 호위병력과 함께 피신하다가 전북 부안 산골 민가에서 휴식하던 중 포로로 잡혔다는 것이다. 이때 방에 들어가 쉬기 위해 군화를 벗었다가 북한군이 들이닥치자 군화 끈 묶을 시간이 없어서 맨발로 도망치다 잡힌 것인데, 뭐 군화 신었다고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전시와 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군화 함부로 벗는 것 아니라는 점, 즉 불과 수분이라도 전쟁 중에는 목숨을 좌우할 만한 심각한 시간 소모가 될 수 있으니 유사시에 대한 대비를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산 증거 되시겠다.

다만 이것은 북한의 자료가 딘의 포로됨을 비난하고자 하는 글에서 나오는 이야기로서 이상하게 국군 정신교육시간에도 퍼져있는 이야기이다. 일명 복장 단정하자는 것. 60년대 제작된 북한 영화에서는 그런거 없이 그냥 북한군이 몰려오자 철도변에서 찌질대다가 비겁하게 손을 들어주신다. 이 영화에서는 채병덕도 대전에서 사살되는 장면이 나오니 고증은 엿바꿔 먹은 작품.

하지만 딘의 회고록인 딘 장군의 이야기나 기타 일반적인 기록은 이와는 다르다. 딘 장군은 후퇴 중 운전병의 실수로 대구로 가는 길이 아닌 전북 부안쪽 길로 접어들어 부대와 분리되어 소수의 병력과 함께 산길로 이동하는 도중 식수를 찾다가 능선에서 굴러떨어졌다. 이때 머리에 자상, 어깨에 골절 등 부상을 입고 기절했고, 같이 있던 병력은 수색을 하다가 포기하고 떠나 대구에 있는 부대와 합류했다. 딘 장군은 중간중간 한국 민간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한 달 간 산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 전라북도 진안에서 민간인에게 밀고를 받은 북한군에게 결국 포로로 잡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딘 장군의 결혼기념일이었다 한다.

밀고한 사람은 북한군의 치하를 받고 딘이 가지고 있던 달러와 인민위원회가 보관한 쌀을 받았으나, 이후에 부역자로 끌려가서 결국엔 총살당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사람이 총살당했다고 하는 건 딘 장군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2차 매체로 다룬 70년대말 어린이용 전쟁 실록 계림문고판 한국전쟁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는 #와 같이 딘 소장을 밀고한 자는 전북 진안 운산리의 '한두규' 라는 사람이며, 밀고 과정중 딘소장의 부관을 사살 하였다 지역 수복 후 체포되어 복역하다가 딘 소장의 감형 탄원으로 출소하였다. 한두규가 밀고한 사유로는 인민군의 현상금을 탐냈다는 설과 전쟁전 반공청년단에 몸담은 전적이 있어 인민군에게 발각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것이라 판단, 자진해서 미국 장성을 넘겼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딘을 구하고 같이 가던 중에 인민군을 만나서 딘이 체포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북한군이 후퇴할 때 미국의 장군을 넘긴 죄를 지은 이 사람은 같이 월북하거나 도망가지도 않고 집에서 잡혔고, 이후 죽을때까지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이후 북한을 찬양하던 이들이 윌리엄 딘 장군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장성급 포로라는 괴설을 퍼뜨렸는데 사실 미국 독립전쟁 이래로 꽤 많은 장성급이 포로가 된 예가 많고 당장 2차 대전만 해도 필리핀에서 부대단위로 통째로 항복하는 바람에 조나단 메이휴 웨인라이트 장군이 포로로 잡힌 일도 있다. 이런 '미국 역사상 최초로 포로로 잡힌 미국장성' 얘기를 퍼뜨린 이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는 가히 알만하다.

참고로 딘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는데 그때 그의 사고방식은 전사하는 것보다도 더 굴욕적인 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었으며, 그가 지휘했던 사단은 적에게 잡힌 포로 수가 가장 적은 사단이었다. 그랬던 그가 전쟁 초반에 포로로 잡힌데다가 제24보병사단은 가장 포로로 잡힌 숫자가 많은 사단이 되어버렸다.

딘 장군은 1953년 9월에 조선인민군 2사단 참모장인 리학구 총좌와 포로교환되어 미국으로 송환될 때까지 포로로 북한에 억류되었다. 딘 장군과 포로교환되어 북한으로 송환된 리학구 총좌는 긴 기간동안 괴로워하다가 xx했다. 이때 북한군은 초고속으로 남진하기도 바쁜데 포로가 있으면 귀찮다고 다수의 포로들을 FM 소련식으로 두 손을 뒤로 모아 노끈이나 철사줄로 묶은 뒤[10] 무릎을 꿇린 후 총살해버렸다. 이 주검들은 그대로 길가나 산 속에 방치됐다가 나중에 유엔군이 북진할 때 발견되었다.

총살조차 할 겨를이 없으면, "동무! 이제 곧 조국 통일되는데 왜 도망가시오?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는 식으로 귀가를 권유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항복한 남한군이 집으로 돌아가는 척 하다가 남쪽으로 다시 도망간 경우도 있었다.[11]

하지만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북한군이 개전초기에도 한국군을 포로로 안 잡은게 아니라 잡히면 처형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한편 전세가 낙동강에서 고착되자 개전초기 한강철교 폭파로 대량으로 생포한 한국군들을 해방동무라고 하면서 상당한 인원을 북한군에 편입시켰다. 거의 1개 분대당 2명 비율이었다고 한다. 북한군 기록에 보면 절대 감시하지 않고 알아서 싸우게 했다고 하는데 유사한 맥락으로 봐 줄 수 있다.
https://namu.wiki/w/6.25%20쟁/전쟁의%20전개#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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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슈상륙 17-07-28 14:58
   
리..리승만..?
마이크만 봐도 알 수 있는 적전도주의 아우라
태강즉절 17-07-28 17:02
   
잡설 겐세이..ㅋ
딘 소장 잡힌거에 대해...왜????... 해방군놈들이 훈장을 받고 ..몇놈은 영웅칭호까지 받았는지?..
본래 남경에 주둔했었다던 놈...
인민군이 아닌...인민군으로 위장한... 짱개 부대에 잡힌걸로 들었소이다..
남침..3일전이라했던지?...철도... 북으로 이동해...역에서 일성이 영접까지 받으며 ...남침 선봉에 섰던 것들..
퇴각시 잡혀  거제도에 수용되었다.. 중국으로 귀환한 넘...연금으로  잘먹고 잘 살다..10여년전에 황천 간...
어느 퇴물 해방군  주둥이에서 나온 썰...지 훈장 받은 무용담 설레발 중..."지들이 잡았다고..."ㅎ
오롤로이요 17-07-28 23:11
   
엑박.
페닐 17-07-29 01:42
   
사단장이 하사관이 할 일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