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후 일본인들은 이제 미군들이 일본 여성들을, 1945년 2월 마닐라 공방전에서 일본군 해군육전대가 필리핀 여성들에게 했듯이 똑같이 다루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일본군 해군육전대는 "이왕 죽는 김에"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죽였고, 마닐라의 민간인 희생자는 10만이 넘었다.)
도쿄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모든 여성들에게 산속으로 피난할 것을 종용하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해가 진 뒤에는 외출하지 말고, 불가피하게 외출시에는 시계 등 귀중품을 일체 소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또한 최대한 허름한 옷을 걸치고 부스스한 몰골을 할 것이며,
미군 병사들에게 미소를 짓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자극적인" 행동은 절대 하지 말라 경고했다.
나카지마 항공기 같은 산업체들에서는 여직원들에게 청산가리 캡슐을 나눠주며, 정조가 더럽혀질 최악의 순간이 오면 삼키라고 종용했다.
물론 맥아더는 일본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좆본 틀딱들의 음습하고 추잡한 히토미뇌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였다.
그는 보니 펠러스에게 일본에 입성하거든 가장 먼저 취할 7대 조치 중 하나로, 여성들에게 조건없는 참정권을 부여하리라 말했다.
펠러스는 "일본 남자들이 그걸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라 말했고,
실제로도 후에 좆본 틀딱들은 맥아더의 이 조치가 그들이 예상했던 집단강.간만큼이나 일본 여성들을 "더럽혔다" 분노했다.
그러나 원수는 파이프담배를 피우며 쿨하게 "상관없네, 나는 일본 군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것이야.
자고로 여자들이란 전쟁을 혐오하기 마련이잖나?" 고 답했다.
- 윌리엄 맨체스터 저 "아메리칸 시저 : 맥아더 평전" 2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