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이렇게도 모를수있나싶네요. 일본의 침략징후를 무시한 선조와 북한의 협박질에 차분히 대응하는 문통, 전쟁나자마자 모든걸 뺏기고 백성까지 버리고 도망치는선조, 전쟁은 어떠한 경우라도 막겠다는 문통. 명에다 살려달라는 선조와 우리가 무장할테니 무기제한 풀라는 문통. 유일하게 연승을 올리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백의 종군케하는 선조와 잘못된 군비리를 잡고 독립유공자와 파월군인들을 위로하는 문통! 도대체 어떻게 비교가능한지 뇌를 열어보구 싶네요. 선조는 그냥 이승만이구만.
팩트:
1. 선조가 왜란을 대비하여 성을 증축하거나 새로 만든 것은 사실이나 실제 전쟁에서 해당 성으로 의미있는 전투는 발생하지 않음.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예.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였지만 효과와 효율은 거이 없는 '4대강' 수준의 전쟁 준비였음.
2. 선조는 이순신에 대하여 잘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류성룡의 천거만 믿고 무리하게 전라좌수사로 발탁함. 이순신 이전의 다른 후보들도 (여기에 원균이 포함됨) 사간원의 반대가 계속되어서 이순신 까지 지명이 바뀐 것임. 이순신 승진의 공은 류성룡에게 돌려야하며, 선조는 파격 승진 이외에는 이순신에게 도움을 준 것이 거의 없음.
이순신 이외의 선조가 발탁해서 보낸 인물 중 왜란에서 거둔 성과가 있는지? 전라수사 이광도 전투에서 망가지고....
정여립반란 여파로 역적으로 몰린 정언신 옥중 면회한 것 때문에 정읍현감으로 좌천된 이순신..
사간원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데 당시 동인들 형편을 보면 유성룡 한사람이 천거한다고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7단계 승진이 될 일인가..
니탕개군대 2인자 우을기내 생포한 이순신을, 선조가 녹둔도부터 지속하여 관찰한 결과임..
선조가 아니었음 전쟁 전에 죽을 일도 있었고,
3년상 중에도 관례를 깨고 여러번 벼슬을 내리겠다고 한 것도 선조였음.
"이순신의 일이 그러한 것은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상규(常規)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선조실록, 선조 24년 2월 16일)
그런데,
그 비교 대상으로 선조의 이순신 발탁을 뽑았는데,
그렇게 보자면 원균을 신뢰하여 경상우수사로 발탁하고, 그로인해 임진왜란 초기 조선수준의 전력 대다수를 날려먹고 이후 꾸준한 병력 증파를 허용하게 된 책임도 선조에게 있는것 아닌가?
왜의 조총을 대마도주를 통해 건네받고 위력을 확인까지 했으면서 한다는 소리가
-쏜다고 다 맞는것은 아니니 걱정할것 없다-
라며 대응책조차 마련치 않고, 이후로도 전쟁의 승리만 기억하는 통에 조선의 화약무기 발전이 전무했던 결과를 낳은 지도자가 선조 아닌가?
구시대 인물이며 파헤쳐지고 암군이라 칭해지기도 하고 선군이라 칭해지기도 하면서 갖은 평가를 해온 인물이 선조인데, 이런 선조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면...
현시대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감히 나서서 글까지 쓸수는 없는 노릇이지.
부끄러운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