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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25 15:10
[밀리터리 역사] 보급의 중요성 (임팔작전)
 글쓴이 : 바토
조회 : 4,974  

보급의 중요성 2
임팔작전
보급의 중요성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게 바로 임팔작전이다.
 

1944년 3월부터 7월 1일까지 버마(미얀마)와 인도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표적인 팀킬 작전으로.
일명 동방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되시겠다..

 
여기서 대활약을 펼친이가  일명 대한독립군 스파이 무타구치 렌야..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공언을 하셨다...응?>
 
 
20세기 전장에..
칭기즈 칸이 했던 '약탈 보급'의 방식을 취할 것이라 하며..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와 같은 주옥같은 개소리???를 남겼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심한 명언이 있었으니, 일선 부대에서 보급품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당시의 참전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은...
"풀을 가리키면서, 식량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
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이...이뭐병.
이쯤 되면 그의 부하들이 개막장 일본군임을 감안하더라도 불쌍해보일 지경.
 
 
그래도 일본군에 눈뜬 장님들만 있는건 아니었다.
15군 참모장으로 임명된 오바타 소장은...
"자동차도 모자란 판국에 비만 오면 못쓰게 되는 도로, 다리도 없는 친드윗 강,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보급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불가능하다."
고 상신했다.
 
하지만 무타구치 장군 왈..
"닥쳐~!"
오바타 소장을 부임 한 달 만에 해임....응?
 
33사단장 야나니타 겐죠 중장과 31사단장 사토 고토쿠 중장까지 들고 일어났는데...
무타쿠치왈..
" 닥쳐~! 닥쳐~!"
오바타 소장의 면직으로 반대여론은 사그라들었다.
 
그 외에

후방부터의 보급이 곤란하지 않도록 3개 사단의 배치를 재고해야 한다.
―버마 방면군, 나카 에이타로 참모장.
 
보급 계획을 도외시한 이 작전구상은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
―남방군, 이나다 마사즈미 참모장
 
"엉망진창인 작전구상이다."
―대본영, 사나다 죠이치로 작전과장.
 
 
암튼 이런 반대 여론에..
나카 참모장이 "이 작전구상은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되오. 재고의 여지는 없는가?"라고 물었지만,
"당신은 실전 경험이 없어서 지레 겁을 먹는 모양이지만, 이렇게까지 준비를 철저하게 한 싸움은 일찍이 없었소이다.
천장절(일왕 생일)까지는 임팔도, 코히마도 반드시 점령해 보이겠소."라고 자신했다.
그 말까지 들은 나카 참모장은 입을 다물어버렸다고....
 
암튼 이런 얼토당토 않는 작전이 상신되는데....

노구교 사건 때도 무타구치의 직속 상관이었던 버마 방면군의 카와베 마사카즈 사령관은...
"예전부터 무타구치 군이 공들여 계획한 작전이다. 꼭 인가해주고 싶다."
라며 통과.
 
남방군의 테라우치 히사이치 사령관은
"이 작전을 성공시켜서 교착 상태의 전국을 타개할 수만 있다면...."
라면서 또 통과.
 
대본영의 사나다 참모장이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는 상황에서는 절대 반대다."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도로건설을 위한 1년의 기간이 필요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면 해로수송을 위한 해군의 협조라도 있어야 한다."
라고 마지막 제동을 걸었으나....
 
참모총장 스기야마 원수가
"테라우치(남방군 사량관) 씨의 부탁이니 통과시켜주게."
라면서 승인.
 
 
그렇게 올라간 보고서를 읽은 일황 히로히토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
.
.
.
.
.
"이런게 정말로 가능하긴 한건가?"라고 말했다 고......
 
 
 
이런 와중에 9월 중순에 현지군에서는 준비명령에 따라 각 사단이 담당구역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일본군 특유의 보급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트럭 160개, 말들을 이용하는 치중병 중대 60개, 그리고 5개 공병 연대였으나, 대본영에서 최종 인가를 받을 때는 26개, 14개, 2개로 줄어버렸다.
그 이유라는 것도 또 가관인데, "임팔만 먹으면 다 해결됨!"
 
그렇게 임팔작전의 서막이 열렸다..
 
그리고 기아와 병에 허덕이며 처절한 실패...응??
 
작전 결과
일본군은 전사자 32천명, 병사 및 아사자 4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각 사단마다 90%에 가까운 손실로 전멸이나 다름없는 대패였다.
반면 연합군의 피해는 사상자 175백명에 불과했다.
 
 
 
 
 
기타 이야기..

당시 중국측 종군기자는 아래와 같이 묘사하였다.
"마인칸 교외에서 연합군에 투항해 온 일본군의 영양실조는 놀라울 정도로 심했다.
개중에는 문자 그대로 굶어 죽기 직전인 자도 있었다.
먹을 것을 던져주니 몹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그것을 받아 먹었는데 10일이고 1개월이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나무 뿌리나 벌레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지못미.
 

계속적인 공격 명령에
당시 임팔 작전에 참가한 31사단장인 사토 중장은 이런 전문을 보냈다.
공격 계속 명령 접수했음.
그러나 명령만으로 병력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귀하의 사고 방식이야말로 이 작전을 실패로 이끌어 가는 중대요인이 되고 있음.
눈앞의 본 사단 1만 장병은 아사 직전 상태에 놓여있음.
탄약은 고갈되어 맨손의 병력으로 화해버렸음.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것은 모두가 귀 제15군에게 그 책임이 있음.
 
인런 전문이 계속 날아오자 15군 참모들이 5월 28일 사토 중장을 달래기 위해 찾아왔는데, 오히려 길길이 날뛰면서 규탄하는 바람에 찍소리도 못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너희들은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왔느냐! 우리들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야. 바로 너희들 제15군이란 말이다!" 
 
게다가 독단적으로 철수하기로 마음먹고는 참모진과 부하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을 정도로 열이 뻗혀있었다.
지금 우리 사단의 위에는 3개의 머저리 집단이 있다.
제15군과 미얀마 방면군과 남방총군이다.
이런 머저리들 믿고 기다리다간 우리 사단이 전멸하고 말 것이다.
이에 본 사단의 퇴각을 본관 책임하에 독단결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그유명한 일본육군 항명 1호 사건....응? 
 
 

임팔 작전의 실패로 인해 호각지세였던 일본군의 버마-벵갈 전선은 붕괴해 1945년 3월에는 아웅산 장군이 이끄는 버마국방군이 일본군을 몰아내는 결과를 초래해 일본은 버마를 잃는 결과를 맞이했다.
잘한다~~!
 
 
임팔 작전으로 9만 2천명의 병사를 전투도 제대로 하지 않고 1만 3천명으로 줄여버린 팀킬에 성공한 무타구치 렌야는 "아놔 책임감 느낀다. 콱 자결해 버릴까?"라는 상투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자 수석부관이 "아무도 없는데서 하십시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패전의 책임같으면 장군님이 할복하고도 남습니다"이라며 조용히 권총을 내밀자 째려보고는 살아갈 의지를 곧추 세웠다고....응?
 

가장 병맛인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 임팔 전선에서 죽은 희생자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낼 때 무타구치가 그 자리에 나타나서 '임팔 전선의 패배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부하들이 잘못 싸운 것'이라는 유인물을 나눠주려다가 물세례를 받은 바 있고...
부하의 장례식장에도 찾아가 똑같은 짓을 저지르다가 유족들에게 뭇매를 맞았다고.....
심지어는 죽은 뒤 자기 장례식에서조차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다른 놈들이 못나서 실패한...'라는 유인물을 돌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답이 없다...
...뻔뻔함이 밑도 끝도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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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기동대 13-04-25 15:35
   
본격 생식체험부대
유자차 13-04-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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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3-04-25 17:04
   
엔하위키꺼 긁어왔네..
망치와모루 13-04-25 20:44
   
무능한 적장은 소중한 아군 ㅎㅎ
일빠싫어 13-04-25 22:14
   
인간 과부제조기 무다구치 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