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오산기지에 위치한 공군 KAOC(공군항공우주작전본부).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 그 두께가 거의 1m에 육박하는 육중한 3중 철문을 통과해야 도착할 수 있고, 북한의 핵무기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 공군의 심장. 수많은 방들이 미로처럼 얽힌 이곳에서 한국과 미국 공군의 수많은 작전요원들이 24일 밤낮 없이 근무를 선다.
그중에서도 KAOC의 심장 중 심장은 한꺼번에 수백 명의 인원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중앙통제실이다. 이 안에는 좌우 폭과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중앙스크린이 이곳에 처음 들어서는 모든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중국 상공에 비행 중인 깨알같이 많은 항적들이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필요한 경우 전술조치가 시행된다. 휴전선 인근에서 만약에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공중 및 지상 비상대기 전력(ALERT)에 대한 통제, 각지에서 대한민국 영공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수많은 방공포대들에 대한 통제 및 요격 지시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날 아침도 여느 날처럼 전술 항공기 운영이 톱니바퀴처럼 이루어지던 그때, 일순간 정적을 깨는 'PAGING'.
“00 DO(Duty Officer, 통제장교)입니다. 곡산 이륙 MIG-21 추정 항적 관심항적 선포! MIG-21 추정 항적 관심항적 선포!”
모두가 순간 얼어붙은 듯 일부는 전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아, 잠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여기 상황이...”
거대한 중앙 스크린에 시현된 레이더 영상에 모든 요원의 시선이 일순간 집중된다. 빨갛게 두 개의 점으로 시현된 레이더 영상이 그간 한 번도 본적이 없던 엄청난 길이의 꼬리를 끌면서(속도에 따라 항적의 꼬리 길이가 다름) 유성처럼 북에서 남으로 고속 비행 중인 물체가 한눈에 보인다.
이어지는 00 DO의 다급한 PAGING.
"00 DO입니다. 곡산 이륙 항적 속도 마하 2.0 HIGH TAL(1차 전술조치선) 통과 30초 전!
초계 중인 F-16 2기 긴급 임무전환 발령! 긴급 임무전환 발령! 현재 북상 중입니다."
이후 각 Duty Officer들의 일사불란한 대응 PAGING이 마치 수십 번도 더 연습해 본 것처럼 거의 수초 간격으로 이어졌다.
"00 DO입니다. 00기지 천궁포대 00시 00분 현재 00 발령! 항적 추적 중"
다시 이어지는 00 DO의 가볍게 떨리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히 결의에 찬 목소리.
“00기지 5분대기 F-16 00시 00분 현재 스크램블 발령! 00시 00분 현재 F-16 스크램블 발령!”
ALERT ROOM에서 튀어나가 이글루 속에 엔진이 데워진 F-16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비상대기 조종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이후 이어지는 긴박한 PAGING.
“MIG 21 HIGH TAL 통과 20초 전!... 10초 전!
5, 4, 3, 2, 1, HTAL 통과!
TIME 00시 00!. 현 시간부로 0000를 발령합니다!
현재 MIG-21 속도 마하 2.0, HEADING 180,
LOW TAL(휴전선 바로 위의 전술조치선; 이곳을 통과하면 불과 수십 초면 휴전선을 통과하게 된다)까지 남은 시간 20초, 10초.....”
통제실 인원들 모두가 서로의 침 넘기는 소리마저 들을 것만 같은 정적 속에서 장내의 PAGING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중앙 스크린에는 남쪽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긴 꼬리의 MIG-21 항적과 이에 대응해 서해에서 기수를 돌려 AFTER BURNER를 켜고 요격하기 위해 정면으로 달려 들어가는 2대의 F-16이 그만큼 긴 꼬리를 달고 HEAD ON되는 공중교전 직전의 긴박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금 요격기 조종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장은 어떤 것을 달고 있을까?......’ 온갖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스친다.
북한의 MIG-21과 우리의 F-16이 서로의 미사일 LOCK ON 거리에 도달하기까지 불과 십여 초를 남겨두고 접근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일순간 중단되는 카운트다운.
“MIG-21. 전술조치선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현재 HEADING 090 마하 1.5!”
그제야 긴장 속에 가두어 두었던 폐부 속 공기를 길게 신음하듯 내뱉는 안도의 탄식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미 모니터에서도 이전보다 확연히 속도가 줄어든 MIG-21 항적이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 LOW TAL 전술조치선 인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PAGING.
“요격 중인 F-16 00. HARD RIGHT! HARD RIGHT! 이탈합니다!”
이제야 우리군의 F-16 항적도 마하 2.0을 육박하는 속도에서 급격히 꼬리를 줄이면서 남쪽으로 이탈하고 있었다.
“00시 00분 현재 00상황 해제! 00시 00분 현재 00상황 해제!”
이어서 한참을 다시 이어지는 각 DO들의 상황해제 PAGING이 귓가를 울린다.
약 5분 사이에 벌어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숨 막히고 긴박했던 또 한 번의 북한군의 위협 비행이 이렇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나는 미처 끝내지 못하고 아직까지 들고만 있던 전술 핫라인에, 이서야 정신이 돌아와서는
“아... 통신보안! 아직 계십니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778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