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4-12-29 21:54
[육군] 현리전투..
 글쓴이 : 스마트MS
조회 : 4,760  

현리2.jpg

현리3.jpg

현리4.jpg

현리1.jpg

일대의 산들이 평균 4~700m 정도의 높이네요.
간혹. 서적등을 통해 현리전투를 접할때.
 
기본적으로 장비와 보급이 확보된 상태에서 고지를 선점 하고 있었다면. 동부전선은. 충분히 유지가능했을듯 한데..
왜. 무너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했던 기억이 나네요.그땐 그냥.
 
중공군의 막대한 인해전술을 바탕으로 종심기동전으로. 국군 대응을 상회하였기 때문인려나? 하고 말았거든요.
 
물론  중공군 9병단 예하 병력과 북한군 3개 군단은 강대한 군세이지만.
미 제8군의
공군의 근접항공 지원과 포격의 연계를 끌어낼수 있을때까지만 버텼더라면. 하면 말이죠.
 
뭐 결과적으론.
 
중공군 개입이후.
 
살아남은 국군의 기존 1.2.5.6.7.8 사단 전력이 미 군단에 배속되어 작전수행하던것과는 달리.
육본-육본 전장지휘소 라인을 구성한 독자적인 지휘권 행사하는 군단급이...지휘권 상실이란 것으로..맺듭지어졌지만 말이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SRK1059 14-12-29 22:05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예전에 읽었던 6.25 전사에 따르면

유재흥 지휘하의 방어선에 고개가 하나 있었는데
원래는 부하 장교가 해당 고개에도 소규모 병력을 매복시키자고 제안했었는데
유재흥이 이를 무시하고 고지 정상 중심으로 방어선 구축하였음.
중공군이 그 고개를 이용하여 야간에 소규모 병력을 침투시켰음.
그리고 자신들의 배후에 중공군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방어선에 있던 부대들이 동요하였고
결국 보유하고 있던 포를 비롯한 각종 화력기재와 물자를 다 버리고, 그냥 도보로 후퇴해버렸음.
유재흥은 일찌감치 도망쳐 버렸고.
스마트MS 14-12-29 22:21
   
그렇다면 그 고개가 혹시 오마치 고개일려나요?
국군 퇴로를 막아 후퇴를 상당히 어렵게한 거점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걸로 기억하거든요.
3군단 예하 2개사단를 아주 그냥...
16일 오후에 공격해 오는. 군세에. 17일 오후에 사단장에게 지휘권 넘겨주고. 퇴각명령만 내려주고..사라진것도.거참.. 이러니.. 이러한 지휘부인 장교들이 계급장 떼고. 조직적인 퇴각이 아닌 개별적인 퇴각한 모습을 초래한것인듯.
     
SRK1059 14-12-29 22:24
   
십 수년도 더 넘은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전사라서 고개 이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오마치 고개'라는 이름 비슷했던 것도 같습니다.

단지 배후에 중공군이 침투했다는 소문만 듣고는
침투 병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예비 병력을 출동시켜 침투 병력을 소탕하고 침투 경로를 틀어막을 수 있는지,
아니면 좌우에 있는 방어선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고개를 틀어 막아
추가 침투를 막든지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몽땅 잊어버리고 그냥 도망.
그것도 보유하고 있던 화기를 적군이 사용하지 못하게 파괴하고
보급물자를 태우고 후퇴한 것도 아니고, 그냥 줄행랑.
심지어 개인화기도 버리고 그냥 도망친 병력이 다수였다고 함.
더 웃기는 것은,
후퇴하는 경우 어디까지 후퇴해서 어느 장소에서 재집결하라는 명령도 없이 그냥 도망.

오죽했으면 밴플리트 장군이 꼭지가 돌아서 현지에서 지휘권을 박탈했을까.
전략설계 14-12-29 23:12
   
뒤에서 나타난 적의 무서움이라고 할까요..

진입로이자 퇴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 1개 중대(?)에 점령되자..
저 지형에서보듯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3군단 전체가 한번 싸우지도 못하고, 36계를 한 것이죠.
군복까지 벗어제끼면서.. 나 살려라..

6.25때 중공군 특기가 옆으로 돌고 뒤로 돌고라..
그렇게 작은 부대만 있었는지를 모르고, 대병력에 완전히 포위된 걸로 착각한..

6.25 전사로는 백선엽장군의 '군과나'를 끼고 산 덕에..
책 어딘가에.. '한국군은 북한군을 만나면 잘 싸우는데, 중공군에 약하다'는 구절이 있었던 것 같네요.
일렬로 늘어진 전선에서 1개 군단 자리가 비어버리니까..
연차적으로 전선이 붕괴되는걸 막기 위해, 백선엽 장군이 대관령으로 부대를 급히 보내고..
잘 아시다시피 미군이 한국군을 믿을 수 없다고 작전권을 뺏어버리죠.
그때 넘어간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군 전시작전권이 미군에 있는데.
이게 다 어떻게 패전을 해도 다시 제자리 복귀하는 만군 인맥의 유재흥 군단장님 은공이죠.
나물밥 14-12-29 23:36
   
     
전략설계 14-12-30 00:13
   
김종오장군도 한국전쟁의 MVP중 한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백선엽장군은 개전초 파주방면에서 다리폭파 실패의 책임과,
개전 당일 서울에 있어 부대지휘를 신속히 못한 부분이 있고..

대신 다부동전투에서 대구북방을 사수한 점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리 다부동전투가 여러 부대가 투입되었다고 해도..
아직 군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한국군내에서
유재흥의 현리전투처럼 최고지휘관의 역할과 그 의지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뺏긴 고지를 놓고 모두 퇴각하고 싶을 때,
권총 들고 사단장이 맨 앞에 서서 고지를 오르던 장면에서
백선엽의 리더쉽이 통했다고 할 수 있고,
낙동강전선에서 한미 사단들이 일렬로 늘어선 상황에서,
옆의 미군을 잘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선의 주축이 미군이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미군과 가장 잘 협력을 한 지휘관이란 점도 인정해줘야 하고요..
전쟁 초기를 제외하고.. 맡은 부대를 크게 말아먹은 적이 없었다는 점..
물론 다른 한국군보다 미군의 포병지원이나 전차지원을 많은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1.4 후퇴때에 미군 포격지원으로 백선엽의 1사단이 피해를 덜 입었죠.

이창호 바둑처럼 80점짜리 전쟁을 꾸준히 한 장군이란 인상입니다.
다부동 이후론 딱히 내세울만한 전투는 없었지만
이후 군단장으로서 꾸준하고 안정감을 준 지휘관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의지 14-12-30 20:56
   
적의 침공로를 보니까 전부 국군 사단을 우회한 침공이내요 지도에 드러난 국군 사단의 패배원인은 동부전선이라는데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은 평지가 거의 없고 깎아지고 산지가 험하다고 알고있습니다 전쟁사를 잠깐 본적 있는데 팽덕회는 서부전선은 주로 미군과 유엔군이 담당하고 산악이 없으니 전투력이 약한 한국군을 칠 계획을 했답니다 그리고 서부전선은 그대로 냉겨둔체 중공군을 국군 방어지역에 몰빵한것이죠 그래서 생겨난게 인해전술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진것이죠 또한 국군의 패착이 대부분 산악지형을 피하고 큰길가에 진영을 갖춘게 패단이였다고 합니다 중공군은 미군기의 정찰을 피하기위해 밤에 험준한 산악을 타고 공격자의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으며 국군은 적의 병력을 파악도 못하고 후방에 기습을 받자 속절없이 무너젔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후방에 침투한 부대는 거의 대부분이 대대 병력수준이였으며 국군의 사단이 격파되는 참패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