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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09 00:26
[질문] 육군부대 중에 6사단...
 글쓴이 : LEMON쿠우
조회 : 5,266  

6.25 전사에 있어서 최강부대라고 알고 있는데...
 
요즘은 백마부대나 이기자부대보다도 유명새에서 밀리네욤...
 
백전백패의 부대 이기자도 유명해졌는데(그때 그시절<--책 참조)...
 
무엇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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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koo 14-02-09 00:30
   
뭔소리입니까 ?

이기자는 6.25 이후에 만들어진 부대인대...
최전방 예비사단으로 훈련이 자주있어서 이름있는것인데
언제어디서 백전백패를 했답니까 ?

102보충대에도 신병들에게 알려주는 책자에도 엄연히 나와있는데...
이상한 정보가 나와있는 그런책 참조하지 마세요.
     
LEMON쿠우 14-02-09 00:32
   
그때 그 시절 <----군에서 발행한 책이예요....제가 군대서 뽀려온거임... 26사단 27사단이 있었거든요...근데 27사단애들은 전쟁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구요...잘모르겠음...
          
ultrakoo 14-02-09 00:34
   
우리군에서 27사단이 백전 백패했다고

책에 써놨다구요 ??????
               
LEMON쿠우 14-02-09 00:36
   
제가 잘못봤나...제가 본가에 있어서 책을 못보겠네요...죄송합니다.. 기억이 잘못된걸수도...
맘비 14-02-09 00:31
   
훈련이 험해서 겠지요.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중반에 오뚜기 등과 힘든 부대로 유명했었는데,,,
     
씹덕후후후 14-02-09 00:33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오뚜기 행군 ㅋㅋㅋ

양팔 양다리가 있었는데 행군을 많이해서 다리가 없어지고 손으로 기어서 행군해서

팔도 없어져 지금의 8사단 되었다는 ㅋㅋ
          
LEMON쿠우 14-02-09 00:38
   
오뚜기는 직접 전투같이 뛰어봐서 알고 있는데...행군은 저희가 더 많이 하는데....

기초훈련은 8사단이 더 빡신듯...저희부대 처절하게 발렸었음
               
씹덕후후후 14-02-09 00:51
   
무슨 훈련을 하셨나요?

전 신교대만 나와서
                    
LEMON쿠우 14-02-09 01:17
   
훈련은 고속우회기동해서 적 후방때리는거하고...침투조로 새벽에 산넘어가는게 넘 힘들었죠...K3사수였는데..침투조때느 99K 메고다녔어요
                         
씹덕후후후 14-02-09 19:56
   
수색대 나오셨나요?
맘비 14-02-09 00:32
   
이기자부대는 이십단위 사단인데 6.25는 무리죠.
영웅문 14-02-09 01:22
   
청송부대는 우리역사에 있어서 영웅이죠.

만약 김재규가 박전대통령을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도 북과 같이 지금은 박지만이 대를 이어 대통령하고 있을지 모르죠.

여하튼 625때 가장 훌륭한 부대인 것은 확실합니다.
     
LEMON쿠우 14-02-09 01:24
   
김재규가 6사단 청성부대 사단장 출신이어서... 뭍혔다는 카더라도 있는거 같아요
Misu 14-02-09 01:39
   
숫자 20밑에 사단들이 6.25전쟁직전에 있었거나 6.25전쟁중 이승만대통령이 창설한 사단들로 알고 있습니다.
백마는 아마 맹호와 함께 월남전에 참여해서 유명한것 같고, 8사단 오뚜기 11사단 화랑 27사단 이기자 등의 부대는 예비사단으로 훈련량,훈련규모,훈련강도면에서 일반 육군사단에 비해서 강하기 때문에 높게 평가되고 있는것같습니다.
모자르다 14-02-09 03:11
   
지금은 모르겠으나 20사단 00군번으로 있을당시. 6사단의 유명세와 악명은 20사단에도 유명했음. 백마. 백골은 뭐... 월남 뛰고 돌아오신 지인분들에의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승사자 14-02-09 04:04
   
완전히 잘못 알고계시네요..이기자는 6.25 참천한적도 없을뿐더러..전투에서 백전백패해서 부대명을 이기자로 정했다는것 자체가 넌센스구요..그냥 말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초대 사단장 마누라 이름이 이기자라는 전설도 있지요ㅋㅋ
6사단 빡쎄지만 전투기록 놓고보면 백마, 백골, 맹호 개인적으로 진정한 메이커부대라고 생각함
다다나 14-02-09 11:04
   
개인적으로 1사단 출신이라는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데 생각보다 1사단의 평가가 낮은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ㅋ; 하긴 훈련이 빡셨던 기억은 별로 없으니..;;
별명없음 14-02-09 12:26
   
전투기록으로 따지면 6사단 청성이 6.25 시절 레전드입니다...

좀 오버해서 6사단의 전공 아니었으면
이후에 두자릿수 사단들은 창설도 못되었을테니까요..

백마 맹호는 월남전 전투 기록에서 유명한게 사실이지만..
그것과 비교해서 파병 못간 부대들을 평가절하 하는것은 무리...
재흙먹어 14-02-09 14:04
   
기본적으로 최전선 지키는 부대들은 625때 전공세운 사단들이고
그중에서도 요충지를 지키는 부대들은 더 말할나위 있나요
청성은 중부전선 최대요충지 철원인데 백골도 철원이고
다만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거지
Centurion 14-02-09 14:43
   
전 딴부대 나왔지만서도 6사단 레알 레전드죠

첫째, 6.25 개전 당시 유일하게 전선을 틀어막은 춘천대첩의 주인공-김종오 장군
둘째, 압록강 진격 후 수통에 물 뜬 부대(다만, 얼마 후 중공군 참전으로 큰 피해를 입음)
셋째, 용문산전투를 통해 사단 단독으로 중공군 1개군단(3개사단)병력 몰살시킴.
        한국전쟁 중 유엔군 통틀어 최대전과-장도영 장군

보통 한국군 메이커 부대 중에 가장 전공이 높은 부대가..
6사단이랑 1사단인데..
1사단은 백선엽 장군 휘하에서 꾸준히 잘싸웠고 다부동전투로 유명합니다

반면 6사단은 잘싸울 땐 잘싸우는데
압록강에서 중공군한테 포위당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이후 용문산전투에 앞서서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게 흠이죠
화려한 전공만으로 따지면 6사단이 쩝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두자릿수 부대들은
전쟁 중후기 전선이 고착된 상황에서 밴플리트 장군이 후방에서
신교대 돌려가며 새로 창설한 부대들이 많습니다

한국군의 교육훈련이나 장교 자질이 많이 떨어져서
꽤 수준높은 신병교육대도 돌리고 기존병력 재훈련도 시키고
한국 장교들을 미국식으로 재교육하거나 유학도 보냈죠

그래서 밴플리트를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1035&ntt_writ_date=20131113

27사단은 6.25 전쟁 끝나고 2달 뒤쯤인 1953년 9월에 만들어진 부대죠
제삼의눈 14-02-09 15:02
   
6사단이 왜 유명세에서 밀리죠?
그런 얘긴 첨 들어 보는데... 청성 엄청 유명하잖아요?


그리고 해병대도 껴주세요. ~.~ㅋ
6.25, 월남전 안가리고 잘싸웠는데...
맨날 왕따 ㅠㅜ
현준 14-02-09 16:33
   
한자리수 사단들은 전부 역사와 전통이 있죠
전 7사단이죠 정말 한자리수 사단중에서 가장 안알려진 사단이죠
최근에 고지전 실제 모델사단이라 조금 유명해짐...
그리고...아 최전방중에서거의 유일하게 북한보다 높은 지대를 차지한 부대라고 합니다 ㅎㅎ
이거 말곤 저도 딱히 아는게 없어요 ㅎㅎ
바람난홍삼 14-02-09 17:30
   
20여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를 잊지못하겠슴.
6사단 금학산 케이블카 공사....급수관공사...훼바부대들은 번갈아가며 다 왔을듯
난 사람이 그 어마마한 철탑의 자재들을 3~40명이 어깨에메고 달라붙어 산을 오를지 몰랐네.
뭐 남아 도는게 군바리라지만 
하루에도 몇사람이나 부러지고 찢어지고...악몽 그자체...말년에 빙시되는줄.
그뒤로 aop는 좀 편해 졌을듯...
그래도 사단에서 전역 할때는 케이블카 보면서 좀 뿌듯해지더이다.
sdhflishfl 14-02-09 18:26
   
백전백패? 뭔가 잘못 쓰신듯 ㅋㅋ
오리발톱 14-02-09 18:36
   
전쟁 초반 6사단은 나라를 구한 부대였습니다. 당시 북한군의 전략은 주공으로 경기도 방면의 국군을 한강 이남으로 밀어내면, 조공으로 투입되는 2군단(국공내전 경험자가 많았고 전투지휘검열 당시 전체 1위를 차지한 부대)으로 춘천을 거쳐 수원까지 점령하게 해 한강 이남으로 밀려난 국군의 잔여병력을 포위섬멸하고 거의 무저항으로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6사단이 춘천에서 2군단에게 큰 타격을 주며 막아낸 덕분에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군 수뇌부는 일이 크게 틀어지자 서울을 점령하고도 2일간 진격을 주저하며 멈춰 있었고(오죽하면 스탈린이 직접 진격하던지 서던지 빨리 결정하라는 전갈을 보냈었음), 그 이틀 동안 김홍일 장군이 패잔병력을 수습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이후 지연전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일로 2군단 지휘관 전원이 교체되거나 전사했죠.
이후 중공군을 상대로 용문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화천저수지를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인 '파로호'로 바꾸게 한 추격전 까지 벌이는 등 6.25 당시 6사단이 한 역할은 대단히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