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20밑에 사단들이 6.25전쟁직전에 있었거나 6.25전쟁중 이승만대통령이 창설한 사단들로 알고 있습니다.
백마는 아마 맹호와 함께 월남전에 참여해서 유명한것 같고, 8사단 오뚜기 11사단 화랑 27사단 이기자 등의 부대는 예비사단으로 훈련량,훈련규모,훈련강도면에서 일반 육군사단에 비해서 강하기 때문에 높게 평가되고 있는것같습니다.
첫째, 6.25 개전 당시 유일하게 전선을 틀어막은 춘천대첩의 주인공-김종오 장군
둘째, 압록강 진격 후 수통에 물 뜬 부대(다만, 얼마 후 중공군 참전으로 큰 피해를 입음)
셋째, 용문산전투를 통해 사단 단독으로 중공군 1개군단(3개사단)병력 몰살시킴.
한국전쟁 중 유엔군 통틀어 최대전과-장도영 장군
보통 한국군 메이커 부대 중에 가장 전공이 높은 부대가..
6사단이랑 1사단인데..
1사단은 백선엽 장군 휘하에서 꾸준히 잘싸웠고 다부동전투로 유명합니다
반면 6사단은 잘싸울 땐 잘싸우는데
압록강에서 중공군한테 포위당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이후 용문산전투에 앞서서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게 흠이죠
화려한 전공만으로 따지면 6사단이 쩝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두자릿수 부대들은
전쟁 중후기 전선이 고착된 상황에서 밴플리트 장군이 후방에서
신교대 돌려가며 새로 창설한 부대들이 많습니다
한국군의 교육훈련이나 장교 자질이 많이 떨어져서
꽤 수준높은 신병교육대도 돌리고 기존병력 재훈련도 시키고
한국 장교들을 미국식으로 재교육하거나 유학도 보냈죠
한자리수 사단들은 전부 역사와 전통이 있죠
전 7사단이죠 정말 한자리수 사단중에서 가장 안알려진 사단이죠
최근에 고지전 실제 모델사단이라 조금 유명해짐...
그리고...아 최전방중에서거의 유일하게 북한보다 높은 지대를 차지한 부대라고 합니다 ㅎㅎ
이거 말곤 저도 딱히 아는게 없어요 ㅎㅎ
20여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를 잊지못하겠슴.
6사단 금학산 케이블카 공사....급수관공사...훼바부대들은 번갈아가며 다 왔을듯
난 사람이 그 어마마한 철탑의 자재들을 3~40명이 어깨에메고 달라붙어 산을 오를지 몰랐네.
뭐 남아 도는게 군바리라지만
하루에도 몇사람이나 부러지고 찢어지고...악몽 그자체...말년에 빙시되는줄.
그뒤로 aop는 좀 편해 졌을듯...
그래도 사단에서 전역 할때는 케이블카 보면서 좀 뿌듯해지더이다.
전쟁 초반 6사단은 나라를 구한 부대였습니다. 당시 북한군의 전략은 주공으로 경기도 방면의 국군을 한강 이남으로 밀어내면, 조공으로 투입되는 2군단(국공내전 경험자가 많았고 전투지휘검열 당시 전체 1위를 차지한 부대)으로 춘천을 거쳐 수원까지 점령하게 해 한강 이남으로 밀려난 국군의 잔여병력을 포위섬멸하고 거의 무저항으로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6사단이 춘천에서 2군단에게 큰 타격을 주며 막아낸 덕분에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군 수뇌부는 일이 크게 틀어지자 서울을 점령하고도 2일간 진격을 주저하며 멈춰 있었고(오죽하면 스탈린이 직접 진격하던지 서던지 빨리 결정하라는 전갈을 보냈었음), 그 이틀 동안 김홍일 장군이 패잔병력을 수습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이후 지연전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일로 2군단 지휘관 전원이 교체되거나 전사했죠.
이후 중공군을 상대로 용문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화천저수지를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인 '파로호'로 바꾸게 한 추격전 까지 벌이는 등 6.25 당시 6사단이 한 역할은 대단히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