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건 단순히 스펙 싸움이 아닙니다.
전쟁이 단순히 스펙과 숫자의 비교라면, 워게임 하듯 양쪽의 전력을 수치화 해서 계량한 다음 더 많은 전력지수를 가진 쪽이 이긴 걸로 해버리면 전쟁 자체가 일어날 이유도 없죠.
전쟁이라는 건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시켜서 적의 단점을 최대한 찌르는 겁니다.
단순한 스펙 비교에서는 한쪽이 딸려보이더라도 그 상대방은 지형의 불리함을 안고 있을 수도 있고, 길게 늘어진 보급선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장비 리스트에서는 보이지 않던 여러가지 유무형의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완전무결하고 약점 없는 군대란 없으니까요.
이런 약점들을 잘 이용하면 병력에서 열세인 쪽이라도 지형 지물(성곽 등의 방어시설 포함)을 이용해 지연전을 펼치면서 보급선을 끊은 다음 게릴라전으로 갉아먹고 마무리 총반격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게 전략이고 작전이죠. 고구려가 수, 당을 상대로 그렇게 이겼고, 핀란드가 소련을 상대로 그렇게 이겼습니다. 명량대첩은 지형을 잘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고 월남전은 심리전을 잘 이용한 사례가 됩니다.
신인균씨는 양쪽이 비슷한 전력으로 맞붙은 한산대첩 얘기는 하면서 우리가 10배 이상 숫적으로 불리했던 명량대첩이나 행주대첩 얘긴 안하더군요. 신인균씨 논리대로라면 이순신이나 권율은 명량과 행주에서 각각 전멸 당했어야 합니다만, 실제 역사는 정반대였습니다. 10배 이상 많은 왜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잔존 병력들은 간신히 도주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한국은 해군이 가장 약하고 육군이 가장 강합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가 가장 강하고 육상자위대는 가장 약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전력 구성은 이렇게 정반대인데, 일본의 장점에 한국의 단점으로 맨땅에 헤딩할 필요없죠.
맨땅에 헤딩하면 땅은 멀쩡하고 이마만 깨진다는 건 헤딩 안해봐도 누구나 압니다.
신인균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가, 일본이 자기들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패를 내밀어서 독도를 도발할 때, 일본이 선택한 전장에 일본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전투방식인 함대 결전으로 순순히 한국 해군이 대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들고나와서 호들갑을 떤 겁니다. 수양제나 당태종이 백만 대군 몰고 쳐들어오는데 성을 버리고 들판에서 싸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싸울 거면 지휘관이 왜 필요하고, 전략이니 전술이니 작전이니 하는 게 왜 필요한가요?
CEC가 있네 없네, 피스아이가 깡통이네 머네, 미사일이 몇 발이네 이딴 걸 따질 필요도 없이 동해 같은 넓은 바다에서 함대 결전을 하게 되면 란체스터 제2 법칙에 따라 쪽수 딸리는 한국 해군이 순삭되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이 동해에서 깝친다고 동해로 유인되어 나가면 절대 안되고, 신인균씨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전체 해상전력의 50% (2개 호위함대, 2개 지방대)와 가용 항공자위대 전력의 대부분을 동해상에 투입하면 우리는 대마도로 빈집털이를 가는 게 맞습니다.
독도야 어차피 사실상 무인도에 불과하고, 독도를 지키는 병력들은 군인이 아니라 행안부 소속 경찰들이라 자위대가 직접 어떻게 하지도 못합니다. 끽해야 무장해제가 고작입니다. 독도에 대규모 함대가 정박할 항만시설도 없고, 보급을 받을 데도 없고, 험한 동해상에서 몇 달씩 진을 치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독도 위에 대규모 부대가 주둔할만한 땅도 없습니다. 독도 공격은 지극히 쉽지만 방어는 지극히 힘들기 때문에 먼저 대마도에서 이긴 다음 언제라도 독도는 탈환이 가능합니다.
반면 대마도는 인구 3만 6천명의 상당히 큰 유인도입니다.
한국이 대마도를 점령하고 일본인 3만 6천명을 관리하게 되면 일본 정부는 독도를 얻은 것에 비해 훨씬 큰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됩니다. 우리 쪽이 훨씬 유리한 게임이죠.
독도를 뺏겼으니 <당장 독도로 가서 탈환하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전략적인 스케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면 독도야 자동으로 우리가 되찾게 되는데 지금 독도를 뺏겼으니까 당장 모든 해군을 끌고 독도로 가서 싸워야 된다? 일본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고 우리 입장에서는 가장 멍청한 소립니다.
신인균 시나리오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한국 해군의 2함대는 서해 NLL을 사수하느라 꼼짝도 못한다라고 했으면서 일본은 100%의 전력이 한국과의 해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일본도 러시아나 중국 쪽에 있는 함대를 다 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일본의 전력이 100% 온전하게 가동된다고 본 것이죠.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탄도탄, 순항미사일, 특수전 부대 등에 의한 타격이 일체 배제된 허무맹랑한 얘깁니다. 전에도 발제를 했듯, 제대로 된 항공기 보호 쉘터가 단 한 개도 없이 전투기나 초계기를 노천에 줄줄이 주기시키고 있는 천하태평 무사안일 일본 자위대 공무원들의 특성상 일본의 항공자위대는 지상에서 지리멸렬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그들이 가진 모든 전력(공자든 해자든)이 말짱하게 독도에 나타난다는 가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개전과 동시에 우리는 일본의 내륙 깊숙이까지도 타격이 가능하지만 일본은 우리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동해로 출격이 가능한 한국 공군의 전력이 F-15K 60대 뿐이라고 한 것.
이미 공중급유기 도입이 결정되어 있고 기종 결정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울릉도에도 활주로가 하나 생길 예정이구요. 오늘 당장 전쟁이 터진다면 모를까, 200대의 F-16과 F-15 및 울릉도의 비상활주로라면 우리가 동해상에서 제공권을 상실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P.S.
종편이라고 방송도 안 보고 신인균씨를 까는 댓글들도 보이는데,
"일본 총리에게 전화 걸어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된다"는 신인균씨의 발언은
1. 독도에서 한일 간의 해전이 벌어지면 한국 해군은 전멸 당하고, 해자대는 단 1척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2. 제주도 남방에 일본이 해상봉쇄를 실시해서 한국의 수출입이 30일 이상 전면적으로 중단된 상태
위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고 한 소립니다.
물론 위의 두 전제가 병맛 그 자체이긴 하지만 저런 두 가지 병크가 터진 다음이라면 싹싹 비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만" 수출입 1달 이상 못하면 GG치는 거 맞습니다.
해상봉쇄 떡밥, 독도해전 떡밥, 항모 보유 떡밥.
3대 떡밥 다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