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빈 공방전 엄청 치열한 전투였다고하죠. 오스만 투르크는 신형 대포들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빈의 성벽을 손쉽게 파괴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는데. 실제로, 대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성과 없이 공방전만을 벌이다가, 도착 이후에는 빈의 주요 성벽들이 누더기가 되어버릴 만큼 파괴력을 보였었죠.(과거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처럼, 실제와는 다른 소문만 퍼졌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정말로 성벽이 무너져내렸죠.) 한편으로, 성벽 밑을 파고 들어가 설치 폭파하는 방식이 이쯤되면, 하나의 전술로 완전히 굳어지기도 하였죠.
하지만 빈이라는 도시가 가진 지형적 특성상. 일부 구간으로만 병력이 집중되서 도시로 진입할 수 밖에 없었고, 빈의 수비를 맡았던 군대와 용병들은 이를 고려해 성벽에서 싸우는 것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좁은 진입구를 중심으로 방어를 하였죠. 이 때 테르시오 장창병(+화승총병)과 란츠크네히트 등이 유명해졌는데. 긴 장창으로 통로를 빼곡하게 막아섬으로써, 상대의 진입을 저지함과 동시에 후방에서 석궁과 화승총으로 지속적으로 유린했다고하닌깐요.
결국, 오스만 투르크는 성으로의 진입을 어느 정도 단념하고, 포위한 채 장기전으로 가는데... :3 여기서 그 유명한 폴란드왕 소비에스키와 그가 이끄는 후사르들이 지원으로 도착하면서 오스만 투르크의 본진에 과감하게 진입, 괴멸을 시키니. 오스만 투르크는 그 많은 병력의 통제도 안되는 상태로 연이어 합공에 노출되면서 전쟁이 마무리되었죠,
???
란츠크네히트는 이미 이전 30년전쟁을 마지막으로. 유명무실한 부대로 남아있거나-혹은 사라진 부대가 아닌가요?
제 5차터키전쟁중 2차 빈 공성전에서의 독일 용병부대의 존재감은. 없지 않았나요?
물론.독일제국. 황제동맹군의 작센-바덴-바이에른 등 제후국 소속으로 참전한 독일부대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알프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사후. 란츠크네히트는.몰락으로 보여져.수십년후에 발생한.
8주동안 이어진 빈 공성전.이나.결정타인. 폴란드 기병이 활약한. 칼렌베르크 전투에는 투입이 되지않았을듯 하네요.
:3 제가 예전에 본 글에서는, 500여명의 란츠크네히트들이 참전하였다고 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칼렌베르크 전투에서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고, 빈 방어전에서만 모습을 보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제 스마트MS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기억이 틀린 것 같기도하여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민간투자금을 끌어들이고.인력을 모집하고 수만명 이상의 군세를 이루었던. 란츠크네흐트의
전성기를 떠나 500명 가량의 소규모 부대라면.
중요한 전략거점이자 큰 도시인 빈의 자금력으로 고용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비슷시기에 몰락한. 프랑스의 스위스연대 처럼.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나 보네요.
초기에는 총 군사지휘권을 놓고 문제가 발생 독일군. 카를 5세 공작과 의견차를 확인하기도 하였지만.이미 오스트리아의 레오폴 트 1세가 동맹시 약속한 바라서.동맹군의 지휘권은 얀 3세 에게 이양한것은 맞지만. 이후
카톨릭 동맹군 야전 사령관으로 뛰어난 전과를 만들어내니. 충분히 영웅에 속하는 인물이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