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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19 02:56
[잡담] 군시절 추억 한자락.
 글쓴이 : 허각기동대
조회 : 1,553  

격오 진지에서 지루하고도 힘든 생활을 보내다가 어느덧 중대 본부로 돌아와 3개월여간의 기동소대 기간이
 
되었어요. 진지에서는 늘 작전대기상태가 소수인원으로 유지되어야 하는지라 스트레스와 고충이 만만치 않
 
았는데 여긴 밥도 때되면 식당가서 먹기만 하면되고 훈련을 좀 한다고 하지만 24시간 근무를 서야되는 환경에 비
 
하면 낙원같은 나날이 지속되고 있었어요. 그때가 장마철이었고 그 날역시 마침 비가 마구 쏟아져서 야외
 
 기동훈련 연습을 중단하고 어둑한 내무반에서 각잡고 앉아 보직못받은 대위 소대장님의 이론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사실 제 경우는 이론수업이 무지 재미있었어요. 신경작용제가 왜 사람의 동공을 풀리게 하고
 
방분방뇨를 유발하는지. 그때 옥심주사기와 아드로핀 주사기는 어떻게 각각 작용해서 뇌를 되살려 놓는지
 
하는 이야기들은정말 흥미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작전내규에 관한 강의로 전환되면서 중대에서도 가장 고참
 
이던 우리소대 선임하사가 나와 각종 수도권 작전에 관한 강의가 막 시작되고 있던 찰라 스피커를 통해 단말
 
마같은 통신병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 현 시간 부로 스노우화이트 발령 (정확한 명칭은 너무 오래전
 
이라 기억도 없고..또 이런데서 정확하게 쓰는것 조차도 좀 애매하네요) 스노우화이트 발령." 
 
내무반에서 고참들은 수마에 휩싸여 비몽사몽하고 있었고 맞은편 본부소대 내무반도 폭우때문에
 
내무반에 주저앉아 닭튀기고 있던 (졸았다는 말의 수도권 지역부대 은어) 상황에서 들린 그 경보는
 
소위 패닉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너나 할거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상으로 뛰어갔고
 
뒤에서 졸던 고참들도 어벙한 눈으로 스리빠를 신고 우릴 따라 쫓아왔어요.
 
봉우리에 위치해있던 포상에 뛰어올라가 비가 쏟아지는데도 포 방수카바를 젖힌뒤 뒤늦게 올라온 사수들
 
이 포에 올라타고 우리들은 열쇠로 탄약고를 개방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갔지요.
 
얼마나 재빨랐는지 순식간에 우리들은 사격준비와 동시에 각자 화이바를 덮어쓰고 방독면을 패용한채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제서야 선임하사가 헐레벌떡 하면서 언덕을 뛰어올
 
라오며 뭔가 잔뜩 화가 낀 음성으로 소리치고 있었어요.  우리는 고기눈이 벙벙한 표정으로 어정쩡한 자세
 
로 선임하사와 그 뒤로 보이는 소대장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헐떡거리며 올라온 선임하사가 아직도 잠
 
이 덜깨 비뚜름하게 화이바를 덮어쓰고 정신못차리고 있던 우리소대 제일 고참의 뺨을 그 빗속에서도 선명
 
하게 들릴정도로 짝 하며 후려 갈기는 거에요. 헉.. 저나 제 근처 계급의 군번들은 하늘색깔이 노래지는걸
 
느꼈어요. 아..뭔가 존나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쏘가리도 못건드리는 우리 갈참 뺨따구가 햄색깔
 
처럼 뻘겋게 물들게 만들다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좆됐다는 쌔한 절망감에 몸을 떨고 있을때 뒤쪽의 소대장
 
님이 소리쳤어요. "이런 개색히들이.. 포 빨리 안덮어. 선도계산기 다젖었네 이런 ㅆㅍ놈들이.. 장비 맛가면
 
다 뒤질줄 알어. 지금 당장 근무인원 제외하고 빤빠라로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우린 다시 우르르 내려가 비가 더 거세지고 있는 연병장에 팬티와 런닝바람으로 집합했어요.
 
뭐가 뭔지 몰라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앞쪽의 고참들이 "뭐야? 뭐야?" 하는 이야기가 오고가던중 감이 잡
 
혔는지 뺨이 부어오른 왕고가 우릴 돌아보며 "너 이 ㅆㅂ 새끼들.. 다 뒤졌다고 복창해."
 
뭐 어차피 이래죽나 저래죽나 빗속에서 이 몸뚱아리 세파에 헹가래 쳐지기는 마찬가질테고..저는 반포기
 
상태가 되어 비를 맞고 서있었어요. 잠시후 유격복 차림의 소대장이 나와서 우릴 굴리기 시작했어요.
 
와 바닥이 마시맬로우처럼 쫀득쪽득하게 젖어있으니 피로감이 급속하게 찾아오더군요. 몸과 마음이 파김치
 
가 될즈음 비는 잦아들고 중대 정비반이 평소 상태가 좋지않던 화포 진공관계산기가 젖었다는 소릴듣고 점
 
검차 포상으로 올라가는게 보였어요. 소대장이 온몸이 진흙탕이 된 우릴 잠시 쳐다보더니 우리 왕고에게
 
물었어요. " 야 황XX이. 스노우 화이트가 뭐야?" 잠시 뜸을 들이던 왕고가 대답해요. "네. 적 스파이 위성이
 
우리 궤도를 지나갈때 전자침묵상태를 유지해야하는 작전을 말합니다." 
 
우리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어요. 그게 들어보긴 들어봤는데 거의 발령될일도 없는 진짜 듣보작전이었거든
 
요. 고참들이 그날 내무반 전기가 고장나 껌껌한 틈을타 뒤에서 잠만 쳐자지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
 
인데. 우리가 뭘 알았겠어요. 무슨 공습같은게 일어난줄 알고 군기들어보이는척 하려고 열심히 움직인 죄
 
밖에 없는데다 그 ㅆㅂ 개같은 통신병 새끼도 껌껌한 통신실에서 닭튀기다가 평범한 전문을 쳐받고는
 
 뭔소린지도 모르고 잠결에 마이크로 방송을 해버린게 컸던거죠. 화포 상태도 안좋아 중대장이 보직변경
 
얼마 안놔두고 화포 불량안내려고 무지 애를쓰고 있던것도 알고있었고.. 암튼 인간 좆팽이 치려니 별게 다
 
아다리 되더라구요. 암튼 그 일 나고 그 날 새벽까지 옥상에 집합해 대가리 쳐박게 된것도.. 결국 그 불량한
 
진공관 계산기가 습기쳐먹고 맛이 가버린..암튼 더럽게 운수없는날의 추억입니다. 아마 소대장도 선임하사
 
도 각기 상관들한테 쪼인트 존나 까였을꺼에요. 할말이 없네요 그러고 보면. 
 
아.. 군대 진짜 좆같애요. ㅋㅋㅋㅋㅋㅋ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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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g 12-09-19 03:51
   
예전에는 적성국 첩보위성뿐만 아니라 우방국 첩보위성도 경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빨간풍선.. 노란풍선..
     
허각기동대 12-09-19 04:00
   
기억의 파편을 조합하다 보니 자세한 부분은 부정확한 것이 있을걸로 압니다. 양해해 주시길. 내규 구문에 적국인지 구분하는 구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네요.ㅋ
부산영감 12-09-19 04:31
   
전보병출신인데..오래댄 군번입니다..86입대...우린 소대장을 까고 지냇는데..무시도 마니햇죠..ㅎ 유격훈련장서 각소대복귀할떄 소대장이 정렬하고 앞으로가..이라면 맨뒷줄 왕고가 제자리서..이라면서 한발작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ㅋ 우린 소대장말보단 왕고말듣죠,....안맞을라면..ㅎ 구타가 워낙 심햇던 시절이라..ㅎ
     
허각기동대 12-09-19 05:14
   
닉처럼 영감님이세요. ㅎㅎ 저 보다 몇 해 선배시네요. 제가 있던 부대는 3무 부대라고 해서 병이 함부래 장교 까면 곡소리가 났습니다. 꽃소위는 부임못할수 없는 부대다 보니 소대장들이 거개가 대위진급을 앞둔 고참중위나 우리 소대처럼 대위 소대장들이 자리를 차고 앉았었기 때문에 떠듬하게 병나부랭이들이 맞서다간 병풍뒤에서 향냄새 맞기 딱 좋았지요.
     
천리마 12-09-19 13:07
   
군기가 엉망 이엇군요. 소대장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네요. 그런애들은 명령불복종으로 영창을 보내고, 그래도 않되면 다른 부대로 전출 시켜 버리면 됩니다. 그런것이 상벌권 이지요. 내가 복무 하던 때는 월남서 철수한 병력들이 많아서 인지 병들이 살벌 했는데도 지휘체계는 존종해 줬지요. 다만 신삥 하사관 들과는 마찰이 심해서 장교들이 조정을 잘해 줬습니다.
          
허각기동대 12-09-19 18:06
   
가생이의 큰 성님이시네요. 어려울때 군대 다녀오셨습니다. 추억담이라고 해서 나오는 내용이 같잖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선배님.
없습니다 12-09-19 09:14
   
스노우화이트는 백설공주고, 그냥 스노우라고 불렀었죠. 비교적 자주발령됐었는데..
     
허각기동대 12-09-19 18:05
   
스노우였나요? ㅎㅎ 뭐 부대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오랜기간 격오생활하면서 거의 접할일이 없던 경보였어요. 고참급들은 알고들 있었겠지만 요식적인 교육에 실내가 컴컴하다보니 뒤쪽에서 비몽사몽간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