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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6 16:58
[잡담] 1996년 강릉무장공비 사건때 기억나는 두 가지.
 글쓴이 : 달빛대디
조회 : 3,292  

1996년 강릉무장공비 사건때.. 제가 이등병이었었습니다.


8사단 경기도 포천에 복무했었는데..


사건이 발생하고 좀 지나서... 공비들이 경기도로 넘어온다고 작전투입된다고 해서 저녁에 유서 쓰라고...

다음날 아침먹고 육공 올라타고 출동하는 중에 전원사살.. 작전종료로 그냥 복귀했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크게 두 가지가 바뀌었던걸로 기억합니다.


1. 계급장 색깔이 바뀌었다. (흰색/노랑 -> 검정)

   - 듣기로는 뒤에서 작전지휘하던 연대장이 저격당해서 사망했다고 들은거 같습니다.

      당시에 장교는 흰색, 일반병은 노란색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밝은 계급장 색깔이 먼거리에서도

      식별이 되어서 저격당했다고 모든 계급장이 검정색으로.. 그때 바뀌었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모든 계급장이 검정으로 바뀌고 나서.. 어두운 밤에.. 장교가 지나가는데도

       계급장 식별이 안되서 경례 안붙이는 사태가 벌어지자... 전투모의 장교계급장을 번쩍이는 크롬도금

       으로 다시 바꿔버렸다는...ㅋㅋㅋ..)


2. 매복시 참호의 전형이 바뀌었다.

    - 아마 처음에는 둥근 원형으로 매복호를 팠던걸로 압니다.

      그런데... 상황이 벌어지자... 교차사격이 되서.. 아군 참호에서 맞은편이나 대각선 우리 부대원이

      매복해있는 매복호 쪽으로 총알이 날아가서..아군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들었네요..

      그 후로 매복호의 전형이 일자 혹은 원만한 곡선형으로 바뀌었다고....


  p.s : 저도 예비군을 거쳤지만.... 예비군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거라는 착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강릉사태때.. 강원도에 예비군이 소집됐었는데... 가장많은 총기사고를... 예비군 아저씨들이

          일으켰다고 들었어요... 뭐 몸이 기억하니 복귀하고 시간이 지나면 예전실력 나오겠지만..

          그 전에는 그냥.. 현역이 최고다..가 맞을겁니다...ㅋ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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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까마귀 20-10-06 17:08
   
이등병이라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닥치쇼.

사자에 대한 명예에 똥칠을 하지 말고

하긴 조선족이 위키보고 떠들어대는
이야기 겠지만
     
달빛대디 20-10-06 17:15
   
조선족  ? 

여보세요~ 병원에 가서 상담 좀 받으세요~

저기 어딜봐서 사자에 대한 명예에 똥칠을 했다고?
     
드뎌가입 20-10-06 21:18
   
개뜬금없네
철마니 20-10-06 17:09
   
그때 국군수도통합병원이 근처에 살았는데 헬기 엄청 오고 갔었죠......
     
달빛대디 20-10-06 17:20
   
특전사들이 헬기타고 산 정상에 투입.. 아랫쪽으로 수색정찰하고 ..

보병사단에서 산 둘러싸고 위로 수색정찰 & 매복 하는 방식으로 작전했으니..

헬기가 많이 다니긴 했을겁니다.
booms 20-10-06 17:22
   
강릉무장공비를 가정해서 전면전을 대입하면 안됩니다. 전면전에서도 예비군이 징집되자마자 바로 투입될꺼라 생각하세요?

사병이 바로 투입가능한지 전투력 측정과 목표 기준이란게 있습니다. 그 기준에 맞춰 일반 병은 기초군사훈련부터투입까지 대략 2달이 넘게 걸리나 예비군은 투입까지 2주의 재교육만으로 현역급으로 올라옵니다.

그 기간동안 군은 보직에 맞춰 재편성과 보급을 준비하고 예비군은 보직에 맞춰 편성하고 군관련 교육과 함께 하고요. 작계에 따라 현역병들이 녹아내릴 동안 예비군 소집+교육이 끝나고 미군과 같이 밀고 올라가는 전략이 한국의 주요전략중하나였습니다.
     
없습니다 20-10-06 17:24
   
우리군의 경우 동원사단은 보통 D데이 + 2~3일이면 전투에 참가해야합니다. 그리고 전투사단에 증원되는 예비군은 아예 동원되자마자 전투에 참가해야 되고요.
          
booms 20-10-06 17:32
   
지금은 모르겠으나 합동훈련때는 전방사단이 모두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받더라도 후방으로 예비군을 보내고 재교육 재보급 재배정해 미군이 오면 같이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간부한테 "아니 현역들 너무 소모시키는거 아니냐? 예비군으로 밀어붙이는게 가능하냐?"라고 항의겸 질문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킬체인과 더불어서 사전 징후가 보이면 발빠르게 대응하게 수칙이 바뀐걸로 아니 다르겠지만요..
          
없습니다 20-10-06 19:35
   
예비군도 여러가지라.. 님이 말하는건 전시 창설부대 이야긴것 같군요..
==============
개전 초기 동원부대 전투력 발휘 제고

현재 우리 군은 개전초기 평시 00여만 명의 병력을 000여만 명으로 확
대하여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하는 어려운 군사적 환경을 극복해야 하
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전방군단지역으로 투입되는 00만여 명의
동원전력은 동원령 선포 후 1~2일내에 해당 전투부대에서 상비전력과
같이 전투준비가 완료되어야 북한군의 초전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전시 동원체제의 문제점 및 발전방향 중=
     
달빛대디 20-10-06 17:27
   
음.. 제 말씀이 그거입니다..

위에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기억을 하니 제 실력이 나오겠지만"이라고 말씀드렸지요..

96년도 당시에는 거의 바로 현장투입되었을거에요.

제 뜻은.. 소집되고 총 받자마자 바로 현장뛰어가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한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뭐 그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booms 20-10-06 17:30
   
1~2명을 잡기위해 수만명을 투입한것과 수십만의 병력이 전면전으로 부딪치는 작전의 긴장감이 같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예비군들도 실제 "우리쪽으로 오겠나" 하면서 시간보내길 일수였고 그걸 같은 선상에 대입해서 예비군에 대한 착각하지 말라는건 애초에 예시가 적절하지 않다는 거죠.

실제 군부가 생각하는 예비군 전력은 상당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달빛대디 20-10-06 17:39
   
음....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그 당시에 어느 누구도 훈련받듯이 임한 사람 없었을겁니다.

저야 투입되는 도중에 리턴했지만.. 출발하기전에 전사자 소식받고.. 정말 비장하게 차에 올랐었거든요..

그리고... 매복하는 한밤중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실제로 크레모어 터트리고.. 매복호에 수류탄까지 날아들고 했었는데.. 긴장감이 없었다뇨 ;;

작전투입됐던  친구들 말로는 어후... 공포심과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데.. 예비군이라고 달랐으려구요...

다만.. 실제 예비군 전력이 소집되고 재훈련 약간 받으면.. 그 전력이 상당해지걸거라는 건 저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booms 20-10-06 17:53
   
선생님 글에도 나와있지만 전사자가 나온 이후 긴장감이 올라간거지 처음부터 그러진 않은 걸로 압니다. 긴장감이 없다라는게 아니라 같지 않다라는 겁니다. 뭐 실제 투입된 선배들 상황에 단정해 말하긴 뭐하지만 부대에서 초병근무에 대한 교육을 할때 사례로 강릉무장공비를 이야기 해줬습니다. 안좋았다는 예시로요.

당시 예비군 소집도 무시하고 걍 벌금내고 만 사람들도 있었고 언론에서는 무슨 게임중계하듯 하나의 유희로 봐버리는 바람에 더 그런면이 있었던걸로 압니다. 전방사단 현역분들에겐 전혀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어차피 하고자 하는 말은 같습니다. 예비군이라봐야 20대중반들이기에 체력적으로 그리 떨어지진않습니다 다만 민간인 생활을 하다오니 바로 작전에 투입될정도로 긴장감과 자각엔 한계가 있겠죠. 다만  2년간의 숙달이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듯 현역들 만큼 전투력이 올라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전 예비군의 힘이 상당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실제 제가 한 훈련들은 예비군으로 전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당시 근무땐 현역병으로썬 현역병을 소모품으로 보는 듯해 불씬한 시각으로 봤지만요.
                         
달빛대디 20-10-06 18:24
   
하긴.. 맞는 말씀이죠... 우리부대도 우스개소리로.. 임무가 북이 내려오면 후방부대가 올때까지 몸빵하는거라고...^^;;
빅터리 20-10-06 18:09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96년 7월에 연천군에서 통신설비병으로 제대하고 1개월뒤에 물난리 나서 휴전선까지 가설된 전화선 쓸려내려가고 그뒤 1개월만에 강릉무장공비 사건이 일어났죠.
그때 느꼈던것은 2가지
첫째는 아~ 불쌍한 후임병들
둘째는 그때 뉴스에서 비트를 찾는 최첨단 장비라면서 쇠막대를 보여주는 뉴스를 보면서 'x바 저게 최첨단이냐' 했던
     
booms 20-10-06 18:14
   
아조씨도 고생하셨네요
     
달빛대디 20-10-06 18:25
   
연천이면... 혹시.. 열쇠.... ?? ㅎㅎ

rct나 att 때.. 쌍방훈련 상대가 거의 연천에 있던 열쇠부대였었죠....

덕분에 행군으로 연천 일년에 꼭 두어번 이상은 갔던거 같습니다.. ㅡㅡ;;
user386 20-10-06 18:37
   
제대하면서 바로 반납한 군기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ㅋ
따식이 20-10-06 18:38
   
그냥 연대장이 아니고 기무사 대령 이었습니다.

야지에서 작전 지휘 하다가 나무 위에 매복해 있던 적 특작조에게 저격 되었습니다.

관자노리를 명중 당했었고 그때문에 계급장이 바뀐건 맞습니다.

부사관은 태극 문양 들어간 디자인 때문에 2번 바뀌었죠

승조원은 모두 무릅 꿇은 자세로 머리뒤에 총을 맞아 사망한 상태였고 특작조 3명은

사살1 생포1 탈주1

안타까운건 대민 지원 나갔던 병장 한명이 탈영보고 되었는데

몇달뒤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됨.. 소변보러 풀숲으로 갔다가 적과 마주처서 사망...
수염차 20-10-06 19:27
   
제가 그당시 예비군이엇습니다....
동원되서 현장에 잇엇구요.....
왜 날 비하합니까....목숨걸고 투입됏는데 말이죠....ㅋ
총기사고 일으킨적 없습니다`~~!!!
     
달빛대디 20-10-06 21:07
   
허헛...비하라뇨..당시 상황전파  및 내무교육 때 전해들은 썰을 푼거라...
그나저나 소집에 응하시고 나라위해..저라면 현역이 아닐때 소집명령 떨어지면..어땠으려나 싶네요..존경스럽습니다..ㅎㅎ
크레모아 20-10-06 21:14
   
강릉무장공비 사건 때 이야기 들어 보면
예비군 소집하여 작전 설명 중이었는데
갑자기 총소리 한 방이 울렸는데(오발)
편안하게 작전 내용을 숙지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어디로 은폐를 했는지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일 정도라덥니다
배가 산 만하게 나온 예비군 아재가 수 십 미터를 날아 가다 시피해서 하수구에 처 박혀 있더라는
그걸 보고 굳이 훈련이 필요할까 싶었다는....
     
돌아온드론 20-10-06 23:08
   
그게 실전의 힘이죠.ㅎㅎ

저희 부대 대대장님도 강릉무장공비때 이야기 해줬는데 병사들 매복시켜놓고  잘 있는지

확인차 순찰을 나갔는데  매복지점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병사들이 안보여서 몇번이나 위치확인한후에 찾아도 안보여서  이름부르면서 나와보라고 하니깐 바로 옆에서 쓰윽 일어났다고 하더라구요.ㅋㅋ  그러면서 대대장님이 실제상황되면 다 알아서 하니깐 훈련때는 안다치기만 하면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ㅋㅋ.
달빛대디 20-10-06 21:25
   
음...실화 아니겠죠?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이 나려 합니다...ㅎㅎ

제가 군생활하면서 절대 잊어버리지 않은 세 가지가 있는데..제 군번하고...신병교육 5주차 행군때 세상을 떠난 훈련소 동기녀석의 이름과 번호입니다..

같은 내무반 제 침상 맞은편에  있던 녀석이라...
남들보다 일주일 먼저 일계장에 계급장달고 장례식에 참여했었죠.

우리를 부둥켜안고 우리새끼 보는거 같다고 울부짖던 어머니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강릉공비사태때도 많은 군인들이 죽었던데..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코기주인 20-10-06 21:34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신 군인장병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지금과 다르니까 그땐 너무 장비가 열악했조 야간에 아파치만 멀리서 열영상만으로 감시만해도 포위된 적이라면 야간에 움직인다면 죽는거조 다른 열영상장비들도 많이 보급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였습니자
     
달빛대디 20-10-06 22:39
   
그시절엔 장비가 좀 그랬죠...전시에 야시장비가 소대에 두 대였나..그랬을겁니다...ㅡ.ㅡ

요즘엔 모르겠는데..야간에 주변시를 활용한 야간사격 훈련도 많이 했었다는...ㅜㅜ
도나201 20-10-06 22:21
   
강릉간첩잠수정침투시에 상당히 관심갖는 국가가 몇 있었죠.

우선은 몇가지 단점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1.언론통제 실패.
2.비실전성향의 작계전술실패.
3.예비군의 통제 실패.

그러나 그에 비해서 엄청난 장점이 부각되어서.
다른국가에서는 공포를 떨게 할만큼 중요한 면이 부각되었죠.

1.특수전투병력의 작전투입.
2.빠른 전술이동능력.
3.예비군의 참여율.  및 예비군의 작전이해도

위에 문제점은 매우 빠르게 시정되엇고.
특히 언론의 통제는 접근성이 굉장히 제약되었습니다.
후에 언론들은 소설들을 뿌리기 시작했지만, ㅡ.ㅡ.

현재도 군관련은 언론의 접근성은 굉장히 어렵다고 보면됩니다.

바로 계급장부터 바뀠죠.  뭐 항간에는 노란색계급장의 구형군복이 일본에서 중고거래로 5배이상 뛰었다고..
거기에 예비군의 페인트탄 사용되는 시가전.
등 실전에 사용되는 훈련으로 많이 바뀌었고,
 kctc 훈련장의 확충이 결정되었습니다.
여기에 야시장비의 개발이 이뤄지기도 .....ㅡ.ㅡ

예비군의 통제능력 은 그에 합당한 지휘자의 능력부족 및 자질이 가장 큰원인이였죠.
후방에 배치한다고 하다가 전방배치한다고 하다가.
인원부족에 재편성등등....
갑자기 동원된 예비군병력에 대한 통솔권의 과부하가 걸린 지휘관의 잘못으로 판명됨.
특히 현장지휘관의 예비군병력의 활용이 미흡했다라는 이야기임.
이부분은 아직도 과제로 남겨져 있음.
예비군병력이 긴급편성과 배치시에 그 인원활용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라는 이야기임.

그러나....

특전대의 투입과정과 작전능력에 대해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김.
특히 일본에서는 이러한 전력의 작전배치와 작전과정을 깊이 연구하게됨.

그후 대단위 병력이 산악지형에서 전술적인 부대배치시간에 경악을 함.
사실 전쟁은 숫자배치싸움인것이 보병사단의 가장큰 능력임.
근데 바로바로 위치배정및 작전지에 대한 배치능력에 혀를 내두름
이부분은 미국에서도 매우 관심있게 지켜봄.
거의 이건 델타포스급의 작전지 이동능력을 보여주었음.
(한마디로 이산이 아닌가벼.......  얘들아......저산으로 튀었댄다...ㅡ.ㅡ )

예비군 소집율에 일본여론 및 중국은 첨에는 안도의 한숨과 조롱을 보냈음.
그러나 일주일후에 소집율의 잔상을 보고서
이부분은 두번다시 거론하지 않아고 아가리 닥치고 있었을정도임.

이때 예비군소집율을 기반으로 작전병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인데....
소집율에서 초반에는 그럼 그렇지 .. 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후에 .. 상세결과를 보고 나서 경악을 했음.

당시 연고지 배치로서  소집대상대부분이 타지에서 돈벌이하고 있었음.
소집율이 27% 였나 했는데.....
불참자의 70%가 타지에서 돈벌이중.
기타 10%는 장례식을 비롯한 결혼식참석 등등 기타 사유로 합당한 사유로 불참.
20%정도가 . 무서워서 의도적으로 피함.

결론적으로 70%를 상회하는 예비군참여율을 보인것임.
특히 일본에서는 이런부분을 보고 경악을 했다라는 후문도 있음.

거기에 예비군이 무서운게....작전의 이해도가 현역못지 않았다라는 것임.
소집한지 2시간만에 총기지급등등 해서 바로 작전에 투입되었음.

거기에 후에 바로바로 연고지에 의해서 대상이 된다라는 것 알고는 바로 예비군에 소집함.

결국 소집한 상황에서 현역병하고 적당히 섞여서 배치 해야 하는데
주간은 예비군 야간 현역 해서 배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음.
특히 배치된 후에 자신이 살전 지역이라서 지름길등해서 작전속도도 현역병보다 빠른 곳도 있었다고 함.
(물론 술배급하러빠져나가서 간식조달등등.....많은 보급물자전송도함 ㅡ.ㅡ.)

그러나 확실히 배치된상황을 보고서 작전이해가 완빵이라서 심지어 그리가면 안되고
다른데를 막아야 한다라는 의견을 낸 예비군이 있었는데..........실제 간첩도주로하고 일치했다고 함.
결론은 무시되었음. ㅡ.ㅡ.

가장 문제는 현장지휘관들의 우왕좌왕한 판단미스가 작전실패에 가장 큰원인으로 보고 있음.
후에 특히 예비군과 현역의 .....특히 현역병들위주로 작전을 하다보니 장기간의 긴장상태에
피로감이 가장 큰원인이 되었음.

예비군의 긴장감도 느슨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것도 문제.
결론은 예비군과 현역병을 어떻게 현장조합이 적절할지 이부분은 가장 크게문제되었고,
현재까지도 연구과제중하나임.
     
달빛대디 20-10-06 22:42
   
도나님의 하시는 일이 급 궁금해집니다...
어쩜 제가 듣도보도 못한 내용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지...ㅎㅎ
     
booms 20-10-06 23:21
   
마지막...문단 그게 되면 그나라는 전시중인 나라죠...
Republic 20-10-06 22:27
   
ㅎㅎ
그당시 68사단 000연대 중대장출신이
제 옆에서 이글을 눈팅하고 있습니다.
3연대쪽으로 들어왔죠.
현역? 도 나름인지라..
     
달빛대디 20-10-06 22:44
   
헛...당시에 고생하셨겠어요...
투입됐던 친구들말로는 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쓰담쓰담쓰 20-10-07 04:21
   
제가 그때 병장으로 홍천에 있는 부대에 근무했었는데 오대산으로 출동해서 3달  가까이
산속에서 작전하다 왔는데 잊혀지지가 않네요
쓰담쓰담쓰 20-10-07 04:38
   
지금도 생생한게 그때 개인 지급된게 탄창2개, 수류탄1발,
매복조는 야간투시경, 레이저조준경 이었습니다.
낮에는 8부능선 따라서 총에 대검꽂고 땅 찌르고 다녔고,
밤에는 땅파고 4명정도 골짜기 경사면에 매복해 있었죠.
한번은 야간에 60mm조명탄 쏘고 크레모아 터뜨리고 m60갈기고 약간의 트라우마라고 해야하나...  잊혀지지가 않네요.
검독수리 20-10-07 11:00
   
난 95년6월 군번..당시 상병 추석전에 휴가 냈는데...공비사건 발생해서 취소 당하고...강릉 무장공비때문에 추석달을 참호에서 바라봤네...방탄복 입고 매복하고...다 쏴 죽이고 싶었다....강원 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