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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3 14:28
[사진]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소속 프랑스인들 일화
 글쓴이 : 노닉
조회 : 1,820  



때는 1945년 5월 6일 나치 독일 제3제국의 몰락 하루전 독일 바이에른 주 오버 바이에른의 바트 라이힝할에서 무장 SS 12명과 국방군 소속 1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들의 옷에는 프랑스 국기가 있었다. 바로 SS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소속의 프랑스인들과 국방군 소속 프랑스인이었다.

이들을 붙잡은 것은 자유프랑스군 제2기갑사단 차드 연대 소속 제4중대였다. 매국노들은 자유프랑스군 병사들에게 폭행당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7일 자유프랑스군 제2기갑사단 지휘관 필리프 르클레르가 이들을 찾아왔다. 이들의 모습을 본 프랑스 장군이 말했다.

"프랑스인이 어떻게 다른 전투복을 입고 있을 수 있느냐!!!(“How could you, the French, wear someone else’s uniform?)"

그리고는 온갖 모욕적인 말을 쏫아냈다.

그러자 이말을 듣던 무장 SS 병사가 대답했다.

"이보슈 당신도 다른나라꺼 입고 있네요. 미국꺼!(''Sir, you too wear a foreign uniform, the American one!')"

열받은 르클레르는 소리질렀다.

"거만한 새끼들!"


그리고 1945년 5월 8일 재판없는 즉결 처형이 명령되었다. 카톨릭 신부들의 입회를 허가하지 않았는데, 군종 신부들의 협박으로 결국 처형전 군종 신부면담을 허락했다.

독일 카를슈테인에서 4명씩 총 3개 조로 나누어 처형했다. 처형당하는 프랑스인들은 르끌레르가 참관한 것을 보고 죽으면서 외쳤다. "비바 라 프랑스!(Vive la France)"

이날은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었지만, 이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총 12명이 처형된 후 르끌레르 장군의 명령으로 들판에 널브려 놓고 자유프랑스군은 떠났다.

3일 뒤인 1945년 5월 11일 지나가던 미군들이 이들의 시신을 발견하고 12명 전부 고이 묻어주었다.

잠깐 13명인데 1명은 어디갔지?


ㅋㅋㅋ 내 친구 아들은 못죽이지 내가 왜 여기까지 왔겠냐. 친구 아들 구하러 왔지. 이건 비밀이다 

그랬다. 친구 아들이 무장 SS중 한명이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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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귀찮아 21-01-03 15:26
   
인맥의 중요성
공장장 21-01-03 15:39
   
임막음을 하기 위해 12명을 죽였나?
승리만세 21-01-03 17:01
   
프랑스는 과거사 청산을 잘했다고하는데 정작 프랑스 내에선 나치에 협력한 장성과 기업인들은 하나도 공격받지않고 정작 나치에 의해 착취당한 힘없는 여성들 노동자들만 집중타겟으로 공격받고 재판도없이 그냥 죽이고 다녔음.
나치에 대한 분노를 독일군도 독일군에 협력한 정관계 인사가 아니라 정작 똑같이 착취당한 사람들을 서로가 선동하며 죽이고 다녔다며 그저 분풀이 대상으로 약자만을 골라 공격한 잘못된 행위라며 반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