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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17 16:02
[기타] [펌] 우크라이나군 최악의 날 - 일로바이스크 전투
 글쓴이 : 노닉
조회 : 4,791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꽤나 승승장구하고 있었어.

2월에 크림반도가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뺏기긴 했지만 나토와의 추가적인 충돌을 우려한 푸틴의 방침으로 인해

러시아군은 동부 내전지역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주로 반군 민병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지

우크라이나 군은 6월내내 산발적인 공세를 통해 무장이 빈약했던 반군들을 밀어내고

도네츠크의 슬라뱐스크 시와 일대지역을 탈환했어


도네츠크 공항에서는 아직도 우크라이나 정부군 잔존병력들이 치열한 저항을 벌이고 있었고

도네츠크 북부의 반군들이 와해되고 루한스크와 도네츠크가 정부군의 공세에 노출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7월내내 강력한 공세를 취하지만 급히 투입된 러시아군의 증원과

러시아 국경에서 날아오는 포병공격으로 인해 다수의 전력을 손실하고 소강상태에 들어가

그러나 7월 17일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이 러시아가 제공한 반군의 BUK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은 서방과 우크라이나 측에 강력한 명분을 쥐어주며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지


한편 도네츠크 남부전선에서는 아직도 우크라이나 정부군들이 잔존한 상태로 반군및 러시아와 치열한 교전을 펼치고 있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물자의 부족, 반군은 주요 전선인 도네츠크-루한스크 방면의 집중으로 인해 어느 한쪽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하는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됐지.


한편 8월 6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추가적인 공격행동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막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공수부대가 반군지역에 격추된 MH-17의 잔해를 자유롭게 조사하고 수거하여 국면을 유리하게 만든데에 격분한 푸틴은 좀더 러시아 군을 공격적인 방향으로 사용하기로 해.


우크라이나 군은 도네츠크 남동방면에 있는 일로바이스크 방면은 반군 전력이 취약하고 그곳을 점령한다면 북부전선에 대한 강한 압박과 남쪽에 고립되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대한 부담을 크게 덜어줄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8월 7일 전차여단과 다수의 기계화여단들을 동원한 일로바이스크 공세를 시작해


(8월 23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진격상황)


우크라이나군은 생각보다 강한 저항으로 인해 다소 느려지긴 했지만 18~19일간의 전투를 통해

최소한의 피해를 입고 일로바이스크 시청에 깃발을 올리는데 성공해 그때까지만 모든게 순조로워 보였고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대테러리스트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마지막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도해.

8월 20일 우크라이나군은 자신들이 일로바이스크 시 전체를 장악했다고 선언하지만 아직도 일로바이스크

시내에서는 곳곳에 교두보를 구축한 반군과 정부군 간의 치열한 시가전이 펼쳐지고 있었고

일로바이스크와 콤소몰스케 교두보를 이어주는 도로는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었어

러시아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히 공수군과 기갑여단을 급파하고 다수의 포병전력을 배치했고

일로바이스크의 우크라이나 군은 이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히 러시아군과 반군에 의해 포위당하게 됐지.


24~26일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점점 러시아 정규군 복장을 한 무장세력과 교전을 치루기 시작하고 BMD-2가 후방에서 돌아다니는걸 목격하면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걸 깨닫게 되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군의 증원이 이루어지는 중이라 신속히 퇴각을 결정하고 전 병력을 집중해 포위망을 돌파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탈출할 수 있었겠지만 일로바이스크 점령의 상징성과 우크라이나군의 정보자산 부족 으로 인해 러시아군이 완전히 우크라이나군을 독안에 든 쥐로 만들때까지 아무런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결국 사태가 완전히 심각해졌다는걸 깨달은 우크라이나군은 92기계화보병여단과 루흐 오포루 대대를 동원해 포위망에 대한 돌파를 시작하지만 제대로 된 공세를 시작하기도 전에 러시아 포병의 정확한 포격과 공수군의 공격으로 인해 돈좌되버려. 비록 사상자수는 경미했지만 다수의 기갑장비를 손실하며 당장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은 소멸되어 버린거지.


(8월 29일 일로바이스크 방면 우크라이나군의 후퇴)


결국 보급품이 거의 다 떨어진 일로바이스크 주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인도주의적 통로"를 보장받고 60여대의 차량에 분승하고 일로바이스크 시에서 후퇴를 해. 

Mnohopillya에 도달한 정부군은 도로의 상태와 대열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고려해 두개의 제대로 병력을 나누고 각각 다른 도로를 통해 후퇴하기로 해.


이때 러시아군이 태도를 바꾸며 우크라이나군의 모든 무장을 러시아군이 해체하겠으며 지원병 부대들을 남겨놓고 퇴각할 것을 요구해. 우크라이나군 사령관은 당연히 이 요청을 거부했으며 휘하 병력들에게 전투준비를 철저히 한 상태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어.

Oleksandrivka마을과 Krasnaya Polyana계곡을 통과하던 우크라이나 병력들에게 러시아군은 공격을 퍼부었으며 러시아군의 전차 몇대와 IFV가 손실되었긴 하지만 후퇴하던 우크라이나 군은 완전히 대열이 와해된 상태로 러시아군의 공격을 얻어맞으며 남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해. 후퇴도중에 300여명의 우크라이나군과 돈바스 대대원들이 절반이 넘는 사상자를 입으며 Chervonosilske마을을 확보하고 다음날까지 버티는데 성공하면서 다른 병력들이 후퇴할 시간을 벌어줘 하지만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Novokaterynivka지역에 집결해 있던 러시아군과 반군의 총공세로 인해 살아남아 콤소몰스케 방면으로 후퇴하던 우크라이나 군은 괴멸적 타격을 받고말지. 드니프로-2대대의 지휘관은 상대 러시아군의 지휘관과 교섭해 자신들이 잡은 러시아군 포로를 석방하는 대신 자신과 부하들의 무장을 러시아군이 해제하고 적십자의 보호아래 퇴각하는데 동의하면서 그나마 남은 병력은 온전한 상태로 퇴각하는데 성공했어. 콤소몰스케의 우크라이나군이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격하면서 러시아군이 퇴각하고 그나마 남은 병력들은 전멸을 피하고 포위망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해.



이 작전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대학살", 생존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고기분쇄기"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참혹한 실패였어. 반군 지휘관은 자신들이 목격한 우크라이나 전사자가 수백명에 173명의 포로를

잡았다고 증언했고, 우크라이나 정부 공식발표에 의하면 366명의 전사자, 429명의 부상자, 128명이 포로로 잡히고 158명이 실종됐다고 해. 우크라이나 언론은 10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고도 보도했고 도네츠크 반군측의 주장도 이와 비슷해.


반면 러시아군과 반군의 피해는 반군측에 따르면 150명 정도, 우크라이나 정부측에 의하면 500여명 정도에 대부분의 사상자는 초기 공세를 얻어맞은 빈약한 무장의 반군에서 발생했어.


한편 백여명의 민간인들이 이 전투의 여파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BBC, 알자지라 등의 방송국이 보도했지.


가정집 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에서도 총격과 포격에 의해 다수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


이 작전의 참상은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게 했고 10월 14일 국방장관 Valeriy Heletey가 우크라이나 병력간의 작전조율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돼.


한편 우크라이나의 군사작전에도 큰 차질을 끼쳐 9월 도네츠크 공항이 함락당하고 남쪽의 돌출부가

섬멸당할때도 우크라이나군은 대응에 어려움을 빚어 결국 전쟁이 지금까지 장기화되게 되었지.

매년 8월 29일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날을 '우크라이나 수호자의 기념일'로 두고 추모하고 있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ilipoli&no=15126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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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남자 20-10-18 19:24
   
우크라이나사태가 올해로 몇년째맞이한걸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