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런승만이 피난가서 살았던 저택을 임시수도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보존해놨거든.
거기 가면 런승만이가 부산에서 전전긍긍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음.
그 위로 올라가면 민주공원이라는 곳이 있고, 거기에 광복기념관이라는 곳이 있음.
거기서 주변을 둘러보면, 옛 판자촌, 그리고 지금은 산동네로 불리는, 산 정상까지 빼곡히 들어찬 집들을 볼 수 있음.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산복도로들과 각양각색의 색을 띄는 집들이 보임.
그리고 그 아래로 부상항이 보여.
평지라고는 매립한 땅 말고는 없는 부산인데, 수많은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산정상까지 판자촌을 짓고, 주춧돌로는 일제시대 만들어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을 써서 겨우 살아갔던 사람들이, 저~~기 아래 부산항에서 미군 하역물자 내리는 일 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았는데, 산에서 내려가 일하고, 또 다시 저녁이면 산을 타고 올라갔던 고된 삶이 그대로 한눈에 담기는 모습임.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반공으로 낮은 지지율 끌어올려보겠다며 허구헌날 북진을 외쳐대다가, 정작 북괴가 쳐들어오니 피란민들 빼곡히 올라선 다리를 폭파시키고 몰래 도망쳤던게 바로 런승만이다.
서북청년단이라는 깡패조직을 만들어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법 테두리 밖에서 잡아 죽이고,
언론의 자유는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 생각했던 사람이며,
일제 치안유지법을 본따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국가 정체성을 위협했던,
양녕대군 후손임을 내세워 사실상 왕으로 군립했던, 유교 파시스트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큰 오점 중 하나임.
왜 교회따위가 정치적 문제에 끼어드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런승만이라는 희대의 쓰레기를 빨아대는지도 이해를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