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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3 03:20
[밀리터리 역사] 2차대전 히틀러의 최대 미스테리와 6.25 김일성 미스테리
 글쓴이 : 달다냥
조회 : 2,949  

덩케르트 철수 30만명


낫질작전에 배후를 찔린 영프 연합군이 덩케르트로 몰려들었다. 포위망을 형성한 히틀러는
3일동안 육군으로 쉬게하고 공군을 이용한 폭격만을 했다. 천금같은 3일을 버팀돌삼아
30만명의 연합군이 영국으로 철수하게 된다.

덩케르트에서 독일이 3일간 쉰것은 2차대전 최대 미스테리 중 하나로 꼽힌다.
히틀러가 영빠라는 소리도 있고, 공군사령관 괴링의 호승심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김일성은 서울을 점령하고 3일간 멈춘다. 서울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낙동강 방어선을
만들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북한군의 서울에서의 3일은 6.25 최대 미스테리로 꼽히게 된다.
황장엽이 김일성에게 들은 바로는 스탈린이 초도물량 이후 보급을 안해준 것이
원인이었단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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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소다 12-10-13 03:30
   
서울은 순식간에 뚫었지만, 동쪽 몇사단인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동부전선은 꽤 버티고 있었습니다, 한강다리가 폭파된 상황에서 보급로가 확보되지 못했고, 자칫하다가 동부 전선이 수비에 성공한다면 서부전선은 인청상륙작전 비스므리하게 쌈싸먹힐 수도 있었던 걸로 기억 하네요. 짬날때 틈틈히 봤었는데 다 까먹었음 ㅠㅠ
     
오리발톱 12-10-13 08:01
   
6사단이었죠. 최갑석 장군(춘천전투 당시 상사로 포병대대 근무)의 말에 따르면 6사단은 상부와의 통신이 끊어진 상황에서 반격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신이 재개된 이후 서부전선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로소 퇴각했다고 합니다.
          
주말엔야구 12-10-13 16:16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서부전선이 일반 북한 인민군이라면 동부전선에 투입된 인민군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쉽게 말하면 당시 인민군의 정예부대였습니다.
솔로윙픽시 12-10-13 05:08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내용입니다만, 히틀러는 이미 전쟁 초기부터 소비에트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동부에 독일 민족의 생존권 (Lebensraum)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죠. 이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나 그의 수기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틀러의 목표는 프랑스를 제압하고 영국과 화친한 후 동부 전선으로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덩케르크에서 진격을 멈추고 포위된 영국 육군을 살려 보낸 것은 영국과의 강화를 위한, 말하자면 선물이었던 것이죠.

히틀러는 수 차례 영국에 화친할 것을 제안했지만 영국 수뇌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후 독일군의 침공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결국 영국이 시간 벌기만을 원할 뿐, 독일과 손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히틀러는 결국 영국 본토 침공전을 시작했던 겁니다.
     
데스투도 12-10-13 06:39
   
그마져도 베틀오브 브리튼으로 독일 공군전력의 상당수가 날아가자 더더욱 영국본토에 대한 육군의 상륙은 꿈도 못꾸게 된거구 말입니다,
끄으랏차 12-10-13 07:59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6.25때 3일간 정지한건
서부전선은 북한의 작계대로 공략이 되었지만

강원도쪽 동부전선이 정상적으로 공략이 안되었기때문입니다.
이는 부대의 피해만 봐도 알수 있는데
서부전선의 부대는 대부분 적정선에서 철수하고
큰 피해를 당해도 와해가 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동부전선쪽은 아예 전멸당한 부대도 심심찮습니다.
전열이 무너져서 도망가고 철수한게 아니라.
그냥 아예 다 죽을때까지 버틴거죠.

이 때문에 서부전선을 공략한 부대들도 정상적으로 전진을 하지 못하고 대기하게 됩니다.
후방을 내줘서 쌈싸먹기나 보급로 차단을 당할수 있으니까요.
     
뚱쓰뚱쓰 12-10-13 15:31
   
ㅇㅇ강원도 횡성인데...아직도 그때 돌아가신 군인분들 사체발굴 아직도 하고있어요 계속 나온다고..네덜란드부대가 여기서 전멸해서 위령비 새우고 매년 네덜란드군인들 초정해서 행사하고 그럼
     
없습니다 12-10-14 02:08
   
6사단이나 8사단의 초기 전투에서 중대급 이상이 전멸한 적이 있었나요? 그런기록은 전혀 본 기억이 없는데요..
shonny 12-10-13 10:31
   
일단 인민군이 밀고 내려올수있던 이유가 인민군 전차여단이 뒤에서 지원했던거 아닐까요.. 한강대교 폭파뒤엔 도하장비없어 지체됐는데.. 전차지원없이 밀고 내려오기도 힘들었던거 같고..
애초에 북한 계획이 1사단은 서울만 점령하는거였죠.. 춘천쪽으로 가서 점령한뒤 돌아서 포위망짜는거였는데.. 거기서 시간 지체해서 포위망이 안짜여졌던거고요.
Har00 12-10-13 16:21
   
제가 꼽는 2차 대전의 최대 미스터리는 왜 독일에게만 선전포고를 했느냐는 점입니다.
2차 대전의 시작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따른 폴란드와 동맹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히틀러는 누누히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소련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었고, 폴란드를 침공한 것 역시 그런 계획의 연장선으로 전면적인 침공을 위한 계획의 일부였죠.
그런 히틀러에게 서부는 애초에 공격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는 선전포고를 하면서 소련에게는 손을 내밀죠. 실제 선전포고의 빌미가 된 영국 폴란드의 상호원조협정 또한 독일의 침공 직전인 1939년 8월 25일에 체결됩니다.

공산주의 보다는 국가사회주의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걸까요?
     
솔로윙픽시 12-10-13 16:34
   
그때까지는 공산주의가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고, 어쨌든 전쟁을 먼저 시작한 건 히틀러였으니까요. 오스트리아 합병하고 수데텐란트 따먹고, 폴란드까지 침공하는데 일단 폴란드와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었단 말입니다. 독일 하나 상대하기도 벅찬데 그 상황에서 소련에게 전쟁을 선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Har00 12-10-13 20:00
   
문제는, 그 폴란드 조약을 맺은 것 자체가 이미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의 일입니다. 즉, 독일은 침공은 9월에 있었는데 조약은 8월에 맺었으니까요. 침공 직전에 맺은 겁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계획에 의하면 폴란드 침공은 대 소련 전쟁을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즉 중간지대인 폴란드를 없앰으로 소련으로 진격할 때의 장애물을 미리 치우자는 것이었거거든요.
따라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 굳이 초전에 전쟁을 벌이지 않고, 독소전 후나 중간에 끼어들어도 될 일을, 독소전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자청해서 전쟁을 벌인 형국입니다. 그래놓고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게 발리자 소련의 참전을 요구하기에까지 이르죠.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호의적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소련의 위협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실제 1차 대전 이후 공산화된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었거든요.
그럼에도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세라푸 12-10-13 23:24
   
당연히 공산주의 보다 국가 사회주의가 더 위험하죠.. 국가사회주의는 제국주의의 극한인데요.. 그리고 공산국가는 당시에 소련뿐이었습니다..
써리원 12-10-13 18:33
   
625때 서울에서 3일쉰건 미스테리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