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 수상이 미드웨이 해전이 끝나고도 1달동안이나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의 운명을 건 전투의 결과에 대해 한 나라의 총리가 한달이나 깜깜무소식이었던 거죠.
해군측에서 미드웨이 전투에서의 손실을 꽁꽁 숨기고 육군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조는 육군출신)
어느 나라나 육해공군간에 질시와 반목은 있게 마련이고 당시 미군도 육군의 맥아더와 해군의 니?츠 사이에
주요 작전을 놓고 종종 다툼이 벌어지곤 했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주적이 미군인지
같은 일본군인지 의심이 갈 정도...
그외 일본해군의 또다른 삽질이라면 이 전투에 참가한 장병들에 대한 대책.
미군은 같은 상황에서 전투에 참가한 장병들의 실전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이들을 후방의 교관으로 돌리거나
새로 창설되는 부대의 기간요원으로 삼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본해군은
전투의 결과를 감추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각 전선에 뿔뿔이 흩어놓고 그냥 소모품처럼 써버립니다.
이는 특히 조종사 충원에 치명적이었는데, 양성하기 아주 힘든 해군조종사를 단 하루에 300명이나
잃고도 조종사 양성에 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 전쟁이 진행될수록 제대로 피를 보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 일본해군의 조종학교에서 배출한 수료생의 숫자가 1년에 100명...)
한심하고 무능한 도조 히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