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당시를 생각해야죠
이승만을 욕하기전에 독립한지 5년 된국가가 뭘할수 있겠음??
북한하고 중국에는 적어도 2차대전 국공내전에 참여한 배테랑들이라도 많았지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일본의 답없는 전술을 배운 일본 사관 군인 출신 하고
인제 새롭게 봅은 신병 사관들로 이루어 져있는 상태에서 뭘더 우리나라에서 뭘 하겠음??
미 10군단장의 무능과
국군 육본의 안일한 일처리
연합군 지휘권의 분리
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재흥은 군단장으로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순없지만,
오마치 고개지역에 대해 작전권을 가진 미10군단장에게 방어해 줄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육군본부에 지속적으로 보고하며 문제 삼았습니다.
고립된 현리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사단장들과 회의를 거친후 반격을 해서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는 작전지시를 내린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후방 군단 사령부로 돌아온겁니다.
하지만 반격 작전에 투입되기로 했던 대대가 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그냥 후퇴했으며 이에 전체적으로 포위된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산되서 후퇴하며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국군 3군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해체됐으며,
UN군 전체가 적의 돌출부를 방어하기 위해 전선전체가 후퇴하게 됩니다.
연합군 사령관은 국군의 지휘권을 뺐고,
국군 사단들은 모두 미군 군단에 배속되게 됩니다.
전쟁 도중이었지만 국군사단들은 순차적으로 후방으로 빼서 미군에게 다시 훈련을 받고, 재무장 되게 됩니다.
6.25 전쟁당시 한국군에는 일반병의 훈련도 최악수준 이었지만,
대규모 병력을 지휘해본 지휘관 역시 극소수 였습니다.
명장이라는 백선엽도 전쟁을 겪으며 빨리 배워서 성장한 인물입니다.
김석원 같이 일제 전쟁영웅 출신 장성도 있었지만, 이 분은 기본적으로 미군과 사이가 나빠서 전세가 회복된 이후에는 지휘를 할수 없게 되었죠.
당시 국군 지휘관중
독립군 출신 지휘관들은 대규모 전투를 지휘해본 경험이 부족했고,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은 미군 군사고문과의 관계 정립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만주군 출신 지휘관들은 만주군에서 일본군 군사고문과 지낸 경험으로 미군 군사고문과의 관계도 잘정리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주군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