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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22 22:52
고대전쟁중 차후 후대 역사에...큰 변화를 줄수 있었을
 글쓴이 : 스마트MS
조회 : 2,582  

네.

독일의 프리드리히 1세. 붉은 수염. 적염왕赤髥王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와 그의 대규모 군세 입니다.



뭐 저 프리 대왕의 그림은 상당히 미화된걸로 압니다...

십자군 진격시. 상당히 고령으로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고령이래도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상당한 군주였던것 틀림없을듯 합니다.

1차오합지졸 십자군이 망한후. 본격적으로 유럽의 제후들이 모아서 진행하던 십자군들중.

제일 강한 군세를 지녔죠.  영국. 프랑크 애들이 기병 수백 보병 수천이라는 규모에 비해...

기병 수천. 보병 수만....을 모아서 진격을하였습니다...그 군세의 위용이 가히 상상만으로 대단하군요.

(살라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었죠...게다가 성격조차..둘다 코드가 비슷했었나 보더군요...)

대략 10만에 가까운 군대가...배를 구할방법이 없어. 지도상. 유럽의 가장 북방에서 부터...이탈리아 반도에서 배타고 건너온게 아니라..옆...육로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당시의 소아시아로 진입...
육로로....엄청난 대원정을 진행하죠...(우와...;;)

하지만.

대원정 중....왕은.

사망을 합니다. 사망원인에 대한 후세 연구가들은. 심장마비라고 하는데...고령의 할아범이 갑자기 물에 들어가서그런가...하더군요...뭐 하여튼 왕이 죽자. 10만군세를 산산히 분열 분해 되어...

일반적인 유럽제후 수준의 군세로 축소 되어 아들이 마저 십자군을 지휘하긴 하죠...
(10만군세가...기병 수백에 보병 수천..10분지 1로...줄어들다니...;;)
이런 이슬람측에선 그야말로 행운의 사건이죠.

이훈 살라딘이 영국왕도 프랑크 왕도 물리치고 성지를 탈환하죠..

만약..프리대왕이 살라딘과 대결을 해 전쟁을 이어가고.  해안지역 방면에 기독교 세력화를 강화 시켰다면.

현대세상은...지금보다더 기독교 영향이 커졌을 거라 생각이 드네요...;;

ps.어릴때 하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항상..특수 유닛 튜턴기사 뽑았죠...공업 하면 +21..최강 데미지 거든요....튜턴기사단....독일 기사단...음 왠지 잘 어울리네요.

뭐...프리대왕의 전술 전략적 역량은 잘모르겠지만 10군세라면 부족연합체격인 이슬람군을 지휘하는
살라딘에겐 상당히 어려운 위기였을듯합니다.

덧. 예루살렘은.. 이슬람 제1위의 성지는 아닙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개 종교가 겹치는 성지입니다.
이슬람 1위성지는 메카/ 2위는 메디나 /3위가 예루살렘이죠. 저도 오해를 했던 부분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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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engel 12-06-22 23:12
   
헉...저런 그림을 그렸다니....
Ciel 12-06-22 23:32
   
와...저 햄이랑 소세지...맛있겠네요.
밀게에서 위꼴사를 볼 줄이야...ㅋㅋㅋ
데스투도 12-06-23 17:28
   
이 영감탱이는 뭐 먹을 것이 있다고 전쟁놀이를 했는지.. 하긴 이 당시 유럽의 왕들이 전쟁놀이(십자군 원정)에 여념이 없었다가 집안 다 태워먹은 경우가 번번히 있었다지요. 게다가 십자군전쟁은 왕위나 작위계승권이 없던 차남이하의 영주의 떨거지들에게는 특히 영지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그래서 용병을 고용해 병력을 충원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몇몇 인물들은 영지를 얻은것 뿐아니라 수백년동안 성공적으로 영토를 방어했고 말입니다. ㅇㅅㅇ
qndrnrqn 12-06-24 10:10
   
저때는 명분보다는 사돈의팔촌다지면서 전쟁했잔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