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위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두께를 늘려보는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적이었습니다. 초창기의 화약무기는 적정한 흑색화약의 조합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고, 화약무기의 기계적 정밀성이 아직 모자라는 등의 문제가 많다보니 운동애너지 전달량만하더라도 후기 화약무기의 파괴력에 약 1/3남짓도 안될만큼 빈약했습니다.
그래서 판금갑옷 등. 갑옷기술의 절정에 달하던 르네상스 후기무렵에 개인용 화약무기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시중 갑옷조차 관통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닌깐요.
하지만 무릇 기술발달의 과정이 그렇듯이 점차 흑색화약의 적정 배합과 비율이 전파되고, 화약무기가 기계적 발전을 이루면서 갑옷에는 심각한 문제가 따르게 됩니다.
팔다리 등의 부위는 점차 납탄에 관통되는 경우가 흔해졌고, 갑옷이 납탄에 찢어지거나 우그러지면서 착용자에게 2차 피해를 주게 되는 일이 많아지게 된 것이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갑옷기술자들은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접속시키게 됩니다.
1. 이전에도 석궁 등에 의해 약한 부위가 쉽게 관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달아두었던 덧판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이게 한국어로 적절한 단어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좀 애매한데. 형상적으로는 갑옷 표면이나 연결부위마다 얇은 철판들을 부착함으로써 치명적인 부상을 방지하려 합니다.
추가적인 비용도 덜하고, 기존 갑옷에서 큰 개조가 필요없다는 점에선 장점이었으나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여 이 또한 과도기적 시도에 불과했습니다.
2. 솜옷 또는 솜갑옷을 갑옷 안에 착용합니다. 이건 기존에도 갑옷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널리 사용하였던 부류인데. 쉽게 생각하면 안에 입는 방탄복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선시대에도 두꺼운 목화옷을 착용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꽤 괜찮았습니다. 갑옷이 우그러지거나 찢어지면서 착용자에게 납탄과 함께 발생하던 2차피해를 훨씬 줄여주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점차 강해지는 화약무기의 파괴력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조치였기에 한계가 드러나긴 합니다.
그럼에도 점차 갑옷이 버려지는 그날까지 이러한 솜을 사용한 충격완화조치는 계속 따라오게 됩니다.
3. 갑옷의 형상변화. 쉽게 생각하면 이전까진 평면적이었던 갑옷의 형상에 각도를 만들게 됩니다. 납탄을 정면에서 튕겨내긴 어려워지니, 갑옷에 비스듬히 각도를 형성하여 납탄을 빗겨낸다는 개념을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실제로 한때 유행하기도 했으나, 이러한 갑옷을 제작하는 기술의 숙련도가 높았으며, 기존에도 높게 형성된 갑옷의 가격대를 훨씬 뛰어넘는 한계점이 명확했습니다. 게다가 빗겨낸 탄환이 자칫 팔, 다리만 아니라 타고있는 말, 옆 사람 등에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게 되어 말썽이 있었다고 합니다.
4. 더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팔 다리 등에 방호가 불가능하다면, 불필요한 부위를 제거하고 남은 부위만이라도 방호력을 올려보자라는 조치가 적용되게 됩니다. 이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소화된 갑옷 형태들입니다.
이런 시도는 근세에까지 꽤 오래 이어지게 됩니다. 근세만 하더라도 단순히 화약무기에만 의존한 전투가 주가 된 건 아니었으며, 우리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기병이 꾸준히 기용되었듯이 갑옷도 최후에가선 흉갑이나 투구도 오래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