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몰랐다가 아니라 누구라도 생각했어야 할 당연한 정보를 누구도 몰랐다는게 고려의 현실 감각의 부재를 보여주는거죠.
서희의 담판은 그때는 좋았을지 몰라도 결국 고려를 모국으로 생각했던 여진족을 적으로 돌려세워버린 계기가 됐고, 이후로 여진족에 의한 사전 정보 탐색 기능의 상실로 거란의 재침 경보 미비, 이후 몽골의 침략시까지 고려의 북방 정보력 부재의 요인이 됩니다.
고려 정부의 정보력이 워낙 부실했기 때문에 서희가 상대적으로 드러난 것이지, 사실은 상식적이였어야죠.
당시 여진족 부족은 수십개고 고려 국경 근처에 일부 여진만이 고려를 숭상했습니다.
당장 거란이라는 거대 적이 쳐들어오는데 시간을 번게 서희가 여진을 같이 치자고 한거고
이걸 계기로 거란이 차후에 처들어오는 길목을 정비할 시간을 번겁니다.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활약할수있는 계기가 된거죠
그리고 여진이 나중에 반고려로 돌아선것도 반고려,친고려파가 붙어서 친고려파가 깨진게
이유지 고려가 거란때문에 여진을 쳐들어간게 계기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