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군이 전세계와 사워 이긴다는 말이 나오던데 625당시에는 중국군과 밀고 당기는 싸움 했었잖아요
당시 중국군이 정예였다고 해도 결국 무기는 23류였던걸로 아는데 지금 미국이 세계전을 이긴다는건 중국이랑 단독전쟁전도는 쉽게 이긴다는것 같은데 감이 잘 안오네요 반대로 지금 중국은 무기도 좋은거쓰지 않나요 아무리 중국산은 신뢰할수 없다고 해도
2차 세계대전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을 경험 하면서 계속해서 무기를 혁신하는 미국과 한국전쟁 제외하면 제대로 된 전쟁경험 전무한 중국이 개발한 무기하고 질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전투기만 봐도 세대가 틀리고 성능 차원에서도 비교가 안되죠. 무기는 모든 산업능력의 총합인데 미국의 최첨단 산업과 중국을 비교해 보면 답은 바로 나오죠. 중국은 제대로 된 반도체 공장 조차 없습니다. 현대 무기에 전자 장비 안들어가는게 잇나요? 없죠?
그리고, 못 믿겟으면 전세계 무기 수출국가 순위와 액수를 확인해 보세요.
미군의 전력은 91년 걸프전 이전과 이후로 바뀝니다. 이전에는 똑같은 무기로 싸웟지만 걸프전 이후로는 첨단 무기로 무장하면서 전쟁의 양상 자체가 바뀝니다.
미국과 정규전으로 맞짱 뜨는 걸 xx 행위입니다. 그래서 IS 도 게릴라전을 하는 겁니다.
당시 세계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이 미국이었죠.
중국을 지워버리고 싶었으면 당시에도 충분히 지울수 있었어요.
미국은 북한을 몰아 붙이고 점령지 통제할 정도의 병력만 파견했었고,
중국은 처치곤란한 변절자 군벌들을 한국에 몽땅 보내버린거죠.
군사력의 차이가 아니라 쪽수의 차이로 밀린겁니다.
또한 방어선의 한쪽을 남한에 맡겼었는데 친일파 출신 사령관이 밀릴기미가 보이니
바로 도망쳐 버려 방어선이 뚫리고 후방이 위협받아 포위될 상황이 되어 후퇴하게 된거죠.
당시 중공군 파견은 세계 3차대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미군도 중공군의 반격을 예상 못한 것이구요.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 당시 반대파였던 변절자 중공군(군벌)을 죽으라고 대량으로 보내버린 것이었죠.
죽으라고 보내는데 좋은무기 줄리도 없고, 다만 당시 미군은 물량으로 찍어내던 국가지 최첨단 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아니었죠. (샤먼탱크도 독일군 전차에 발리는데 최첨단은...)
미국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기 시작한 것은 소련과 함께 독일의 과학자와 기술및 실험 결과들을
나눠갖고 부터였습니다.
1. 짱깨의 인해전술
2. 2차대전 때 우방으로써 미군이 중국에 지원해준 셔먼탱크등의 무기
3. 공중은 러샤에서 텨나왔던 MiG기 등...
만만한 것들은 아니었지요. 뭐 중국군이 정예였던건 아니고 죄수들이 총알 받이로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6.25때 짱깨 한테 포로로 잡혔던 분 말씀으론 족쇠로 다 채우고 맨 앞에 놈만 총들고 돌격 했다던... 뒤에는 악기 들고 충쾅커리고... 그리 했다더이다. 아무래도 상당수는 죄수였던듯 합니다. 맨앞에 넘 다이 되면 뒤에 놈이 총들고 싸우고
1.4후퇴는 사실상 중국군이 들어올거라고 전혀 예상못한 미군사령부에서 대량병력이 밀고내려오니 일단 전선자체를 한거번에 내린겁니다. 미국으로서는 2차대전 치른지 10년도 안된 시점에서 대량사상자와 전비를 투입해야되는것을 우려하고도 했고 굳이 석유한방울 안나오는 땅에서 교두보만 확보되면 되는 미국의 이익선을 지키면 그만이었습니다.
광복이전 소련에게 일본지배하의 만주공격과 38도선까지의 남북분할통치를 제안한게 미국이었습니다. 한반도에 대해 미국이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면 중공군은 지상군만 대병력을 파병했지 제대로된 해군과 공군 물량조차도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제공권과 제해권이 미군에게 있었고 중공군은 말그대로 공중에서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았습니다.
미국은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고 전쟁종결시키길 원했고 맥아더는 적극적인 반공사상과 개인적인 이유로 중국본토에 대한 핵공격과 대규모 병력증원에 이은 북진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미정부는 그이상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고 적극적인 행태의 맥아더를 해임했죠.
그리고 당시 중국의 중공군은 미국이 지원한 군대였습니다.(여러의미로)
광복이후,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을 다시 내전양상이 됐는데 항일전쟁 당시에는 미국이 장개석을 중국전선 연합군사령관으로 임명할만큼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국민당정부의 부패도와 밑빠진 독에 돈붇는 듯한 계속적인 자금요청, 스스로 산업을 개발하고 경제를 안정화시키지 않고 지속적인 전쟁행위에 대해 미정부의 신뢰를 잃었고 결정적으로 군사적으로 풍부해지고 병력과 점령지역에서 공산당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자 미정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미정부는 장개석정부의 자금 줄을 끊었죠 여기서 포인트는 국민당 군대는 미군의 장비가 적지않았고 군수물자조차 미군물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물량도 꽤됐습니다.
광복이후, 소련전을 준비하면서 동북(만주)에 군수산업을 일본이 대량으로 개발해논 실정이기에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가 항일전쟁 종결과 동시에 동북으로 레이스가 벌어졌고 국민당 군대가 북진하며 공산군을 압도적으로 몰아세우며 거의 끝나갈 무렵 기적같이 살아남아 불과 1년반사이 다죽어가던 공산당은 만주에서 규합하여 다시 서남진하기 시작.
전세가 공산군에게 기울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국민당의 부패로 사상자 보다 공산당에 투장하는 국민당 병사가 대량으로 유출됐고 포로 혹은 부대전체가 노획(부대항복사태도 종종)되면서 대량의 미군장비가 공산당에게 보급됩니다.
물론 소련에서 제공했던 장비도 적지않았지만 미군물량에 비할바는 못되었죠. 더군다나 소련도 미국도 중국의 실정권을 공산당정권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기에 미국과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죠. 외교적인 언사에도 칭송까진 아니더라도 서로 으르렁거리지도않았습니다.
뭐 당시 중국입장에서는 대륙전쟁의 자금줄을 좌지우지했던 미국에게 밑보일이유도 없었고 미국으로서는 저 독일과 일본과도 싸워이긴 미군인데 중국은 한수 두수 아래로 봤죠.
일설하고
제공권과 제해권이 없는 중공을 상대로 미군이 약세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전술적으로 밤에도 기동하고 넘치는 인력으로 소부대 기동전술로 합동참모본부를 당황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타는 단 한번도 없었고 반대로 미군의 화력에 사상자만 냈죠.
미국이 말그대로 미국의 의지대로 전쟁을 치른것 뿐입니다.
만약, 당시 미국정부나 대통령이 최소한 만주까지의 반공교두보를 결정했었다면 맥아더를 그대로 두고 밀고 올라갔을지도 모르죠. 아마도 중국의 영토라고 인정되던 만주지역을 침공하면 전쟁이 길어길게 뻔하고 한국의 공산세력을 박멸하자니 참전한 중국군애들도 쳐발라야 되는데 전쟁이 더길어질 모양새가 나오자 발뺀거라 생각됩니다.
물량면에서 2차대전 7년간 쏟아부은 폭탄물량을 한국전쟁 고작 2년동안 쏟아부었다고 하니 미국입장에서 이 조그만 땅덩이에서 머릿수넘치는 중공애들과 돈부어가면서 1-2년을 직접 병력부어가면서 전쟁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러다 소련까지 참전하면 또 억단위의 돈을 부어가면서 전쟁할지도 모르는데 원하지 않았을겁니다. 2차대전 종전에서 불과 5년 전이니까요 (1차대전 종결이 1918년, 2차대전 1945년, 한국전쟁 19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