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층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있는 일반시민들에게도
반전반핵이 화두였던 시절이었고 미국시민이 언제 미국으로 돌아가느냐와 항공모함이 들어오느냐 안오느냐가 연일 대두되던 시기였으니깐요...
일반인을 떠나서 94년 당시에 북괴와 중국, 소련도 미국의 침공계획을 알고 있었다는게 정설입니다..
폭격계획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언질도 없이 미국 스스로 작전계획 50xx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변폭격 계획은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모두 알고 있었다라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클린턴 회고록이야 미국중심 이야기이므로 누락된 부분이 많이 있을수 있겠지요..^^
당시 미군과 클린턴 정부의 워시나리오은
영변 핵시설 폭격후 북한의 반격 휴전선 일대 제한적국지전으로 일주일간 기간후
적당선에서 협정 이었는대..
그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측 예상피햬가 군인, 민간인 포함 100-150만 이상 인명 피혜
경제적으로 1970년대 이전의 경제력 후퇴, 수도권지역 초토화...
회복하는대 최소 10년소요등 여러가지 이유로 특히 주한 미군사령관, 친한계 관료들이
반대해서 취소 되었다고...
군대에서...
전방 총알 날라오기 전에 한강 이남이지만 울 부대는 미사일로 끝남... 이라는 분위기였던 때군요.
사무실에서 "OO아 잘하면 니뼈랑 내뼈랑 구분이 안될수도 있겠다."라던 일등상사의 농담(?)이 오가고 상시 방독면 휴대 하던 때.
오히려 부대 밖에 있다가 개전 후 복귀 하는게 부대 인원 더 많이 살릴 수도 있겠다고 외출, 외박이 늘던 때 였습니다.
남북 상호 핵사찰 하면 북한 사찰단 호위(?) 해야 한다고 2인 1조로, 북한 사찰단원 후방 1.5m에서 동행하는 연습하고, 사찰단과는 아무 대화도 하지 말아라,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말고, 정 계속 말을 걸면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하라는 지시 받고 대기 하던 때였네요.
정확한 시기는 가물가물 하지만 그 무렵 방한했던 옐친이 기수를 북쪽으로 향해 이륙해 떠나가는 걸 보면서 쏘련놈들 패기보소 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