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War 155mm Gun Motor Carriage M40 Big Shot Firing
M40 빅쇼트 155mm 자주포의 시제형 전차 T83 빅쇼트
이 자주포는 처음에 그 명칭이 T83으로 명명이 되었지만
1945년 3월에 명칭이 M 40 으로 바뀌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제작되었던 미군의 M40 빅쇼트 자주포는 M4A3 셔먼 전차의 차체에
대구경 M2 155mm포를 장착시킨 자주포이다.
M40 빅쇼트의 원래 생산 목표량은 600대였으나 311대의 제작 이후
전쟁이 종결되어 버려 더 이상 제작되지는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년뒤 M40 빅쇼트는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한국전에 투입되어
한반도를 침략한 공산 군대와의 전투에서 활약하게 된다,
빅쇼트의 탑승 인원은 8명으로 전차장과 운전병외 6명은 장탄수와 포수들로 구성되었으며
M40 빅쇼트의 전투 중량은 36.3톤에 155mm 포탄 적재량은 20발 이었다.
최고시속은 노상에서 38km 속력을 낼수있었으며 야지에서는 시속 23km에 주행거리는 170km였다.
한국전 당시 미군 제 25보병연대 937포병 대대의 155mm M 40 자주포 야간 발사 장면 - 1951년 11월 26일
한국전에 투입된 미군의 105mm M37 자주포와 155mm M 41 자주포와 155mm M40 자주포
영국 덕스포드에 전시되어 있는 한국전 6.25 동란에 참전했던 영국군의 미국제 M40 빅쇼트
Men of the 937th Field Artillery Battalion, attached to the 96th Field Artillery Battalion, US Eighth Army, fire their M40 155mm Self-propelled gun at Yanggu, Korea, 30 June 1951.
1951년 6월 30일 강원도 양구에서 M40 155mm Self-propelled gun을 사격중인 미8군 제 96 포병 대대에 배속된 제 937 포병 대대원들
옛날에 만들어진 거라서 생각보다 사거리가 길지는 않아요. 거의 2차 대전 말기에 유럽에 배치 되어서 제대로 써 먹지도 못하고 계획된 수량도 못 채우고 생산 중단 되었는데 한국전쟁에서 인해 전술로 밀고 오는 중공군들을 말 그대로 Fire and Steel로 작살을 내놓는데 일조를 합니다.
중공은 고기를 들이밀고 미군은 불과 쇠로써 고기를 다지고 구워줍니다. 그 결과 한국전쟁 3년 동안 중공군은 300만명 이상을 동원했고 이중에 100만명 이상이 KIA 또는 MIA 가 됩니다. B-29 에서 떨군 소이탄에도 많이 타 죽었습니다. 그 중에는 모택동이 아들도 포함 되어 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