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만 정권은 해병대를 창설 육성하였다.
- 창군 당시 육군은 대부분 구일본제구군 출신이나 만주군 출신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신뢰하기 힘들어
- 상대적으로 그런 일제출신 군대가 적은 해군 육성에 이승만 정권은 노력하였고,
- 48년에 있었던 여수 사태를 계기로 상륙전과 상비군 역할을 하는 부대 육성하고자
- 1949년 4월 15일 덕산 비행장에서 380 명으로 해병대를 창설하였다.
- 한국전쟁에서 이승만의 지원하에 미군과 연합작전에 대거 동원되었고 많은 전공을 세웠다.
-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친필로 '무적 해병', '상승 해병'이라는 휘호를 내려 지지하였다.
2. 박정희 정권은 해병대를 탄압하고 육군의 특수전 세력을 육성하였다.
- 박정희 정권은 월남전 파병을 통해 외화를 얻어 이를 기반으로 중공업을 육성하려는 포부를 세웠다.
- 그래서 비전투 병과부터 파병하고 전투 병과를 편성했는데 최초로 편성된 것이 해병 여단이었다.
- 청룡 부대는 한국군 최초의 해외 파병 전투부대로 경보병 조직으로 월남전에서 많은 전투에 투입되었다.
- 그러나 이런 전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해병대가 조직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위해할 수 있는 세력으로 인지 1개 여단 이었던 공수특전단을 확대 개편하여 3, 5, 7, 9, 11, 13 여단을 창설하여 엄청난 규모로 확대했지만
- 해병대는 해체해 해군 직할의 육전대로 격하시켰다.
- 확대되던 공수특전단은 특수전 사령부로 확대 개편하여 사실상 해병대가 맡고 있던 임무를 모두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3. 전두환 정권과 특전사.
- 특전사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육성된 부대이며 육군의 부대 중 전선을 동반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었다.
- 그 결과 그 편성 목적과 전술 및 전략적 가치를 넘어 여러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 1차적 명목으로 북의 20만 특수전 병력에 대항한다지만 결과적으로 특전사는 훈련 면에서는 혹독하지만 장비와 지원에서는 미국의 '레인저'급 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 이러한 현실로 인해 진정한 특작부대의 개념으로 별도로 다시 특수부대를 더 창설하게 되는데 그것이 707 특임대이다.
- 군부 출신인 전두환은 정권 수호를 위해 특전사를 자주 이용하였고, 일종의 공포 정치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