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보급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저녁때가되면 진군을 멈추고 현장에서 즉시 목책요새를 건설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매일 매번 그랬죠. 그렇기에 항상 공병대가 배치되어있었죠.
그래서 야습을 거의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마만큼 야습에 철저히 대비했고 어떠한 공격에도 대비한 수비와 편한 휴식을 취할수 있었습니다.
보급도 있었겠지만 무었보다 장교 양성을 통해 체계적인 작전이 가능했고 전술에 있어서 탄력적으로 변화했죠.
힘쎈놈과 돈많은 놈이 군대를 이끌던 Gaul 과 여타 이베리안 반도 부족들과 달리 체계화된 사회체제를 바탕으로
장교들을 양성하고 세분화된 군단 편제로 상황에 맞게 전투를 치룰수 있었죠.
초기에는 그시대 헬레네 형식 보병들이 다 그렇듯 방패와 창으로 단순 히 팔랑크스를 형성해 적들과 대적하다가 북방의 험한 지형에는 맞지 않자 다시 전술을 변화시켜 용병기병대채용 및 다체로운 병기를 연구해 전장에 등장 시킵니다. 그 유명한 그리스식 보병 팔랑크스도 초기의 힘싸움에서는 로마군단을 압도 했으나 전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농경+노예를 통해 보급의 질이 달랐습니다. 물론 후기에는 군단병들이 이민족으로 대체되고 다대수 자영농들이 잦은 원정으로 몰락해서 개판이 되지만 초기 확장기에서 중기까지 발달된 제련기술과 토목기술로
수렵이나 화전에 의존하던 부족들은 비교가 안될정도 였죠. 특히 상하수도와 다리, 도로등을 통해
주요 물자가 빠른 시간내에 도달하고 질병의 위험을 상당수준으로 낮춤으로써 많은 인구와 물자를 빠른 시간내에 투사 할수 있었던게 크나큰 전술적 이익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