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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0 17:16
[영상] 현재 미군이 보급이 짱이지만, 고대엔 로마군이 보급이 짱이였습니다.
 글쓴이 : 전쟁망치
조회 : 5,963  







중세유럽 조차 고대 로마 만큼 보급이 좋지는못했죠잉
로마의 멸망은 단순히 죽어 사라진게 아니라
이후 유럽 야만족들이 문명을 꽃피우는데 필요한 거름이 되었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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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기안 14-05-20 17:45
   
단순히 보급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저녁때가되면 진군을 멈추고 현장에서 즉시 목책요새를 건설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매일 매번 그랬죠. 그렇기에 항상 공병대가 배치되어있었죠.
그래서 야습을 거의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마만큼 야습에 철저히 대비했고 어떠한 공격에도 대비한 수비와 편한 휴식을 취할수 있었습니다.
     
바람노래방 14-05-20 23:54
   
그게 로마군내 군비리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요.
ultrakoo 14-05-20 18:52
   
로마군의 공병대가 정말 최강이였습니다.
요새나 교각 진지구축등등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전통은 2차대전때도 잘나오는데....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장군의 부관이였던 슈미트 중위(대위였던가 ?!) 의 저서에 묘사되있죠 ㅎㅎ
이탈리아군은 전투도 엉망진창에 술 퍼마시고 아무곳에나 널부러져있어서 군기라는 개념조차 없는것 같지만...

하룻밤 사이에 뚝딱뚝딱 길을 엄청 잘닦아놨다고...감탄을 했었죠.
그리고는 잘 닦아논 길 옆에 술먹고 널부러져 있는 이탈리아군이 투성이였다고.....
달패 14-05-20 18:56
   
그냥 싸우러 가다가 밤 오면 아무데나서 널부러 자는게 아니라 하루밤을 자더라도 로마군은 그 자리에서 진지 구축을 들어가죠..로마의 유명한 장군이 한 말이 있죠 "로마군은 곡괭이로 싸운다"
내일을위해 14-05-20 20:44
   
로마뿐 아닙니다. 군수조달이 잘된 군대가 강군입니다. 알렉산더가 정복전할때 해안선을 따라 움직인건 대표적이죠. 또한 몰골의 군대가 말두마리끌고 교대로 탔으며 식량은 육포로 하여 식량에 대한 문제가 없었죠.
굿잡스 14-05-20 22:44
   
로마가 보병이 강했던건 사실이나 당시 서구쪽이고 전술을 보면 동북아시아에서의

병법이나 전술에 비하면 상당히 유치할 정도입니다.

막말로 수나라가 전투병만 113만 대군에 그 두배의 보급부대로 300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전한 2차 고수전쟁만 봐도 당시 동북아의 군수조달이나 규모, 군사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나죠.(고구려도 전역을 5부로 나누고 서부일대의 오골성 하나만

해도 둘레가 자그만치 16킬로로 유럽의 최대도시라는 로마에 버금갈 정도의 도시규모

였고 요동성 하나만해도 50만석을 비축해두고 있을 정도였던. 물론 우리 고구려도

상비군이 30만 전시에는 최대 50만 이상도 동원가능했든)

그기에 고구려는 요서일대등에서고 끊임없이 적의 막대한 병력과

보급부대들을 교란 약탈하거나 다양한 첩보활동에 게릴라전이고 서구에서는 이런 방식은

제대로 나온적도 쓸 군사력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숙명의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명장 하니발 어쩌고 하는 양반도 전술이라는 게 고작 무슨 후방

우회 정도였던거지 대단한 전략 전술도 없었든.

그리고 동북아는 일찍히 북방유목민족이라는 기마를 이용한 탁월한 호전적 전투 민족이

기원전부터 결집을 했을때 군세가 수십만에 달할 정도였고 우리도 기마문화권이라서 조선시대에도

제주도등 기생같은 아녀자도 말을 타고 재주를 뽐내는게 특기일 정도로 말을 통한 기동력과

속도전 마상전에서 능숙했지만 서구에서는 이건 상당히 특별한 그것도 귀족 전유물이였든.

그러니 1만도 안되는 소수의 훈족이 서로 서진하면서 이후 유럽을 휩쓸게 되면서 로마도

겨우 3중 성벽을 통해서 막았죠( 이런 훈족을 보고 유럽에서는 신의 재앙이라고 까지 했던. 그것도

몇만 단위도 아니였습니다.)
     
그대로카레 14-05-21 12:28
   
기원전 고대로마하고 기원후 고수전쟁을 비교하는건 조금 안맞는것 같은데요.
          
굿잡스 14-05-21 14:11
   
기원전이랑 기원후랑 그리고 명청교체기에도 고대 군사력이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군

요.(중간에 동북아에서 일찍 발명 발전해온 화약, 화포가 등장했다고 해도 16세기 임진왜란

의 왜구나 만주족의 명정벌을 보면 결국 칼과 창 화살과 기마등을 잘 다루었던 인력

이 여전히 주축이 된 전쟁이였음)


그리고 흉노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묵특대선우가 40만 강병을 이끌고 30만의 한나라

고조 유방을 백등산에서 생포하면서 수십년간 한나라가 흉노제국의 속국으로 전락

했던게 기원전 2세기경입니다. 서구와 동북아는 군사동원력이나 이에 다른

보급의 규모, 전투력의 질,병법등 전략,전술에서도 일찍히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 당시 한나라 역시 소위 중원이라는

장안을 수도로 하여 지금의 청의 영토가 아니라 물산이 풍부한 강남이나 화북지방은

제대로 제패를 하지 못한 상황의 영토였음에도 이정도의 군사 동원력을

보였고 그에 앞선 춘추전국시대의 서토 7웅의 수도들은 각각이

그 크기가 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를 상회합니다.

이는 우리의 고조선, 고구려 문명권인 동방문명권에서도

고구려는 3경의 국내성 한성 평양성 외 전국을 5부로 나눈 욕살이 거주하는

대형 성곽이 로마도시에 상회하거나 맞먹을 정도였고 다른 삼국의 신라의

서라벌, 백제는 바다건너 열도의 아스카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군림하면서

사비성등 동시에 우리쪽만해도 유럽의 최대도시라는 로마 이상의 도시들이

즐비했을 정도였서요.(그리고 로마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된 뒤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멸망,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했음)
               
나와나 14-05-21 23:00
   
로마도 무슨 천년을 갔니 2천년을 갔니하는 데 사실 로마는 국호만 그대로 있었을 뿐이죠.. 황제들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사실 이 로마를 하나의 왕조로 보면 우리도 고려-조선을 한 나라로 봐야 하죠
슈비룹뚜바 14-05-22 12:59
   
보급도 있었겠지만 무었보다 장교 양성을 통해 체계적인 작전이 가능했고 전술에 있어서 탄력적으로 변화했죠.

힘쎈놈과 돈많은 놈이 군대를 이끌던 Gaul 과 여타 이베리안 반도 부족들과 달리 체계화된 사회체제를 바탕으로
장교들을 양성하고 세분화된 군단 편제로 상황에 맞게 전투를 치룰수 있었죠.

초기에는 그시대 헬레네 형식 보병들이 다 그렇듯 방패와 창으로 단순 히 팔랑크스를 형성해 적들과 대적하다가 북방의 험한 지형에는 맞지 않자 다시 전술을 변화시켜 용병기병대채용 및 다체로운 병기를 연구해 전장에 등장 시킵니다. 그 유명한 그리스식 보병 팔랑크스도 초기의 힘싸움에서는 로마군단을 압도 했으나 전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농경+노예를 통해 보급의 질이 달랐습니다. 물론 후기에는 군단병들이 이민족으로 대체되고 다대수 자영농들이 잦은 원정으로 몰락해서 개판이 되지만 초기 확장기에서 중기까지 발달된 제련기술과 토목기술로
수렵이나 화전에 의존하던 부족들은 비교가 안될정도 였죠. 특히 상하수도와 다리, 도로등을 통해
주요 물자가 빠른 시간내에 도달하고  질병의 위험을 상당수준으로 낮춤으로써 많은 인구와 물자를 빠른 시간내에 투사 할수 있었던게 크나큰 전술적 이익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