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학생 무렵은 초대국, 일극에 의한 세계화가 공인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정치학에서도 기존의 클래식한 이론들이 물러나고, 우리에겐 상식이 된 이론들이 주목받던 시기였죠. 대표적인 것들로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를 교체한다는 이론.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같은 향후 국제세계에서 어떤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인가, 그 갈등의 경쟁무기는 무엇인가?하는 담론이 주류였습니다.
지난 수백년을 이어 내려온 지정학, 자원, 이념들은 폐기대상이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국가끼린 전쟁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누가 타국을 병합하려고 전쟁을 하나? UN이 가만히 있나?"
등등의 생각이 상식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이제 돈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누구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최첨단 기술, 특허는 돈을 위해서라면 매각도 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열강들만 가질 수 있어서, 세계 통계자료에서 생산 유무로 산업국인지 아닌지 판정하던 자동차등의 제품도. 이젠 후발국에서 얼마든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달러만 가지면, 어떤 자원, 어떤 제품이든 무제한적으로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방 금융세력이 전세계로 가지를 치면서, 전세계적인 난장을 치기 시작했고, 전세계의 금융이 그들에게 종속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70년대만 해도 전세계 각국이 가소로운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도 잘만 경제를 굴렸던 세계였습니다. 달러를 적게 보유하면 탈탈 털린다는 예를 영국이 보여주고, 한국이 보여준 이후...
전세계 각국이 달러 위주로 외환보유고를 늘렸습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경제규모가 늘어나면 날수록, 무역규모가 커지면 커질 수록 더 많은 달러를 사들였습니다. 기름 나는 나라는 기름을 팔아서, 달러를 사고. 공업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제품을 팔아서 달러를 사고, 관광국은 열심히 서비스 해서 달러를 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상식인 것들이 그 무렵 정립되었습니다.
근 30년 가까운 세월이니 규칙도 아닌 뭔가가 상식이 되었고, 의식을 지배합니다.
달러만 있으면 시장흐름에 따라 원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는 상식.
달러만 있으면 중간재를 얼마든 사서 가공할 수 있다는 상식.
달러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상식.
그러니 달러만 확보하면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상식.
세상 모든 가치와 국가 전략을 달러로 재는 생각부터가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식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분석할 수 있나요?
중국이 일대일로를 하겠다며 돈을 뿌리는 사실을 분석할 수 있나요?
여태까지 세상은 자본가들의 탐욕대로 세상을 만들어 놓은 미국의 작품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돈만 벌면 그만인 자본가들 덕분에 중국이 크고, 러시아가 컸습니다. 자본가들이 국제적으로 놀면서 하면 안되는 것들을 마구 허용한 대가가 미국 패권의 균열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자본가가 돈을 벌면 벌수록 미국의 산업은 공동화되고, 자산 격차는 배가 되고, 국력은 피폐해집니다.
미국 국력의 정점, 미국 패권의 정점은.
아이러니하지만. 자본을 짓누른 시기. 자본가 로비를 짓누른 시기. 누군가는 빨갱이라 하는 미국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을 달로 보낸다고요? 그 미친 짓을 왜 합니까? 돈도 안되는 짓을. 자본의 논리를 이념의 논리가 이기고, 사회 대부분의 자본과 소득을 점유한 중산층들이 지지하므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돈이면 다 되는, 돈만 벌 수 있으면 뭐든지 다 팔 수 있는 자본가들은 나치에게도 무기를 팔고, 기술을 팔고, 공장을 지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테슬라, 애플이 뭔 짓을 하고 있나요?
중국이 무슨 연줄로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을 끌어 올리고, 생산량을 늘리고 있나요? 중국이 반도체 관련 기술, 통신 관련 기술을 뭔 수로 끌어올렸나요? 중국 RND비용이 크다고요? 돈 들이부어 연구한다고 산업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진 않습니다.
애플이란 회사가 중국 산업 사슬을 레벨업 시켜준 기업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유럽, 일본, 한국의 유망한 중간재, 부품 업체들을 대량 오더로 낚아서, 공정기술, 특허기술 자료를 모두 획득하고, QC인증이란 명목으로 노하우를 모조리 흡수한 다음, 중국 업체에게 기술, 노하우등을 이전시킵니다. 엄청난 시간과 자본, 인적자원 투하를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쌓은 서방 회사들은 망하고, 중국이 국제시장에서 강력하게 떠오릅니다. 태슬라라고 다를까요? 똑같습니다.
지금의 강력한 중국을 만들어 준 건, 미국 자본의 힘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고려 없이, 돈만 벌 수 있다면, 자국, 동맹국 가릴 것 없이 뿌리까지 캐다 바쳤습니다.
나름의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던 미국과 동맹국의 수많은 기업들을 초토화시키고, 기술을 약탈해 기꺼이 가져다 바쳤습니다. 그리곤 아무 투자도 없이 공짜로 기술을 부여받은 중국 기업과 가격을 경쟁시켰습니다.
그러니 자본가는 돈을 벌지만, 기술자, 학자, 노동자, 서비스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세상은 불안정하고, 극단적이 됩니다. 그걸 무마한다고, 돈을 풀어 부채로 거품을 불립니다. 그게 지금 거품 덩어리 서방 경제입니다.
이렇듯 자본가를 까면 빨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뇨? 미중 경쟁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돈만 보는 자본가는 악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보면 하이디스를 중국에 넘기고, 쌍용을 중국으로 넘기는 건 정신나간 짓이지만, 자본 논리로 보면 상관 없습니다. 돈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기술도, 인력도, 산업사슬도 돈에 불과하니까요.
그 짓하면서 초토화된 게 미국입니다. 그것도 동맹국까지 덤으로. 중국 LCD업계 때문에 한국과 일본, 대만이 치룬 대가가 얼마입니까? 누적으로 따지면 수천억 달러일 겁니다. 지금껏 피를 보고 있어요.
돈 맛만 보면 환장해 결국 돈의 가치로 모든 걸 판단하게 될 거라는 건, 돈에 미친 자본가들 망상이었고, 그 망상에 미국 정치계까지 단체로 약을 빨고 세상을 자본논리로 돌리다가 들이닥친 게 딱 지금 세상입니다.
중국 공산당 빨갱이들은 돈은 좋아하지만, 돈으로 모든 걸 판단하진 않았거든요.
이제 자본의 세계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돈을 가지고도 못 사는 물건이 있는 게 당연한 겁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이상했던 겁니다.
결국 국제사회라는 건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다시금 고전적인 지정학의 세계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자신이 돈의 논리에 중독되어 자기들이 꺾어놓고도 도로 살려준 러시아와 중국 때문에 부활했습니다.
이제 전쟁이 잦아질 겁니다.
물가는 높아질 겁니다.
기술, 인력이 자유롭게 왕래하던 시절도 끝났습니다.
천연자원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동시에 그에 비례해 공업력과 기술력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집니다.
새로운 세상은 고전적인 지정학적 이론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익숙했던 자본 논리가 아니라, 지정학적 이론입니다.
이제부터 도래할 세상은 돈이 되지 않아도 전쟁을 합니다.
돈이 되어도 팔 것과 팔지 않을 것이 구분됩니다.
아울러 후발국, 소국들은 더더욱 선진열강들에게 종속될 겁니다.
식민지가 필요 없던 환경이 지금은 파괴되었습니다. 자본논리가 아닌, 안보논리, 정치논리로 공장은 철저히 종속된 국가가 아니면 이전되지 않을 겁니다.
전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리쇼어링이 그냥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세계가 붕괴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고기를 드세요.
아마 지금 생애 가장 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