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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01 21:57
[잡담] 고려군이 여진족과 전투에서 고전한 이유.jpg
 글쓴이 : MK통신소
조회 : 3,151  




철부도라 불린

여진족 중장기병들 땜에 고려와 송나라, 요나라가 아주 애를 먹음

괜히 척준경이 도끼로 때려죽인게 아님

냉병기 시대에 애네들 제압이 진짜 불가능한게

쇠붙이 공격으로 뚫을수가 없었음

동시대에 철부도 수천기가 닥돌하면

상대방 측에서 대응하는건 거의 불가능...


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images/4330072/859/042/040/58b159eb36c8d7d44f242285476c4fcc.jpg



근데....북쪽에서 내려온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해

썰리고 멸망함...




출처:고려군이 여진족과 전투에서 고전한 이유.jpg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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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포스 23-11-01 22:31
   
금나라는 정체불명의 몽골 군 에 망했져..
진실게임 23-11-01 22:51
   
몽골은 경기병으로 금나라를 이겼네요.
서양에 가서 만난 기사단들도 다 중갑이었고...

중갑의 단점은 지구력과 속도...

정면에서 돌파력은 최강이라도
정면 대결을 회피하고 우회해서 약탈과 파괴를 반복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면 중기병의 파괴력을 써먹을 방법이 없죠.

경기병의 장점으로 무방비한 곳들을 약탈하고 적의 주력이 다가오면 소단위로 뿔뿔히 흩어져서 도망가죠.
안따라오면 그 부대들이 뭉쳐서 또 주변을 짓밟고 다가오면 또 분산해서 도망치고
뭐빠지게 쫓아가면 분산된 적이 개별 단위로 쫓아올 때 미리 선정한 위치에서 모여 압도적 전력으로 하나씩 박살.

요점은 상대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전쟁할 수 없도록 하는 거.
     
N1ghtEast 23-11-01 23:28
   
대신 상대가 방어를 탄탄히, 효율적으로 구성해 놓으면
경기병은 힘을 못쓰는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경기병의 유지력이 마르면
그냥 경기병 일방적 학살을 당하는 운명;;

그래서 몽골군이 더 대단한게
그 약점에 말리기 전에 전략전술적으로 상대를 잘 흔들고
전투의 주도권,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싸울 수 있게 잘 판을 깔면서 전쟁을 수행했다는거 ㅎㄷㄷ

역사적으로 손꼽는 경기병대, 궁기병대가 많았지만
몽골처럼 판 자체를 주도하지 못하면 결국 싸움은 잘해도 전쟁은 지는
전투에서도 결국 박살이나는 엔딩을;;
     
구름위하늘 23-11-02 12:46
   
제가 알기로는 몽골군 기병은 경기병 구성이 아닙니다.

중장기병과 경기병의 1:4 비율 조합 구성이고,
그 조합으로 유연한 전투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비율의 부대 구성은 북방 민족 대부분이 비슷했다고 보여집니다.

중국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영화나 영상 속의 야만족에 가까운 복장의 몽골군은 주변 민족을 모두 오랑캐로 보는 편향된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는 잘 장비된 복장의 정규군을 보유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진족이나 돌궐도 야만족 부대가 아니라 장비가 잘 갖춘 부대를 운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피싱맨 23-11-02 00:10
   
유럽 기사단이 저렇게 중장갑으로 두르고 싸웠어도 몽골군한테 털림
가생이만세 23-11-02 00:42
   
오랑캐들이 어떻게 더 장비가 좋을 수 있었던건지 궁금
     
MK통신소 23-11-02 00:51
   
만주가 철이 많이 나온다고 하네요

고구려도..철기병이 유명하잖아요..

그리고 저 당시는 여진족이 부족이 아니라 하나의 나라 (금나라)여서 더 체계적이 였겠죠
     
구름위하늘 23-11-02 12:59
   
오랑캐라는 인식은 중국 쪽의 일방적인 편견이고,
실제로는 잘 정비된 문화와 문명을 가지고 있던 제국 수준의 국가를 유지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흉노나 돌궐도 유목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오랑캐 취급하는데,
당나라가 흥하기 전에는 제국급의 위상으로 초기 당태조는 돌궐에 신속하는 수준의 외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은 그런 북방 제국들의 유산을 잘 모아서 다시 제국을 세운 여러 사례 중에 하나일 뿐이죠.
다잇글힘 23-11-02 01:21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들에게서 흔하게 볼수 있는 것들이지만 좀 설명이 과장이 많이 들어갔네요.

물론 금나라의 철부도가 유명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철부도는 금나라병사들의 찰갑형태를 말하는것이지 중장기병에 한정된 갑옷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즉 보병,기병 가릴것 없이 모두 입었던 갑옷입니다. 실제 철부도가 유명해진건 기병때문이 아니라 금나라가 송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성전에 특화되어 사용했었던 공성전용부대 때문입니다.

정작 금나라 기병이 유명한건 괴자마라고 하는 독특한 기병운영방식입니다. 3명 또는그 이상을 한조로 묶어놓고 돌진해서 얻는 충격전술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습니다. 이건 마치 고대의 전차병이 가졌던 효과와 비슷합니다. 당연히 여러말이 뭉쳐서 한꺼번에 돌진을 하니 그걸 정면으로 막기가 쉽지 않죠.

단 약점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말에게 마갑을 둘러친다고 해도 몸전체에 둘러칠수는 없죠.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약점이 바로 다리밑쪽과 발입니다. 그곳을 집중공략하면 되죠 말위에 탄 기병을 상대할 필요가 없이. 더군다나 괴자마는 여러기병을 한대 묶어서 전진하기 때문에 말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묶여있는 다른 말 전체가 기동불능상태에 빠집니다. 연환계의 약점과 비슷합니다.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한게 악비나 한세충같은 남송의 장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철부도와 같은 찰갑은 찌르기 방어에 가장 효율적이고 베기공격에도 역시나 좋은 효율을 보이지만 문제는 둔기같은 충격력 병기에는 취약하다는 것. 중세 서양에서 떡장갑으로 둘러친 기사들을 상대로 괜히 봉,편,퇴,곤과 같은 둔기류들이 활개를 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송나라도 금나라와 상대하면서 둔기류들이 많이 발전하게 됩니다.
     
MK통신소 23-11-02 03:25
   
좋은글 배워갑니다
     
디비디비딥 23-11-02 08:42
   
조선무기에 철퇴나 도리깨가 자주 나오는 이유가 있었군요.
     
구름위하늘 23-11-02 13:11
   
설명을 잘하셨지만,
몇가지 사항은 확인되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내용이 있습니다.

괴자마가 몇마리의 말을 묶어서 운용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거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쇠사슬 전술과 비슷한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는 잘 훈련된 기마술을 집단으로 보여주는 것을 보고 사슬로 묶여서 운용했다고 상대방이 착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언급하신 연환계가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나오는 연환계라면 이건 삼국지연의 소설 상의 설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땡말벌11 23-11-02 13:20
   
송나라때까지 괴자마를 사용한 사례가 있긴 합니다. 3명이 아니라 5명씩 엮었다고 하더군요.
중갑기병의 약점은 말인데 대기병쇠못으로도 충분히 잡습니다.
괴자마의 약점이 회전율도 있지만 한 기가 죽어나가면 기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적진 돌파용으로 자주는 못쓰고, 적 중장갑 보병때나 쓰이기도 하죠.
대기병용으로는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다잇글힘 23-11-02 16:11
   
그와 관련된 문서를 저도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묶어서 운영한다고 했지 사슬로 묶는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죠. 그 묶음의 방식이 노예들이나 전차말들을 묶어놓는것처럼 타이트했는지 아니면 느슨한 방식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죠.

심지어 오래된 고대라도 한 병과 또는 한 병과 안에도 한 방식으로 완전히 통일적으로 몰빵하면서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진형과 배치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기병에도 경기병과 중기병으로 나눠서 운영하고 보병에도 경보병과 중보병을 나눠서 운영하듯이 같은 중기병이라도 여러 형태로 운영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괴자마의 경우는 전방 맨앞쪽의 순수 돌격역할만을 하던 부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자신들도 운용하면서 장단점을 전혀 모를수가 없습니다. 그런 돌격부대의 경우는 유연한 움직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전 신빙성이 높다고 보는 편입니다.

어차피 허구성을 비판하는 분석도 보면 근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융통성이 없다는 추측에 기반한 해석인지라

^^
땡말벌11 23-11-02 09:35
   
금나라는 몽골에게 멸망한것이 군사력이 약해서 아니었죠. 당시에 금나라는 20만 주력 병력이 있었고 몽골은
금나라의 주력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금나라의 기동성 문제를 간파한 몽골이 주력 병력을 우회해서 수도로
직격했고, 금나라는 급하게 10만명을 소집해서 보냈지만 격파당하고 수도가 날라가죠.
급하게 따라온 금나라는 지치고 재편성하는 와중에 몽골의 군대에 포위 섬멸되어서 사실상 멸망된 것으로 압니다.
몽골은 전격전이라 불려도 될 만큼 적의 첩보망을 유린해서 정보망을 막고 빠른 기동력으로 주력의 보급을 끊고
전력요충지를 빼앗으면서 성장했죠.

고려가 금나라와 요나라와 싸울때 산지를 이용한 전술로 금나라와 요나라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에 금나라의 고려 침공은 상당히 회의적이어서 전쟁을 피했죠. 당시 고려도 15만 단위의 병력을 소집해서
운용할 정도였고, 지방군까지 합세하면 최대 30만명까지 최전방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후방전선까지 하면 50만단위의 병력 운용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귀족들 사병들 때문인거 같지만요.

웃기게도 조선시대 초에는 인구가 늘어서 100만까지 운용할 수도 있다는 기록도 있었는데.
총력전 규모로는 여진족들이 비빌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죠. 그래서 후금때에 조선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했고
가뭄과 후방 안전을 위해서 후금이 총력전으로 몰고온 병력이 10만명이었는데.
인조의 준비 미흡과 조선의 안일한 대처에 수도가 불타고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았죠.

그래서 유비무환의 태세로 전쟁시에 후방과 전방의 작전개요 및 규모를 미리 파악해야 대응이 되는데
인조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자존심만 내세웠고, 후방에서 집결되어 북진하고 남진하는 조선병력 규모도 모르고
항복한 겁니다.
특히 조선군도 북방여진족의 전술을 몰랐는데. 남방여진족만 대응했던 정도전의 병법만을 고집했던 것이 패인이었죠. 당시에 명군과 같이 싸웠던 파병군들이 북방여진족은 기병이지만 필요에 따라 하마해서 접근전도 한다는 것을 알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병력을 분산해서 각개격파당합니다.

지금의 한국이랑 비슷하죠. 미국에 훈련받고 온 엘리트 장교 및 병사들을 제대시키고 옛방식만 고집하면서
주변국에 대한 정보와 자국의 국방력에 대한 검증도 없이 본인 마음 가는데로 비난하고 전쟁 언급하고..........
그래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양앵민이 23-11-02 10:27
   
여진족이 야만인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지 중개무역, 밀무역으로 돈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이미 후금 이전에 팔기군체제가 완성되고 조선도 못하는 중기병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정도이니
승리만세 23-11-02 10:38
   
고려의 북벌이 실패한건 여진족의 전투력이 고려가 예상한것보다 훨씬 강했고, 초반 전격전으로 치고들어가 성을 쌓았지만 해당지리에 대한 무지와 여진기병에 대한 대응전략을 열심히 갖췄음에도 적전력 오판으로 지속적으로 패배하고 전쟁은 장기전화 되고 성에서 고립된 병력들을 온전히 살려서 퇴각하는게 힘들어지자 결국 여진과 협상해서 땅과 지엇던 성을 돌려주고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감내하며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올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고려는 북벌을 하려고 노력은 했었죠.
여진족은 수렵 유목민족이긴 해도 엄연한 문명국이였으며 군사적으로 매우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사커좀비 23-11-02 11:33
   
여진족의 경제활동은 반농반목과 약탈경제입니다..
수렵과 유목이 주력일 것 같지만... 농업 비중도 거의 반 이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압록강 이북 만주지역의 주 곡물은 조, 수수, 콩, 메밀 등입니다..
거란이나 여진이 침입해서 고려인들을 포로로 많이 잡아갔는데...
노예 무역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경작을 위해 노예로 쓰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습니다..
          
땡말벌11 23-11-02 11:48
   
반대로 여진, 거란 포로도 고려가 많이 잡아갔습니다. 고려, 조선이 당한것만 기억하는데
고려, 조선군도 건너가서 약탈도 하고 학살도 했습니다. 이를 두려워한 국경 인근 부족들은
반 투항적으로 협력을 많이 했구요.
여진, 거란은 농기구가 부족해서 무역 거래도 빈번했죠.
그리고  고려가 지었다는 9성은 대부분 토성이나 목성이었습니다. 석성을 지을 여력이 없었죠.
고려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부분은 대부분 보급부대와 이동중인 부대의 기습에 의한 것이었죠.
상호간 치열한 전투가 많았는데 피해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양쪽다 치열했거든요.
그래서 금나라가 고려쪽으로 오줌도 안싼다고 했죠.

고려는 요나라때문에 대기병 방어진이 대체로 잘 이뤄진 부대였는데 산악전에서 여진의 기병을 압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여진이 산악전에서도 강하게 나와서 피해를 많이 입었고
이때 이를 정리한게 척준경이죠. 일진일퇴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진족의 많은 영토를 빼앗고
이를 지키려고 싸운게 고려군이었으니깐요. 사실상 경제적, 군사적 피해는 여진이 더 막심했다고 보는 겁니다. 포로 및 노약자들이나 굶주림으로 사상된 여진인구가 엄청나거든요.

조선시대 임진왜란 후기에 선조가 6천의 조선기병으로 임진왜란때 약탈한 부족들을 초토화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누르아치의 세력이 더 커졌지만 조선, 고려군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약한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당시에도 북부군으로 여진쪽 방어하는 상시 주둔군이 6만명이 넘었죠.

그리고 세종때의 4군 6진이나 고려때의 북진으로 당시에 옛 고구려 유민, 여진, 거란 부족들을 많이 흡수했습니다. 병력자원을 강하게 하려고 남쪽에서 인구 이동을 시키긴 했어도
토착민을 배척하기보다는 흡수를 했죠.
조선의 병력 동원 규모가 고려보다 많아지게 된 계기이죠.
이를 세조가 지역방위로 돌리면서 임진왜란때 고배를 마셨지만요.
무공 23-11-02 13:13
   
중갑이므로 화살이 박히나?..
어떻게 죽인거지?..
     
땡말벌11 23-11-02 13:22
   
맥궁은 중갑도 뚫는다고 해요. 국궁도 그럴 듯. 편전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의외로 중장갑기병은 돌파용 빼고는 쓸데가 없어요.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많죠.
고구려에 부수병들이 많은 이유가 그러한 것이구요. 고구려가 그런 점에서는 진짜 대단하죠.
모든 병과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어떠한 적을 상대로도 대응이 가능하니깐요.
고구려에 영향을 많이 받은 여진족이 그러한 전술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면 고려군도 대단한겁니다.
          
이쉬타 23-11-02 15:03
   
복합궁이  활중 가장 강력하나  중갑병사를 상대로 해서는
아주  근거리에서 날려야 겨우 뚥습니다 
송군은 당시 금군의 특공 전투 부대인 철기병이라고 해서
 보통 말하는 중갑기병 보다도 훨 더 강력한 갑옷을 입고 나타난 상대와 싸웠습니다
이들은 활보다 더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궁노로도 제압을 못하여
기계노를 써야 했고 송군 은 전투에서 이들 철기병의 저지에는 성공한 편이죠
     
이쉬타 23-11-02 14:58
   
그거에 대해서 인력으로 당기는 궁노는 힘이 약해서 못뚥는 데 데해
 기계로 장전하는 구조의 기계노로는 뚤린다는 점
 남송이 이러한 복합구조의 궁노를 발명하여 금군과 전투에서
 여러차례 승전을 얻어서 금군의 남하의 저지에 성공하지요
     
다잇글힘 23-11-02 15:41
   
창이나 칼과 화살은 관통력 자체가 다릅니다. 활도 여려유형이 있기도 하고. 물론 갑옷도 그에 맞게 형상이나 재질 그리고 구조들을 변화시키면서 진화시켜나갔기 때문에 이런건 시대와 대상에 따른 기술에 따라 각기 달리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강도가 높은 재질을 사용하면 관통이 잘 안될것 같지만 반대입니다. 강도가 높을수록 보통 취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때 깨져서 휘어들어가는 특성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보완하려 두께를 두껍게하면 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움직임에 많은 제약을 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갑이나 두정갑입니다. 아예 종이나 가죽을 여려겹으로 덧대거나 철편을 앞에 박는 형태죠. 이건 하드플레이트와 소프트아머 두부분으로 나뉜 오늘날의 방탄복의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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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편전이 일반화살보다 관통력이 높다는 견해는 사실 동의하기 힘듭니다.

관통은 형상이나 재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단위면적당 충격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이걸 결정하는건 화살의 운동량입니다. 또한 화살의 운동량은 운동에너지와 질량의 곱의 제곱근에 비례하고 이러한 운동에너지는 활의 탄성에너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활의 탄성에너지는 일반화살을 쏘든 편전을 쏘든 활의 고유능력범위와 사수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거의 고정된 상수이므로 화살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결국 운동량->충격량은 작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속도 증가는 공기저항을 증가시켜 감속정도를 높여줍니다.

따라서 운동학적 관점에서 보면 편전은 관통력이 더 떨어집니다만 그 대신 짧은 길이가 가지는 형상적인 잇점에 의한 공기저항 감소요소가 존재할수 있기 때문에 이건 거리,속도,길이대무게비등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식으로 만약 길이를 줄였으되 무게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었다면 공기역학적인 이득을 얻을수는 있겠으나 활의 릴리즈 순간의 초기속도는 사실상 똑같기 때문에 관통력차이가 크게 나게 되었을지는 역시나 의문이고

사실 편전이 가지는 실질적 장점은 관통력보다는 일반화살보다 눈에 덜 띈다는것과 고속이라는 점 그래서 쳐내거나 회피하기가 어려워 상대적으로 대처하기가 더 힘듭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사거리 측면에서도 잇점이 있을수 있을 것이고
구름위하늘 23-11-02 13:20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 중에 하나는  거란(요나라)이 당시
송, 금, 고려 그리고 막판에 생긴 몽골을 포함하여도 오히려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보여주었다는 것 입니다.

당시 요나라가 천하의 중심 국가였고,
그 지위를 송나라가 이이제이 전략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서 금나라가 이어받고
그 송나라가 다시 이이제이 전략으로 몽골을 키워서 금나라가 멸망하면서 몽골이 이어갑니다.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송나라는 천하의 주인공 역할보다는 보스 뒤통수를 때리는 넘버3에 가까웠습니다.
거란, 여진, 몽골족, (그리고 동이족)이 오랑캐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는 현실과 차이가 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미국을 양키라고 멸칭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