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을 전후해 남한과 북한은 경쟁적으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하는 유인물인 이른바 '삐라'를 날리기 시작했다. 삐라의 어원은 전단을 의미하는 '빌(bill)'의 일본식 발음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 일본어 '히라(片·조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초기 삐라는 자극적인 문구와 흑백 그림이 인쇄된 손바닥 크기의 종이가 대부분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김대중 정부가 상호 삐라 살포를 중단하기로 북한과 합의함으로써 삐라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민간단체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날려보내기 시작했고, 이후 지금까지 뿌려진 삐라만 3000여만장. 양도 엄청나지만, 내용에서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 ▲ 민간단체가 북한으로 날려보낸 북한 화폐와 소형 라디오(사진 위). 김정일의 생일 을 맞아 USB 스틱과 김정남·김정은의 컬러사진을 북한으로 보낼 계획이다. / 조선일보DB
박 대표는 대학 기상학과와 화학과 교수들을 찾아가 자문을 했다. 전문가들은 헬륨 대신 수소를 넣어보라고 얘기해줬다. 박 대표는 2005년부터 커다란 애드벌룬에 수소를 넣었다. 이때부터 북한으로 한 번에 5만~10만장의 삐라를 날릴 수 있게 됐다. 물에 젖거나 썩지 않는 필름지를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
2006년부턴 삐라에 미화 1달러를 넣어 날려 북한 주민들이 삐라를 일부러 주우러 다니는 기현상이 나타났고, 2007년부터는 삐라에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과 서울의 발전된 모습이 포함된 CD도 넣었다. 2008년부턴 무게가 70g에 불과한 소형 라디오도 함께 날려보냈다. 북한 주민들을 '유혹'하려 북한 화폐를 넣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을 감행한 지난해에는 애드벌룬에 GPS 추적기도 장착했다. GPS 1개의 가격은 400~500달러로 고가지만, 삐라의 파급력을 파악할 수 있어 나름의 효과를 거뒀다.
'소리없는 폭탄'으로 불리는 삐라의 심리적 효과는 지금도 작지 않은 편. 삐라가 남북 간 대화를 방해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그간 북한은 우리 당국에 여러 차례 신경증적 반응을 보였고, 지난달 3일엔 황해도 사리원에서 삐라를 돌려본 주민과 보위부 간부 등 2명이 주민 5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처형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대표는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 김정일의 집무실 인근에 삐라가 떨어져 김정일이 충격을 받고, 평양 일대에 삐라를 수거하기 위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바람 가는 대로 가는 삐라는 우리 쪽으로 떨어진 적도 여러 번이다. 박 대표는 "2007년엔 북한으로 날린 삐라가 청와대와 한강 고수부지에 떨어져 국정원 직원과 경찰이 사무실로 찾아와 항의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