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편법의 차이
여러 나라의 군대 중에 이 나라만큼 오합지졸인 곳이 있었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당나라 군대'라고 놀려도 이제는 별로 반발하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쓰는 듯 군다.
얼마 전엔 월등한 화력을 가지고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반군들에게 일격을 당해 수천 명의 정규군이 포로가 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놀랍지 않다. 늘 이런 식이다. 수십 년 전 있었던 '걸프 전' 동안 미국을 도와 참전했을 때도 이 나라 공군의 조종사들은 늘 의심을 받았다. 이들 조종사들은 미 공군 폭격기들과 같이 폭탄을 F-15의 배 밑에 주렁주렁 매달고 폭격에 참여해 자국 내에서는 전시 출격의 영웅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미군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이 조종사가 폭탄을 적의 머리에 떨구지 않았단다. 적의 대공포가 두려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단다. 과연 이것이 근거 없는 소문이었을까?
오래전 미 공군대학에는 나처럼 미 공군의 초청을 받은 여러 나라의 공군 조종사들이 같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동료 미군 장교들은 유독 이 나라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린 저 친구들 믿지 않아. 저들은 군인도, 장교도, 전투기 조종사도 아니야. 그냥 폼만 잡는 돈 많은 귀족 집안의 도련님들이지. F-15와 토네이도를 레저로 타는 조종사들일 뿐이야"
그도 그럴 것이, 교육 기간 내내 이 나라에서 온 대위, 소령급 청년 장교들이 보여준 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과정 중에 개인의 시험 성적이 어땠는지는 각 국가의 채면을 생각해서 공개한 적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주색잡기와 어느 쇼핑몰에서 점찍어둔 물건들을 수천만 원어치 한꺼번에 구입해 주말마다 자국으로 보내는 일이였다.
그러던 중 내가 결정적으로 이들이 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전투기 조종사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약 3개월간의 미 공군 초급장교 지휘관 과정에서는 수천 명의 장교들이 각자의 분임에 소속되어 개인 간 그리고 단체 간에 경쟁을 벌인다. 학술 시험 성적과 분임 간의 스포츠 경기, 워게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주 연병장을 수 킬로미터씩 자발적으로 트랙을 돌아 얻어낸 분임원들의 구보 포인트가 전체 분임의 성적에 반영이 된다. 이 구보에서 포인트를 올리기 위해 모든 분임원들이 5월 미국 남부 앨라배마의 때약 볕 아래에서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려 가면서도 매주 트랙을 달렸다.
하루는 나와 곁에서 같이 달리는 미군 동기생이 달리다 말고 갑자기 어깨를 툭 치면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기 바라, 저 친구들이 저런다니까, 명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라."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이 나라 출신 F-15 조종사 0000가 트랙을 돌다 말고 트랙의 정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다른 나라 장교들인 동료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그는 남들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 하지않고 몇 번을 그렇게 지름길을 가로질러 그날의 구보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때 확실히 이해했다. 저들이 왜 미군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동맹인지.
저들 나라의 전투기 조종사는 전쟁이 나면 오늘처럼 똑같은 짓을 저지르겠구나. 국가와 민족 그리고 동맹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목숨과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람, 그저 비행을 레저로 하는 사람들이구나.
이 군인은 사우디 F-15 조종사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우디 군을 믿지 않는다.
명예를 모른다. 그래서 그 하찮은 '명예'라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거는 다른 나라의 바보 같은 군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편법을 저지르고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런데 경찰이나 소방관 군인만큼은 그러면 안 되는 곳이 아니던가?
왜냐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명예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또다시 비겁한 편법을 쓸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