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사실 남중국해에서 중국만 깽판치는게 아니고 대만 역시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음. 문제는 필리핀 측과 충돌하게 되는데
필리핀의 입장-아니 저긴 우리 섬이고 우리 바다인데 왜 너네 맘대로 선그음?
대만의 입장-응 저긴 우리 EEZ임. ㅅㄱ
라면서 갈등을 빚고 있어왔음.
2013년 5월 9일, 대만 측 어선 광다싱 28호가 그 문제의 중첩수역에서 조업활동을 진행하고 있었음. 문제는 해당 수역이 필리핀 측이 영해로 받아들이는 수역과 가까이 있어서 매우 민감한 지역이었다는 말임.
이때 필리핀 해경의 3001함이 대만 측 광다싱 28호를 발견해 50분 간 추적을 이어갔음. 그리고 저 광다싱함은 바탄 섬 인근의 영해까지 침범했음.
그리고 오전 10시 경, 필리핀 해경은 예고도 없이 M60 기관총, M14 소총을 저 대만 어선을 향해 냅다 쏴갈겨 버렸음.
7.62mm 탄 50여발이 광다싱에 명중해버렸고 선원이었던 훙시쳉(洪石成)이 목에 피탄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엔진이 손상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
(공식 성명을 발표하는 장이화 총리)
자국민이 경고도 없이 살해당한 사건이라 당연히 대만의 반응은 지랄발광 그 자체였음.
특히 마잉주 총통은 사건 당일날
-공식 사과 발표
-어부의 죽음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가해자를 처벌
-사망한 어부의 유족 보상
-EEZ 중첩지역 어업권 논의 시
을 72시간 내에 수용하라며 최후통첩을 때려박음.
필리핀 측의 반응은 처음엔 '대만 어선이 먼저 공격적으로 들이받았기 때문에 필리핀 해경 측이 자위권을 발동했다.', '누군가가 죽으면 동정은 받아야 겠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우리측 영해를 침범했으니 당연한 대응이다.'였음
그러나 대만이 계속되는 압력을 필리핀은 견뎌낼 수가 없었음. 먼저 대만은 필리핀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표함
-대만인의 필리핀에 대한 관광제한
-필리핀인의 대만 내 노동제한
-경제교류 중단
특히 필리핀의 경제는 해외에서 노동하는 가정부들이 송금하는 돈, 관광으로 지탱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대만의 경제제재는 필리핀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타격이었음.
필리핀의 대통령 아키노 3세는 결국 대만 측에 사과를 했지만 대만 측은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강짜를 부리며 제재해제를 거부함. 결국 아키노 대통령은 재차 사과했고 해당 사건에 연루된 11명의 필리핀 해경대원들을 구속함
대만은 그럼에도 성에 안찼는지 이후로는 해경 경비함들을 보내 필리핀 상대로 무력시위를 이어가다가 급기야 5월 17일에는 지룽급 구축함 마콩함, 캉딩급 호위함 쳉데함, 미라지2000 전투기, F-CK-1 전투기, E-2 조기경보기들을 중첩수역으로 동원해 필리핀에 대한 무력시위를 이어갔음. 대만의 해공군 전력들이 바탄 인근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당연히 여차하면 필리핀 상대로 해상봉쇄 나서겠다는 엄포였고 필리핀에게는 대만 해공군에 대항할 전력이 문자 그대로 하나도 없었던 상황.
그러자 같은 날 5월 17일에선 필리핀 국립수사국에서 "필리핀 해경이 교전 수칙을 위반했다."라는 입장을 발표함. 몇달 뒤인 8월 7일에 최종결과가 발표되어 구속된 필리핀 해경들에게 살인혐의 또는 공무집행죄가 적용되었음. 필리핀 정부도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으며 대만은 필리핀의 사과를 수용하고 필리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함.
결국 일방적인 대만의 외교적 승리였음. 필리핀은 대만을 막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굴욕적으로 대만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거임.
안그래도 필리핀군의 현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빠른 현대화가 필요함을 실감했고 필리핀군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함.
그리고 아키노 3세의 노력은 결코 헛되이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