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강한 어조에서 바뀌어, 미국엔 연일 비판… 中 국방부는 대응책 고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한반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 배치와 관련 한국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을 바란다고 발언했다. 전날 중국 외교부와 국방부가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미국을 겨냥했다면 이번에는 ‘한국 친구들’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사드 배치의 최종 당사자인 한국 국민들에게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모양새다. 왕이 외교부장은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경한 어조로 사드 배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9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스리랑카 콜롬보를 공식 방문 중인 왕이 외교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한국의 친구들(朋友们)이 사드 배치가 한국 안전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진정으로 유리한지,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냉정하게 고려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펑요우먼(朋友们)이라는 표현은 중국인들이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다수의 상대방을 친근히 부를 때 쓴다. 외교부장이 기자들과 만난 공식석상에서 펑요우먼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흔치 않다.
◇왕이 외교부장, "한국 친구들 냉정한 고려 바란다"
특히 전날 중국 외교부가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라는 표현을 써서 사드 반대를 강도 높게 표명한 것을 감안할 때 하루만에 외교부장이 ‘한국 친구들’이라고 호칭한 것은 주목된다. 왕이 부장은 미국을 호칭할 때는 친구들이라고 쓰지 않고 ‘미국 측’(美方)이라고 했다.
왕이 부장이 이런 호칭을 쓰며 강조한 것은 한국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이다. 왕이 부장은 “우리는 한국의 친구들이 냉정하게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사드 배치가 진정으로 한국의 안전에 유리한 지,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 안정 실현에 유리한 지, 진정으로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왕이 부장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 내 사드 반대 여론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8일 김장수 대사를 초치해 한국 정부 입장을 들었지만 ‘사드 배치’ 의지가 워낙 강해 한국 국민들로 공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들린다.
◇미국은 연일 비판 "남의 불안전 위에 자국 안전 지어선 안돼"
왕이 부장은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전날 외교부 성명에 이어 재차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드 배치와 관련한 어떤 해명도 모두 무력하다”며 “(중국은)이번 행동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의도를 물을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다른 국가의 불안전 위에 자국의 안전을 짓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안전 위협을 구실 삼아 다른 국가의 정당한 안전 이익에 손실을 주는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북핵 대응을 이유로 중·러의 안보 이익이 손실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기존 입장을 또 다시 강조한 것이다.
왕이 부장은 “(사드 배치) 관련 업무는 반드시 신중하게 처리돼야 한다”며 “큰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中 국방부, 군비 강화 시사 "필요한 조치 고려하겠다"
이날 중국 국방부도 대변인 담화문을 통해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담화문은 전날 중국 외교부가 사드 배치 반대 성명에서 사용했던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 라는 표현을 똑같이 인용했다. 특히 중국 국방부는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필요한 조치를 고려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중국이 동북아 지역을 겨냥해 추가 미사일 배치 등 군비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위진 대변인은 담화문 첫머리에 “중국을 포함한 관련 국가의 명확한 반대 입장에도 불구, 한국과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선포했다”며 “중국 외교부는 이미 성명을 발표하고,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미국과 한국의 관련 행동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며 “중국은 국가 전략 안전과 지역 전략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국방부는 그러나 담화문에서 ‘필요한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사드 배치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 사설에서 이를 유추해볼 수 있다. 환구시보는 당시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 침투력이 강한 강력한 미사일을 배치하고, 사드 배치에 대해 최고 수준의 전략적 밀착 방어를 하겠다”고 전했다.
◇中 언론 "사드 레이더는 북한 방어용 초월해"
중국 정부의 사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이날 인민일보 해외판 1면 특별 기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국제문제 전문가 화이원의 기고를 통해 “미국은 창과 방패, 공격과 방어 양 방면에서 모두 우세를 점하려 한다”며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에서 모두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했다”고 전했다.
인민일보는 “사드의 X레이더 관측 범위는 북한에 대한 방어 목적을 크게 초월한다”며 “아시아 대륙의 한복판까지 파고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인민일보는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 무기 억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관련국들의)새로운 군비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신경보도 이날 1개면을 할애해 사드 관련 기사를 다뤘다. 신경보는 사드 배치의 본래 의도가 중·러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신경보는 “중·러는 사드가 배치되면 반드시 여기에 준하는 대응 무기 체제를 갖출 것”이라며 “사드는 한반도 대립 국면을 끌어올려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 "한·미관계에 쐐기 박으려는 의도 없다"
한편 인민일보는 이날 사드 배치와 관련된 한·미·중 관계에 대한 중국 측 입장도 내놓았다. 인민일보는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가 중국이 한미 동맹관계를 방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는 미국 내 일부 여론을 부인했다.
인민일보는 “미국 내 특정 여론은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를 (중국이) 한·미 동맹 관계에 쐐기를 박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함부로 공언한다”며 “(사드 배치를)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 행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인민일보는 “하지만 중국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 한국이나 미국에 빚을 지지 않았다”며 “중국의 잘못으로 북한 핵 문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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