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말에 호왈 관동군 70만 실제로는 40만이하
중국 내륙주둔군 200만 이라고 하나 실제 약120만 안팍
이건 어디까지나 호왈이고 대략 200만 이하였을듯 하고요..
전후 조선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에서 귀국한 일본인과 군인군속 전부 약300만 이엇다고 하니,,,당시 조선에서 터잡고 살던 일본인수가 80만명이엇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독일이 패망직전 300만 병력이 남아 잇었고 전쟁 끝나고 미 전투지역이였던 북부독일과 북유럽및 일부 동유럽지역에서 귀환한 독일군이200만명이라고 했으니...
태평양 전쟁 진행중 중국전선의 일본군의 양상은 43년 당시 25개의 사단11개의 독립여단 1개의 전차사단으로
병력수는 100만에 달하였지만 중국내 점령지의 점 과 선을 확보하기 위한 분산배치 와 중국 팔로군에 대한 토벌전의 반복으로 피로도와 군기문란으로 작전능력을 상실해감에 따라
전략적 타격으로 중국 중추에 대한 타격보다는 안전지대 확보를 위한 소탕과 치안공작을 우선시 하는 대처를 유지하는 정도로 운용되었다고 하네요
토벌을 반복해도 치안확보가 순조롭지 않고 유격전에 털리다가 이후 여기저기 대량학살극이 발생하고
중국쪽의 유격전의 강도가 강해지고.일본군의 잔학행위가 실행되고 이런 일련의 진행이 반복적이다가 점차 중국전선이 붕괴된걸로.
덕분에 골동품 찾아 훓어보니..^^
42~43도년 발간된 왜넘들 년감..일본 및 점령지 전체 각종 통계 숫자 다 나오고 그런거.
군 조직및 편성 보직명및 당당자 관등성명까지 나오는데..하다못해 교관까지도..
유일하게 병력 숫자만 빠져있네요...아마도 당시에 병력 수는 "비밀"이었던가 봅니다.ㅎ
역시 지질은 좋아야한다는..7십댓년 되어간다고 ..이젠 산화되어 책장을 넘기는데 일부 부숴지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