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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2 18:02
[잡담] 검색하다 알게된 소드마스터 와 길드.
 글쓴이 : 스마트MS
조회 : 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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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길드인 성 마르쿠스 형제단(Marxbrüder)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레데릭 3세로부터 "장검의 달인(Meister des langen Schwerts)", 영어로 하면 '마스터 오브 롱소드'라는 칭호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다. 막스 형제단에서 검술을 사사받고 충분히 실력이 수준급에 도달한 사람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공인하는 '소드 마스터'라는 칭호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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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마치 이야기속의 장면같군요. 황제가 허락한 소드마스터라..
     
    그밖에도. 프랑스/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여러곳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운용되며.소드마스터.또는 뛰어난 검객들이. 나타났다고 하네요.
     
    이러한 전통이 유럽 전체에 쭉 물려내려와 대부분의 유럽 주류 국가에서 검술 스승/검의 달인을 마스터라고 칭했다. 보다시피 검술 스승은 왕가나 귀족과 관련되는 일이 흔했고(직접 가르치거나, 혹은 후원을 받거나) 또한 마스터라고 공인받아야만 사업권(검술 교실 개설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검술의 마스터라는 단어는 엄격한 실력 검증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였다.
    아무튼 검의 달인의 의미로 쓰이는 중세 유럽의 소드 마스터는 무력으로는 칼 한번 휘두르면 일타삼피는 기본인 별나라 동네의 소드 마스터와는 달리,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동시에 2~3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사람의 팔은 두 개밖에 없으니까!

     
    중세 검술의 시조인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도 그의 가르침에서 '바보같은 짓 하지 마라, 넷에서 여섯명의 적에게 대항하지 마라, 자만심을 억눌러라, 동수의 적과 싸우는 자는 용감한 것이지만 4~6명의 적과 마주쳤을때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스 탈호퍼의 책에서는 앞 뒤에 있는 두 명의 적을 동시에 막고 치는 기술이 나오고, 피오레 데이 리베리는 정면에 있는 세 명의 적을 대적하는 것이 나온다.
     
    피게레도는 다수를 상대하거나 포위된 상황에서는 위협적인 동작으로 큰 베기로 상대들을 밀어붙인 후 도망치거나, 각개격파하거나,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빈 틈을 노리는 법을 가르쳤다.

    사실 이것만 해도 정말 굉장한 것이다. 격투 다대일과 병장기 다대일은 차원이 다르다.
    간단히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양 쪽에서 협공하기만 하더라도 웬만큼 실력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숫자 차이로 그냥 끔살당한다.
     
    병장기 싸움은 격투와 다르게 순식간에 전투불능이 되거나 죽기 때문이다. 격투에서 타격 한 방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병장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까놓고 말해 배에 칼침 한대 제대로 맞으면 즉사한다.
    복싱에서는 바디 맷집을 기르기 위해 메디슨 볼 훈련 같은 것을 한다지만, 검술에서는 칼에 찔리는 것을 버티는 맷집 훈련 같은 게 없다는 점에서 치명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신 검술에는 갑옷이 있다

     
    소드마스터라서 검만 잘 다룰 것같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검술 유파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일반적인 단병접전,
     
    명예를 지키기 위한 1대1의 결투 검술,
     
    법정에서의 재판 결투,
     
     암살자의 암습에 대처하는 맨손/단검/급조무기 무술,
     
    민간 개인 호신 검술과 군용 검술 양자에 두루 쓰이는 한손검과 양손검, 방패, , 도끼(폴암), 쿼터스태프, 레이피어, 단검, 갑주를 입고 싸우는 갑주 전투술, 기마 무술 등등 다양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는 각종 병장기나 싸움방식에도 능숙해야 했다.
     
     다만 롱소드의 달인 같은 식으로 검술이 대표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검술 시스템이 다른 무기를 포괄하기 좋은 무기술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전쟁통이라 죽기 십상인데 단 하나의 무기에 목숨을 의지할수 있겠는가? 사실상 웨펀 마스터라 칭해도 무방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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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꾸준한 시스템으로 많은 소드마스터들이 등장했나 봅니다.
     
     
    개인적으론.
     
    한국의땅에 등장했었던.
     
    척준경.엘리트 유망주...남이 장군.왜란 당시의 의병장 김덕령.이. 떠오르는군요.
    (검선과 백동수도..ㅎㅎㅎ)
     
    출처: 위키.
     
     
     
     
    ㅡㅡ 그리고 많은 소드 마스터들 입니다 ㅡㅡ
     
     
    실제로 마스터로 불리던 중세 유럽의 검객들.
    • 요하네스 리히테나워[2]: 14세기 독일의 검술 마스터. 마스터 오브 마스터, 하이 마스터 또는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던 중세 독일식 검술의 시조.
    • 후대의 독일 마스터들 중에 리히테나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 없다.

    • 본인이 직접 검술서적을 써서 남기지는 않았으나, 리히테나워가 요결(Zedel)이라는 싯구 형태의 검술의 가르침 요약을 전했으며 그것을 배운 검술 마스터들이 해설(Gloss)하여 상세를 보충한 검술서를 써냈고,
    • 후대 검객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리히테나워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거나 인용하고 자신의 내용을 추가하는 형태로 검술 전통이 이어졌다.
    • 싯구로 무술의 요결을 전했다는게 왠지 무협지 같지만, 운율을 이용해서 쉽게 전승하기 위한 요령이다.

    • 리히테나워계 독일 검술 서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 Hs. 3227a에서 "마스터 리히테나워는 검술을 올바르고 빈틈없이 배우고 통달했으나, 스스로 이 검술을 창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올바르고 진정한 기예를 배우려는 열정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찾아다녔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리히테나워가 검술을 창시한 것이 아니라 리히테나워 이전에도 롱소드 검술 자체는 독일과 기타 지역에 있었으며 자신이 배운 가르침을 통합해서 후대에 남겼다는 의미가 된다.
    • 지그문트 링엑: 펠러타인백(伯)이자 바바리아 공작인 알브레히트 공작의 검술 스승이었던 인물. 리히테나워 검술 계보를 잇는 14세기 혹은 15세기의 중요한 마스터 중 하나.
    •  팰러타인백 알브레히트 공작이라는 조건에 맞는 인물이 알브레히트 1세, 3세, 4세가 존재하는데 파울루스 칼이 1470년에 리히테나워 회의 일원으로 링엑을 언급한 것을 보면 4세는 가능성이 낮고, 알브레히트 1세의 후원을 받았다면 14세기 인물이며 어쩌면 리히테나워 본인의 직계일 가능성이 높다. 알브레히트 3세의 후원을 받았다면 15세기 마스터일 것이다.

    • 잘 해석된 현대 번역본 검술서가 (영어로) 출간돼있어서 현대 서양검술계에서도 중요하고 대표적인 리소스로 꼽힌다.
    • 한스 탈호퍼: 15세기, 독일 슈바벤의 기사 류톨트 폰 코닉시그의 무술 스승으로 고용되었으며, 최소한 여섯 권 이상의 독일 검술 서적을 집필한 검술 마스터. 역시 리히테나워 계보이며, 써낸 책이 여러권인데다 널리 퍼져있는 편이라 현대인 입장에서는 독일 검술 마스터 중에 비교적 잘 알려진 유명인사로 손꼽힌다. 탈호퍼의 검술서 중 어느 판본은 콘라드 카이저의 전쟁 기술 서적인 벨리포르티스를 수록한 것도 있다.

    • 그런 것 치고는 탈호퍼 개인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다. 우선, 탈호퍼 개인 문장에 성 마르쿠스 마크가 있어서, 검술 길드 마르쿠스 형제단과 탈호퍼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심지어 초창기 멤버이거나 창시자라는 설도 있는데, 길드 기록 상에는 탈호퍼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 설을 뒷받침할 다른 기록이 없어서 현재로서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 또한, 파울루스 칼이 기록한 리히테나워 회에 탈호퍼의 이름이 올라가있지 않다는 점에서 탈호퍼가 리히테나워 계열 검술을 배우긴 했으되 직계 마스터로 인정받을 위치는 아니라는(굳이 말하자면 몇 다리 건너서 주워익힌 방계?) 설도 있다. 이는 파울루스 칼과 탈호퍼가 서로 라이벌 관계라서 일부러 뺐다는 설과, 리히테나워 회는 옛 마스터들의 족보이므로 칼과 동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아직 살아있는, 말하자면 같은 항렬쯤 되는 탈호퍼가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 파울루스 칼: 15세기 검술 마스터. 바바리아 공작 루드비히 9세에게 29년간이나 고용되었다. 공작의 사람(아마도 기사와 군인을 포함한 가신)에게 결투를 중점으로 하는 무술을 가르치는 무술 스승으로 고용되었지만, 병력에게 전쟁을 대비한 무장(핸드건, 즉 구식 총기도 포함)을 구비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켜준 비용 또한 지불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 결투 검술만이 아닌 군사적인 훈련 역시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 16세기 독일 아우스크부르크의 시정 공무원이었으며, 검술에 미쳐서 검술 서적을 수집하고 그 내용들을 집대성한 독일계 검술 대백과 서적을 만든 검객. 하지만 중세 시대에 전 페이지 컬러라는 돈지랄 퀄리티의 초호화 서적을 찍는 것은 큰 돈이 들어야 했고, 결국 시 재정까지 횡령했으며[3] 그 혐의로 교수형됐다. 다시 말해 비리 공무원. 공식적인 마스터는 아니지만, 그가 수집한 방대한 검술 서적 덕분에 리히테나워계와 리히테나워계가 아닌 것을 포함한 독일 검술의 서적 유물 상당수가 현대까지 전해진 공이 크다. 그래서 서양 검술계에서는 애정을 담아 비리 공무원이라 칭송한다.
    • 요아힘 마이어: 16세기의 검술 스승. 리히테나워 계보의 정통 독일 롱소드 검술의 말기를 장식한 마스터로, 그가 저술한 책은 이 계보의 검술서적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자세하게 해설한 바 있어 리히테나워 검술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다만 검술서적을 내는데 빚을 많이 지는 바람에, 후원자 구하러 한겨울에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어 요절한다. 이 양반 요절한 사연 보면 참 후원자 못잡고 흥행에 실패한 검술가의 삶을 대변하는 모습 그 자체라 안타깝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실력이 확실한데 시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한 것을 보면 참... 리히테나워계 롱소드 검술 외에도, 당대에 민간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레이피어 검술 역시 취급했다.(다만 롱소드 전승의 마스터 답게, 가르치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안좋아한다고 평가.)
    • 리히테나워 회: 파울루스 칼은 저서에서 리히테나워계 마스터들의 족보인 게셀샤프트 리히테나워(리히테나워 회)라는 단체를 거론했다. 리히테나워부터 시작해서 피터 폰 단지히, 안드레아스 리그니쩌, 지크문트 링엑, 한스 훈즈펠트, 오트 쥬드 등등 18명의 마스터들이 거론된다.
    • 이 중에 현재까지 검술 서적이 남지 않은, 그냥 이름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 많다.
    • 기타 독일 마스터: 한코 되브링어, 요하네스 레크흐너, 한스 폰 슈파이어, 피터 팔크너, 한스 폴즈, 요그 윌할름, 주드 루 등등,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어쨌든 책 하나 정도는 남겨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거나, 다른 마스터들의 서적에서 언급되는 식으로 존재를 교차검증 가능한 마스터들이 많다. I.33의 저자로 여겨지는 독일 수도사인 루테게루스[4] 역시 독일 마스터로 볼 수 있겠다. 글라디아토리아, 코덱스 발러슈타인 등 저자 불명의 중요 검술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마스터들의 존재를 짐작케 한다.
    • 피오레 데이 리베리: 15세기의 이탈리아 검술 마스터. 귀족 가문의 말예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검술에 흥미를 가져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마스터들에게 사사했으며[5] 내란에도 참가하고, 토너먼트에도 나가고, 이탈리아 역사 상에서 유명한 인물들이나 용병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차례의 결투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상대를 물리치기도 하는 등 검술 스승이자 군인으로서 흥미로운 삶을 살아온 인물. 그가 쓴 검술서인 플라워 오브 배틀(전장의 꽃, 사실은 싸우다 피터지는 피꽃)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식 검술과는 다른, 중세 롱소드 검술 스타일을 가진 이탈리아식 롱소드 검술이고 판본이 많이 공개돼어 있어서 독일식 롱소드에 대비되는 이탈리아 롱소드로 많이 연구된다. 그런데 뭐 사실 기본 검리는 이거나 독일식이나, 싸잡아서 유럽 롱소드 검술로 분류해도 별 문제 없다. 상세 명칭이나 스타일의 차이 약간 정도.

    • 피오레 계보의 마스터로 필리포 바디가 있다. 하지만 바디를 마지막으로 볼로냐 검술 학파의 약진에 묻혀 피오레 계열 이탈리아 롱소드 전통은 사라진다.
    • 아킬레 마로쪼: 16세기의 이탈리아 볼로냐의 다르디 학파의 검술 마스터. 사이드소드 검술을 중시하지만 여전히 폴암이나 양손검 또한 가르치는 볼로냐 검술의 전형을 드러낸다.
    • 기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볼로냐 검술 계보: 앞서 말한 아킬레 마로쪼 외에, 다르디 학파를 설립한 리포 바톨로메오 다르디, 안토니오 만찌올리노, 안젤로 비쟈니, 지오반니 달라고끼에, 그 외 익명의 볼로냐 마스터(실제로 검술서를 썼고 그 유물이 남아있기는 하는데 명확하게 이름은 밝히지 않은 다르디 학파의 검술 마스터들이 존재.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일 가능성이 크다.) 등이 있다.
    • 살바토르 파브리스[6]: 16~17세기 이탈리아 파두아의 검술 마스터.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의 검술 스승이었으며, 여러 곳에서 레이피어 검술을 가르쳤다. 본격적인 레이피어가 등장하고 민간 검술의 주무장이 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마스터. 피격 면적을 줄이기 위한 극단적으로 상체를 낮추고, 찌르기 방어와 거기서 나가는 런지를 염두에 두어 허리를 빼는 독특한 검술 자세가 조금 유명(...)
      폴란드-스웨덴 왕 지기스문트 3세 바사에게 고용되어, 후에 칼 9세가 되는 칼 공작의 암살행에 고용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칼 공작이 관람하는 연극에 칼잡이 역할로 스며든 다음 칼싸움 장면에서 진짜 검을 뽑아들고 객석으로 뛰어들었다고. 하지만 암살행이 있을거라고 정보가 새는 바람에 실패, 그리고 암살자는 도망쳤고 그 암살자가 살바토르 파브리스 본인인지는 불명확.
    • 기타 16~17세기 다르디 학파가 아닌 이탈리아 마스터들: 앞서 말한 살바토르 파브리스를 포함해, 까밀로 아그리빠, 지아꼬모 디그라시, 리돌포 카포페로, 빈첸티오 사비올로, 프레데리코 기슬리에로, 프랑시스코 알피어리 등등.
    • 피에트로 몬테[7]: 스페인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살고 활동했던 15세기 후반의 마스터. 사실상 이탈리아계 검술 마스터로 본다. 여기서는 검술가로서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철학자로 이름난 인물. 검술서는 한손검, 양손검, 검과 망토, 장대무기, 단검(특히 중세식 역수 단검과는 구분됨), 대갑주 전투술 등등 대부분의 기술을 두루 다루었다. 검술의 근본 검리도 탄탄하고 합리적인 동시에 페인트 기술을 중시하는 등 조금 독특한 면도 있어서 연구할만한 마스터.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에도 궁정인들에게 검술을 가르친 인물로 등장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친분이 있어서 단검 투척술(혹은 다트)을 가르치는 등 이런저런 인맥이 엄청난데다 당대에 대단히 이름난 마스터였던듯 하다. 하지만 검술적으로는 후대에는 거의 영향을 남기지 못한 점은 좀 기이하다.
    • 앙리 드 셍디디에: 16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귀족 가문의 일원이자, 프랑스 검술 마스터. 검술 자체는 당대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검술의 영향을 받은 결투에 초점을 둔 한손검을 다루는 검술이다. 고로 이탈리아식 검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단 프랑스 마스터이며, 프랑스 검술 전통의 압장에서는 프랑스식의 선조로 간주한다.
    • 샤를 베나르: 17세기 프랑스 검술 마스터. 베기는 아예 사라지고, 기본 공격은 런지 형태, 두박자 방어, 왼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현대 펜싱과 거의 다를바 없는 공격 라인과 자세 등 이탈리아 식 길고 무거운 레이피어에서 프랑스 식 가벼운 에페(프랑스 말이니 에페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스몰소드) 검술로 옮겨가던 시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식 스몰소드 검술 마스터. 참고로 르네 데카르트의 검술 스승이었다.
    • 무슈 라바: 17세기 후반 프랑스 툴루즈에서 활동한 펜싱 마스터. 역시 스몰소드 검술 시대의 전형적인 프랑스 마스터이다. 현대 펜싱과의 많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 하지만 묘하게도, 패싱 스텝이나 왼손 사용 같은 레이피어 검술 시대의 기술도 여전히 보여준다. (스몰소드 검술은 스피드가 너무 올라가서 이런 기술이 크게 효용이 없다.)
    • 기타 프랑스 마스터들: 프랑수아 당씨, 리용쿠르, 귀욤 다네, 필리베르 데 라 투셰 등등.
    • 제로니모 산체스 데 까란싸: 16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 이탈리아식 레이피어나 프랑스식 스몰 소드와 차별되는, 스페인식 레이피어 검술인 '라 베르다데라 데스트레싸'[8]의 창시자이다. 까란싸로부터 비롯한 스페인식 검술인 데스트레싸는 상대에게 쭉 뻗은 롱포인트 자세로 견제하고, 대각선과 측면 이동으로 상대 공격을 회피하는 동시에 공격하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공격을 유도하는 검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검술 이론을 전개할때 간합과 이동과 공격의 상관관계를 기하학적으로 해설하는 스패니쉬 써클[9] 때문에 마법진 검술(...)로 더 악명높다. 사실 기하학적인 검술 이론 해설 자체는 이탈리아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루이스 파체코 데 나르바에스: 16~17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검술 스승이었다. 까란싸의 제자로 데스트레싸를 배웠으며, 초년에는 까란싸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후에 연구를 거듭하여 독자적인 기풍을 세운다. 이로 인해 데스트레싸 검객들은 까란씨스타(까란싸 스타일을 유지)와 파체퀴스타(파체코 나르바에스를 따르는 자)로 나뉘게 된다.
      파체코는 1608년에 당대의 시인이자 검객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와 결투를 했는데, 한 칼에 파체코의 모자가 벗겨져버리는 꼴사나운 결과가 나왔고 케베도는 이를 두고두고 놀려먹으며 두 사람은 평생의 원수지간이 된다. 케베도의 소설에서 '숙련된 군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수학적 계산을 동원하는 검객' 운운하는 이야기가 데스트레싸 검객인 파체코를 놀리는 것. 참고로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가 바로 알라트리스테에 나오는 안경낀 시인 그 양반이다.
    • 디오고 고메즈 데 피게레도: 17세기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며 검술 마스터. 젊은 시절부터 까란싸 계열 데스트레싸를 배웠고 실제로 첫 검술 서적은 데스트레싸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들어 포르투갈 독립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포르투갈인의 성향을 드러냈으며, 군인으로 포르투갈 독립 전쟁에 참여했고 검술 역시 스페인의 영향이 강한 데스트레싸를 버리고 고전적인 몬탄트(이베리아 지방의 양손검) 검술서를 저술하였다.
      테스트레싸 일변도인 이베리아 지방에서 보기드문 양손검 검술이라 참고할만하다. 또한 검술의 기술 자체도 간결하면서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아 재미있다. 창대를 뛰어넘으며 공격하는 점프 회전베기라든지, 전후방 포위 상태를 가정하는 것, 직선 통로에서 다수를 상대로 쭉 밀고나가는 법, 여성을 등 뒤에 놓고 보호하는 기법, 발치에 쓰러진 동료를 보호하는 기법 등등. 자세히 보면 은근히 포르투갈 봉술 조고 도 파우와 관련있어보인다. 조고 도 파우가 좀 심하게 폴짝거리기는 하지만...
    • 기타 스페인/이베리아 마스터: 기랄드 티바울트, 프란시스꼬 로렌즈 데 라다, 니꼴라스 타마리즈 등등. 대부분 데스트레싸 검객인데, 스페인에서는 데스트레싸가 대두된 이후 300년간 검술계를 주도해나가면서 구식 검술의 전통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피게레도가 한때 데스트레싸 검객이기는 했으나 전통식 양손검 검술을 알아서 데스트레싸 일변도를 벗어난 형태를 보여주고, 그 외에도 하우메 폰스, 페드레 데 라 토레, 프란시스코 로만 등의 비-테스트레싸 검객이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발굴되는 검술 사료를 통해 데스트레싸 이전의 스페인계 검술[10]를 복원하려는 시도 역시 존재.
    • 조지 실버: 16~17세기 영국 검객. 마스터로 보기는 좀 그런게, 런던의 컴패니 오브 마스터 소속도 아니고 전문 검술 강사도 아닌, 검술 좋아하는 젠틀맨 계급의 신사였다. 당대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레이피어 검술을 지독시리 싫어했으며, 전통있는 영국식 소드 앤 버클러 검술을 칭송하고, 검술에 대한 글 2편을 써서 아가리 파이팅과 실제 대결을 통한 현피를 뜨기도 했다. 당대의 유행에 역행하기는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검술 시스템은 대결, 길거리 싸움, 전장 모두에 적합하고 아주 합리적인 것이라서 읽어둘만하다. 사실 아주 극단적인 취향 문제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가 한 말 중에 별로 틀린 부분은 없다.
    • 도미니코 안젤로: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마스터.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식 스몰소드 검술을 영국에서 가르쳤다는 점에서 어느 계열로 구분해야 할지 미묘... 당시 영국에서 대륙식의 우아한 스몰소드 검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대륙까지 찾아가야 했으나 도미니코가 검술 교실을 열면서 영국 내에서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왕실의 검술 스승이기도 하다.
      아들이자 마찬가지로 검술 마스터인 헨리 안젤로를 통해 영국 내의 검술 전통에 상당히 큰 영향을 남겼다.
    • 기타 영국 마스터: 스코틀랜드식도 포함해서, 조셉 스웻남, 윌리엄 호프, 도널드 맥베인, 토마스 페이지, 헨리 안젤로, 토마스 매튜슨, 제임스 밀러, G. 싱클레어, 알프레드 휴턴 등등.
      또한 조지 실버 이전의 중세-르네상스 초 검술 사료 3점이 존재해서 이를 통해 영국식 중세 검술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다.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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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링 12-09-22 21:31
       
    갑옷을 입었다고해서 달라지는것은 중하수들, 일반인들의 이야기죠.
    본문에서 언급되는 소드마스터라 칭해지는 자들앞에서는 전신철판갑주를 입어봤자
    그다지 의미가 없을듯합니다.
    갑옷의 역사가 무척오래된만큼 갑옷입은자를 상대하는 방법또한 많이 발달했으니깐요.
    그레이팬텀 12-09-22 23:56
       
    ㅎㅎㅎㅎㅎㅎ 소드마스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욱겨. 사실 세검술이나 중검술이나 아무리 나잘났다고 설쳐도 아랍의 검사들을 수준은 안될꺼같아요. 통짜쇠로 만든 풀플레이트를 입고는 검술은 불가능합니다. 갑옷입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는데 무슨 검술을 펼칩니까. 말에도 기중기로 올라가야 하는데..그리고 18반의 병기를 다 다룰줄 알아야 하는건 장교라면 기본이죠. 아시아에선 이미 기원전에 갖췄어야 할 소양이였어요.
         
    실버링 12-09-23 02:57
       
    유럽의 검술을 잘 모르시는군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2&wr_id=238235&sca=&sfl=mb_id%2C1&stx=kaoser&sop=and

    예전에 제가 올렸던 유럽검술의 모습니다.
    유럽이건 아랍이건 동양이건, 각 시대별에 걸맞는 무예가 발달했고
    어떤 무예가 강했는가는 비교할수없죠.

    이건 서양검술들 동영상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2&wr_id=234601&sca=&sfl=mb_id%2C1&stx=kaoser&sop=and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2&wr_id=234618&sca=&sfl=mb_id%2C1&stx=kaoser&sop=and&page=1
    스마트MS 12-09-23 17:35
       
    십자군 전쟁.또는 오스만 제국 과의 전쟁시. 칼과칼. 같은 백병전시. 서방문명권이. 압도적으로. 무력화 되었다고 보기엔. 흠.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십자군 전쟁시엔. 전장환경상. 풀 플레이트. 같은 판금갑옷형 보단. 호버크.사슬갑옷 비중이 높아.
    그리 신체운용에. 극단적으로 불리했을거라 생각이 들진 않는군요.(이슬람권 역시. 가죽갑옷만이 아니라. 여러종류의 갑옷을 사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런.길드와 소드마스터들에 대핸 생각중.
    비록 동양과는 무예. 무기술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저런 시스템의 운용 유지로.많은 소드마스터들이 배출되었고. 기술이 전승되고 기록되어 남겨진 점이.
    한국무예실전과 대비되어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이죠.
    (삼국시대/후삼국 시대.고려시대. 무예는 물론.조선시대의 무예 역시. 많이 실전되었다 생각합니다.
    무예보통지요?물론 좋은 무예서 이긴 하지만.1700년 후반. 조선후기에 늦게 등장해서.고유전통 옛무예 모두를 담았다고 보기엔 어려운.기록물이죠)

    또한 소드마스터들이 주로 등장한 시기도. 중장갑이 쇠퇴하기 시작한 시대인걸 살펴볼때.
    14.15.16.17.세기의 검투술 역시.기술적으로  그리 뒤덜어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원형 12-09-23 22:39
       
    조선세법이라는 검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명칭은?) 조선중기 임란당시에 이르면 이런 검술은 소멸합니다.

    나아가서 임란당시까지 있었던 가전 혹은 학파무술기풍 (가병들 말고)은 전장의 소멸과 함께 더불어 소멸해 갑니다.
    무예보통지는 그러한 상황에서 군부에서 전승되던 군사용 무술입니다. 임란시에 전해진 무술들 포함된 것이죠.

    그리고 총기의 발달로 이런 무술들이 중구난방이 되어서 재정립한거구요. 이건 무예보통지에 쓰여있습니다. (총기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와의 투쟁으로 의병들이 전멸하고 죽어나가면서 고대무술들은 거의 소멸합니다.

    남아있는 것은 태껸 기천 불교무술 이 3종류일겁니다. 국선도에도 있다고 합니다만 소수에게만 전승하는 것으로 바뀌어서 실체는 잘모르죠.

    차력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기공에서 약물을 이용하는 것, 혹은 귀신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뒤로 갈 수 록 위험도가 높습니다. 귀신은 두종류가 있습니다. 물귀신을 이용하는 것도있는데 잘못되면 수장됩니다)등과 같은 방법들이 있지만 전해져 오는 것이 옳바른지 다른지 알길이 거의 없습니다.

    활을 사용하는 방법도 단 하나만 남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듯 합니다. 그나마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 가장 진보된 방식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혼자서 활시위를 멜수있다던지 하는 것 말이지요. 한국활과 가장 비슷한 몽골활도 혼자서 시위를 멜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법도 한국과 다른 유럽식 사법입니다. 몽골에서 활은 남아있지만 사법은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형 12-09-23 22:45
       
    전통적인 유학자는 육예를 배워야 했고 그것들에는 말타는법 활쏘는법 무기다루는법 (음악도 포함)이 있습니다.

    지금의 유학자들은 육예 중에서 한두개만 배우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서양의 기사, 일본의 무사와 한국의 선비는 거의 같은 계통입니다. 글을 많이 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장원을 소유한 지방의 유력가들인 것이죠. 당연하게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술을 배웠습니다.

    정도술이라는 무술이 있습니다. 가전무술인데요. 이런 무술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선의 건국과 동시에 반란을 막기 위해서 무장세력들을 정리하면서 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임란 호란 그리고 일제시대를 격으면서 거의 소멸했을 따름입니다.

    참고로 기천문의 무술의 유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해석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습격하는 적의 갑옷을 파괴하고 일격에 분쇄하기 위한 무술 이라는 점입니다.

    기천검이라는 검의 모습 (거의 강편)이나 공방을 보았을때의 모습등에서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무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다는데 있겠지요. 과장도 문제고 (배우는 사람이 과장)
    스마트MS 12-09-23 23:04
       
    택견은. 고 송덕기옹 으로. 국선도는. 청산거사 산지기들의 무예 기천문. 불무도?선무도? 불가계통 무수릐 생각나는군요
    오랜만에
    용호비결이나 국선도 같은 내공수련용 기법이 이어져 내려오는것도 좋지만
    백동수 윗대의 무인. 김광택. 김체건같은. 무인들의 검술이 온전히 내려오지 못한게 아쉽네요
    본국검 역시. 복원이 힘들고 계파마다 해석의 차이가 잇는등 혼란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자면
    더욱 더 아쉬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