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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3 18:07
[잡담] 오늘날 고구려의 상무 정신과 자주적 천손 사상을 잊지 말아야!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850  

고조선의 건국 신화한국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단군 신화(檀君神話)라고 한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등 고려 시대에 저술된 역사서에 처음 나오며,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 시대 여러 문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편집] 단군신화의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1] 기이(紀異) 제1편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2]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3]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환웅)에게 빌기를, “원컨대 (모습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4]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기하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고 그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고(唐高, [堯])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 년이었다.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5]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주몽의 나이 22세였으며, 한 나라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이었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이곳에 살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그곳이 말갈부락과 인접하여 있었으므로, 그들이 침범할까 염려하여 물리쳐 버리니, 말갈이 두려워 하여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에 채소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라 왕은 사냥을 하며 그곳을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임금 송양이 나와 왕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바닷가 한 구석에 외따로 살아와서 군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주몽은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송양이 말했다. "우리 집안은 누대에 걸쳐 왕 노릇을 하였고, 또한 땅이 비좁아 두 임금을 세울 수 없는데,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떤가?" 왕이 그의 말에 분노하여 그와 논쟁을 벌이다가 다시 활 쏘기로 재주를 비교하게 되었는데, 송양은 대항할 수 없었다.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짱궈의 부상(浮上)에 대해 저는 이런 걸 보면 울 나라 천년 제국 고구려가 다시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구려가 전성기에 북조사를 좌지하거나
통일왕조 수,당을 무너뜨리거나 대패 시킨 것도 놀랍지만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초기 고구려는 진짜 맨땅에 헤딩하면서 국가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5부라는 고조선 소국의 연합을 바탕으로 했지만 당시에는 한제국이라는 실질적 강력한 통일왕조가 있었던 상황에서도 한나라와 서스럼 없는 투쟁을 통해서 고구려를 건국하고 끊임없는 수많은 위기와 역경에서도 문명과 군사강대국으로 동북아 최강대국 반열에 오른 걸 보면.>

물론 이런 고구려의 정신과 문명이 이후 발해나 금 이후 또다시 금으로 들어서면서 대국이 소국이 될수 있고 소국도 대국으로 만들수 있다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나오지 않았나 싶음.
 
왜 그럼 고구려는 이런 불굴의 정신을 가질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기에는 다물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상무정신과 체계적 국가의 지원 나아가 천손사상이라는 자주적 세계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이 자처하는 방식의 신화나 정신들이 존재하겠지만 우리의 고조선 건국 신화인 천손강림 신화나 이미 신석기 후기에 요하일대의 60여미터의 정방향 7층 규모의 적석총 제단이나 고구려 수많은 적석총 무덤 등을 보면 오직 우리를 강제할 수 있는 존재는 하늘이면 우리의 정체성과 사고는 하늘이라는 무한에 바탕한 정신세계관이 고구려를 일찍히 자주적 나라로서 출발점을 지향하고 결국 동북아 최강대국으로 오르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날 분단된 상황속에서도 다시금 이런 우리 고구려의 유형적 유산뿐 아니라 무형적 자주적 기상과 정신을 되새기고 배워야 할 때임을 새삼 저 자신부터 뼈저리게 성찰해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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