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유럽 중심의 우월주의를 내려 놓았습니다. 근대 서구 철학이 '주체'에 대한 집착으로 정복과 피지배를 당연시했지만 20세기에 그 논리는 깨지고 말죠.
이른바 다양성을 추구하는 상대적 관점은 20세를 통합과 협력의 시대로 만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조차 이분법적인 대립 관계는 존재했고, 미-소 간의 대립은 체제와 이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대립하며 반 세기를 지배합니다.
그 반세기 동안 수소 폭탄이라는 인류 공멸의 무기도 개발되었고, 최초로 인류가 지구 밖을 나가 달까지 가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이 시대는 20세기 두 체제의 경쟁에서 남긴 유물로 살지 획기적인 혁신은 그 당시에 비해 이루지 못했습니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을까요? 미-소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발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다시 각 지역의 패권국들로부터 미국의 질서에 대응하는 목소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유럽도 큰 틀에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고, 중동도, 인도도,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20세기에 내세운 미국식 융합론은 아직도 역사와 전통, 종교에 연연하는 국가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이죠.
그러면서 각 지역의 패권국가들은 자신들의 본질을 내세우며 세계 질서를 자신들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러시아의 서진이라는 맥락은 러시아의 구소련 질서 회복에 관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구소련이 이념을 넘어 미국과 경쟁하던 대 제국이었다는 인식이 러시아로 하여금 서진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의 서진을 막고 전쟁을 억제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것이 미국이 통제하는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방법인 것이죠.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은 그런 맥락 속에서 러시아에게 일종의 위협을 가하는 카드였습니다.
러시아가 선을 넘으면 우크라이나나 친러 국가들도 나토에 가입시킬 수 있다는 압박이었죠.
하지만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 카드가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은 러시아와 전쟁 전에 유효했던 카드였고, 지금은 가치가 없는 카드가 됐죠.
어떻게든 전쟁은 끝이 날 것입니다. 러시아는 이 전쟁을 통해 손익 계산을 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승리 공식을 이어갈지 따질 것이고, 우크라이나도 최선의 길을 모색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우크라이나에게 불리한 입장이 커질 것이라 생각 됩니다. 이는 세계의 질서는 순수한 도덕주의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유럽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유럽도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가 필요한데 이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을 통해 흡수보다는 따로 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우크라이나를 전후에 지원하지 않아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죠.
러시아와 인접한 과거 친러 성향의 국가들도 이제는 편을 갈라 각자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기 때문에 유럽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자동적으로 서로 갈리면서 완충지대로 기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러시아도 전후에는 대외적 상황보다 대내질서 확립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며, 독재자의 계승을 두고 또 한바탕 혹역을 치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어부지리를 얻는 나라가 폴란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무장의 명분을 쌓았고 발전하는 폴란드 경제와 발맞춰 여러 분야의 투자가 가능한데 군사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경제여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적은 호응을 얻고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폴란드가 된 것이죠.
폴란드가 당장 지상군 규모로 3세대 이상의 전차 1000대 이상 보유가 되는데 전통적인 유럽의 강호들도 러시아의 서진에 대해 대비는 하겠으나 폴란드 만큼 구체화된 계획을 내놓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동유럽에서의 폴란드의 위세는 더욱 커지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폴란드가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 행위를 하지는 않겠지만 지역 안보에 새로운 구심점이 돼 국제적 영향력을 주변국들에 행사할 수도 있는 부분이겠죠.
러-우 전쟁이 종결되면 미국은 어쩔수 없이 줄 세우기를 할지 모릅니다. 미국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세계가 분열되려고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미국은 과거처럼 모두를 통제할 수 없다는 가정 하에 철저하게 미국과 손을 잡느냐 안 잡느냐로 세계를 가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당연히 전통적 우방은 미국의 편을 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은 이제 우방들을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 등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 할 것입니다.
서태평양 일대에서 중국 군함과 맞서는 것은 미 태평양 함대 소속의 함정만이 아닌 호주나 일본, 우리의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이고, 실제 무력 충돌도 미국 함선만이 아닌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각 국의 지구력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당연히 자국 내에 불만이 고조될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의 경우 남북 문제 또한 중요한 문제인데요, 미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근거로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핵우산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는 북한에 대한 핵우산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핵우산도 미국이 우리에게 약속을 해야할지 모르고, 더불어 우리가 적극적으로 미국의 편에서 역할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우리와 북한과의 군사적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아마도 미국의 방위 전략을 개편해야 할텐데 생각보다 많이 보수적인 미국이 이를 수행할지는 의문입니다.
여하튼 러-우 전쟁 이후 유럽의 지정학적 변동이 예상되며 중동과 인도 등이 미국에 대항하여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미국과 전면적인 충돌은 아니겠지만 지역 패권을 두고 미국의 이익에 우선하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