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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6 01:25
[잡담] 중공군 인해전술.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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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중공군 인해전술의 모습이죠..

근데 중국 영화에서도 요런 인해전술 장면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집결호랑 인생(1994년작)에도 대충 요런 모양새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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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중국군은 군(=군단급) 병력으로..
한국군 사단 병력을 공격하는 모양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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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과장은 있긴 한데..

중공군이 주로 쓰던 전술이 V자 전술..구대전술(큰 자루전술)이라는 포위전술을 주로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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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유명한 군대는 중공군(중국 인민해방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다만 중공군 병력은 UN군에게 비교 우위만을 견지했을 뿐 절대 우위(2배 이상)를 확보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 참전자부터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까지 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렸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유는 나폴레옹과 같다. 중공군은 최소한 접전지만큼은 적보다 많은 숫자를 끊임없이 보충하며 유지해왔던 것. 다만 중공군의 전술은 일반적인 인해전술과는 좀 다르다.

중공군은 구대전법, 그러니깐 큰 자루전법이란 전술을 사용했는데, 보병을 우회기동시켜 적 후방에 깊숙히 찔러넣어 퇴각로를 차단하고, 뱀이 아가리를 벌린 듯한 형상으로 포위한뒤 적을 각개격파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중공군의 전략은 소련군 식의 기동전을 전차가 아니라 보병의 발로 실행한 것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최초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병력을 집중할 때나 깊숙히 우회기동한 부대가 포위섬멸에 나설 때 당하는 입장에선 말 그대로 중공군의 파도에 묻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인해전술로 인식된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일종의 포위섬멸전으로 그냥 별 생각없이 전면에서 수로 밀어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당시 중공군은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베테랑들이었다. 중공군은 미군의 공중 정찰을 피해 야간에 산으로만 움직이는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동 속도는 산을 타면서도 하루에 20여km 수준이었으니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진격 속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포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만 이 전술을 실행할 때 우선 국민당군 패잔병들로 재교육과정을 거친 자들, 즉, 사실상의 형벌부대를 총알받이 겸 미끼로 먼저 보내고 본대는 적의 방어선을 더듬어가며 포위, 이후 꽹과리나 나팔 소리를 신호로 수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가까스로 이들을 격퇴해도 얼마안가 그 숫자의 인원들을 어디선가 또 보충해 어택땅을 재차 반복하니 이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탄약과 인원을 질릴 정도로 계속 소모하는 소모전이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https://mirror.enha.kr/wiki/%EC%9D%B8%ED%95%B4%EC%A0%84%EC%88%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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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양익포위전술을 썼다는 소리지요. 
그래놓고 포위망이 완성되면 압도적인 병력으로 뱀이 입을 벌리고 삼키듯 사방에서 덤벼드는 전술을 쓰니.. 
당하는 입장에선 청천벽력같은 멘탈붕괴가 일어나게 되는데.. 일단. 공세지점에서의 중공군이 방어측의 3배 이상에서 많게는 10배 이상되는 경우도 있었지요.. 장진호전투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구요..

지평리전투 직전 횡성전투도 국군 8사단이 궤멸된 이유가 중국군 병단급(한국군 야전군급)에 집중 공격을 당한것도 무시못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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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11일 밤, 중공군 40군 42군 66군은 8사단을 향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다. 8사단이 만들어둔 부대 간격 간격마다 중공군이 파고들어갔고, 빈틈을 따라 깊숙이 내달린 중공군은 곳곳에서 8사단의 퇴로를 차단하며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대대도, 연대도, 사단도 전혀 지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된지 몇 시간만에 8사단은 완벽하게 마비상태에 빠졌다.

조직으로서 움직이지 못한 채 고립된 8사단 병력들은 무질서하게 후퇴를 시작했으나 곳곳에서 퇴로를 차단한 중공군에 의해 후퇴 도중에 격파되고 말았다. 8사단의 전방 부대가 궤멸되면서 8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던 미군 지원병력과 한국군 포병대도 그대로 포위망에 갇혔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중화기와 중장비를 전부 버린 끝에 겨우 몸만 건질 수 있었다.

2월 13일, 중공군의 공세 시작 후 대략 하루만에 8사단은 궤멸되었다. 살아 돌아온 뒤 차후 다시 전투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 8사단 병력은 3000여명 정도. 그 중에서도 태반은 애초 후방인 사단본부에 있던 병력으로, 사단 전방에 있던 8사단 예하 3개 연대는 대부분이 전사, 포로 혹은 부상으로 전투서열에서 빠짐에 따라 소멸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https://mirror.enha.kr/wiki/%ED%9A%A1%EC%84%B1%20%EC%A0%84%ED%88%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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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중공군 3개 군단한테 집중 다굴을 당해서.. 8사단이 붕괴되었다는 소리인데..
당시 한국군은 미군이나 다른 유엔군에 비해서도 화력이 많이 약하고, 신병 훈련 역시 부실한채 투입되었고,
지휘관들도 백전노장이라기보단, 일본군 중위, 대위급 출신이 별달고 지휘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니, 뭐 당시엔 훌륭한 지휘나 대응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긴 했습니다.

뭐, 어쨌든.. 인해전술이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반대로 인해전술만으로 중공군이 국군을 이겼다고 보기도 힘들지요..

다만 전쟁 후기에 용문산 전투처럼.. 1개 연대 병력이 3개의 고지를 사수하며..
각 고지별로 1개 사단을 1개 대대로 막아내면서 지연전을 펼친 후, 2개 연대가 진격해 
중공군 1개 군(3개 사단)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교전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지휘관
대한민국 장도영 대한민국 국군 6사단장 준장 불명
병력
대한민국 6보병사단 2연대, 7연대, 19연대 중화인민지원군 63군 예하 3개 187사단, 188사단, 189예비사단 약2~3만여명
피해 규모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 전사 1만 7,177명

포로 2,183명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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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노래방 15-05-26 04:08
   
내용에 동감합니다.
대부분 인해전술을 사람만 동원한 무식한 전법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중국군의 대 포위 전술이죠.
실제로 역사상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사용된 순간 병력을 집중시켜 적을 궤멸시키는 나름 일반적인 전술인데 말입니다.
실제로 전쟁에서 제대로 인해전술을 구사한 나라는 "미국"이죠.

그리고 저 인해전술을 분쇄하는 방법은 사실 매우 단순해서 역포위 또는 후퇴 작전으로 간단히 무너뜨릴수 있습니다.(물론 실전에서 그걸 실행하는건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아햏햏햏 15-05-26 05:30
   
un군 화력이면 인해전술 잡고 남지만 그걸 잘알고 있기떄문에 중공군이 주로 야간공격을 많이 했다고 본거 같네요
파스포트 15-05-26 11:0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