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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18 12:21
[잡담] 조선왕조실록 유구한 전통의 포방부
 글쓴이 : 푹찍
조회 : 2,892  

성종 실화 한민족 포방부설 입증
영의정 정창손 집에 귀신이 나타나 걱정이라 하니 예조판서 유지가 '화포'로 쏴버리자고 함

유지 : 요새 성안에 귀신이 많네요. 영의정 정창손 집에 귀신이 들고 호조 좌랑 집에도 처녀귀신 나타남 ㄷㄷㄷ
홍응 : 유문충 집에 쥐가 절을 하는거 보고 쥐한테 밥을 주었고 부엉이가 들어와도 그냥 넘겨버리니 아무일 없었고, 정창손은 나는 이미 늙어서 오늘내일 하는데 귀신이 대수냐고 함 오버 자제염
성종 : 거 봐 그거 별거 아니라고 걍 놔두면 없어짐 ㅋ
유지 : 화포로 갈겨버립시다 ㅋㅋㅋㅋㅋ
성종 : 급발진 멈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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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97권, 성종 17년 11월 10일 신해 2번째기사 1486년 명 성화(成化) 22년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711010_002

특진관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성안에 요귀(妖鬼)가 많습니다.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기물(器物)을 옮기고, 호조 좌랑(戶曹佐郞) 이두(李杜)의 집에도 여귀(女鬼)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기양(祈禳)하게 하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劉文忠)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창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창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物怪)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火砲)로써 이를 물리치소서."
輊曰 : 請以火炮禳之。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上 : 不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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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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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22-10-18 13:05
   
뭔가 상당한 비유가 들어가 있는거 같은데요.

사대부들은 귀신을 인정하지도 신경도 안씁니다.
일반 백성이 귀신 이야기를 해도 어리석으니 그런다 정도로 넘어갈 뿐이죠.

심지어 양반이 귀신이야기 퍼트리고 다니면.
민심을 어지럽힌다 하여 사형입니다.

귀신 이야기에 쥐에 부엉이 까지 나오는것 보니 뭔가에 대한 비유같은데 말이죠.
     
구름위하늘 22-10-18 13:57
   
... 라고 믿기에는 유학자들이 귀신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괴력난신처럼 초월적인 무언가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것을 꺼렸을 뿐이죠.

조상신에 대한 제사나 유교성인에 대한 제사를 포함하여
종묘와 더불어 중요한 사직에 대한 제사는 토지신과 곡식신에 대한 숭배이죠.

영국에서 퍼져나간 신사도도 영국 남자들이 신사여서가 아니고,
제발 이것만이라도 지켜주세요라는 체념에 가까운 권고사항이었다는 점과 비슷합니다.
          
토막 22-10-18 14:24
   
유교제사는 조상신이나 귀신에 대한 제사가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제사가 잘못된 거죠.
유교 스승에 대한 존경 혹은 조상중 잘나갔던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행사죠.

또한 귀신을 적대하는것도 아니죠. 그냥 귀신은 없다 입니다.
없는것에 대해서 적대를 할 필요가 없죠.

가끔. 왕실 기우제나. 일식 월식때 있던 제사를 보고 왕도 귀신을 믿는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왕은 안믿어도 일반 백성이 믿기 때문에 하는것일 뿐이죠.
민심 관리 차원.
               
승리만세 22-10-18 14:28
   
그래도 유교를 철썩같이 믿는 양반네들이나 왕족들도 불교,무속등은 몰래몰래 믿었답니다...ㅎㅎ;
유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니까요
               
구름위하늘 22-10-18 14:37
   
혹시 관련된 자료나 내용이 있는지요?

제가 조사한 유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제가 참고했던 자료 중에 하나

공자는 ‘무신(귀)론자’인가?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4915/3/ReligionandCulture_v11_053.pdf
                    
토막 22-10-18 15:09
   
공자는 무신론자 인가? 의문문 이네요 이다.. 가 아니라.
당시 사회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것 뿐이죠.
당시에 공자는 대단한 인물은 아니였고. 귀신 많이 나오는 도교가 주류 였으니.
공자도 무신론자는 아닐 것이다.. 라는 추측이죠.

정설은 공자는 무신론자 이고. 저 논문은 정설에 한번 거슬러 보겠다는거죠.
               
구름위하늘 22-10-18 14:44
   
제 의견으로는 유교는 귀신을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런 귀신을 숭배하는 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양한 것입니다.

좀 더 세련된 형태로 귀신이 가지는 권위를 깨뜨리고
유교가 주장하는 체제와 이념으로 국가 조직을 이끄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구름위하늘 22-10-18 14:56
   
참고로 유교제사의 용어는 "신"으로 거의 도배되어 있습니다.
존경이나 예의로 제한적인 표현할 수준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국가제례의 절차의 3 단계는 영신 - 오신 - 송신 입니다.
일반 제사의 절차는 지역이나 가문마다 다르지만 대략 영신 - 강신 - 참신 - 진찬... 등으로 진행하다가 - 사신 - 철상 - 음복으로 끝납니다.

도대체 어떤 자료를 보면 유교가 귀신을 무시했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토막 22-10-18 15:16
   
그거 무당이 굿할때 절차라고 나오는데요.

조선시대 국가 제례일 경우도 귀신 나오는거 있긴 있어요.
위에도 말했지만 기우제나 일식 월식때 지내는 제사.
이런건 민심 관리 차원에서 하는거고.

유교 제사엔 귀신 없어요.
현재 보통 사람들이 지내는 제사는 도교식 제사죠.
심지어 절에서 지내는 제사도 도교식 입니다.
                         
구름위하늘 22-10-18 15:27
   
아니.. .무슨 국가 제례를 무당 굿으로 연결하나요.
참나 자료 찾아보고 이야기하는 것 맞나요?

문화재청 자료
조선왕릉의 제례문화
https://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5_01_03.jsp&mn=RT_05_01_03

제가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 알아보려는 노력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냥 님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세요. 굳이 님의 신념을 깰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토막 22-10-18 15:29
   
굿의 다양한 종류와 무당의 각기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굿의 기본구조는 동일하여
청신(請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과정으로 나뉜다.
청신이란 부정을 물리고 신을 청하는 부분이며,
오신은 인간의 소원을 아뢰고 대답을 들으며 놀이로써 함께 즐기는 부분이다.
그리고 신을 본래의 장소로 돌려보내는 과정이 송신이다.
단 재수굿이나 넋굿처럼 큰굿은 개별적인 신들을 모시는 작은 굿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
곧 굿은 부정(不淨)굿으로 시작하여 뒷전굿으로 끝나는데 그 사이는 상이한 성격을 가진
신들을 개별적으로 모시는 작은굿들로 가득 차 있다.
열두거리라고 하는 말은 곧 12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신을 모시는 작은굿을 차례로 행한다는
뜻이다. 이 작은 굿은 거리 또는 석이라고 표현한다.

그냥 일반 무당 굿할때 하는겁니다.
                         
구름위하늘 22-10-18 15:41
   
아이고... 이걸 마지막으로 더이상 답글 달지 않겠습니다.

님의 논리 전개는 이런 형태입니다.

내가 사람은 포유류라고 주장하고, 그 증거로 척추가 있고 온혈이고 젖을 먹여서 키운다하고 했습니다.
님은 돼지도 척추가 있고 온혈이고 젖먹여서 키운다고 하면서 갑자기 "그러니까 사람은 포유류가 아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국가제례나 제가 언급한 제사는 모두 유교식 제사 방식입니다. 이 절차가 무당 굿의 절차와 유사할 수는 있지만 그건 제사라는 공통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님의 주장은 유교가 귀신을 믿지 않았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도" 귀신을 믿었다의 증거일 뿐이죠.

뭔가 철벽하고 이야기하는 느낌.
이걸 자신의 주장의 설명이라고 하시다니... 더 이상 댓글달지 않겠습니다.
                         
토막 22-10-18 16:06
   
답글 안다는건 문제가 아니고요.

님 방식은 비슷하지도 않은거 어거지로 끌어들이는 군요.
님이 올려놓은 조선왕릉 제례문화에도.

청신 오신 송신 이런건 나오지 않는군요.
무당굿 하는 방식을 말하면서 비슷하지도 않은 왕릉제례라니.

진짜 옜날이였으면 혹세무민으로 사형 당할 일이네요.
새끼사자 22-10-18 14:11
   
예전부터 귀신이나 액 등은 큰소리로 쫓아 낸다고 알려져 있었지요.
지신 밟기도 그렇고 엄청나게 시끄럽게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보면 시끄럽게 해서 액운이 도망가게 하는 것이고
중국이 신년에 폭죽 쏴 대는 것도 같은 의미라 보고 있고,

아무래도 일반적인 꽹과리 수준보다 큰 소리를 내는 포를 쏴 보는 것이 어떨까 란 의견이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점퍼 22-10-18 15:02
   
현대 교육을 받은 한국인도 반이상은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조선시대는 더 했죠. 더 모르는게 많고 이해할 수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나마 유교는 귀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한거지 귀신은 없다가 아니었죠.
솔직히 종교인은 다 귀신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봅니다. 물론 종교가 없어도 귀신을 믿는 사람은 많지요.
저도 영적인 존재가 절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명할 수 없으니 논할 수 없다는 입장이죠.
사실 현대 물리학도 양자역학 수준에 가면 불확정 성에... 모든 물질은 정보에서 출발하고, 물질은 사라져도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요.
물질을 잃고 정보만 남은 존재가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게 바로 귀신이겠죠.
     
토막 22-10-18 15:22
   
더 했겠죠.
그런데 제가 말하는 대상은 사대부.
전국민중 많아야 5%
그중에서도 여자나 아이들 빼고 성인 남자만. 그럼 한 2% 정도 되려나요?

또 그중에서도 믿는 사람이 있긴 있었겠죠.
하지만 절대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유학은 논리로 증명을 해야 하거든요.

논리로 증명을 하지 못하면. 혹세무민. 거짓된 말로 백성을 속인다.
조선시대에 아주 큰 죄죠. 사형입니다.

일반 백성은 막해도 되요. 못배운워서 어리석은 백성이 저러는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죠.
다잇글힘 22-10-18 15:11
   
오래전부터 한반도인들이 원거리무기에 집착하는 이유야 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선 우리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평야지대보단 산이 많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높은위치에 있으면서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기 좋은 지형인데 칼이나 창을 사용하는것보다 활이나 화포같은 원거리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수밖에 없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지상에서 맞붙는다면 요철이 많은 전장에선 직사유닛보단 곡사유닛이 훨씬 효과적일 수밖에 없고

^^
푹찍 22-10-18 15:19
   
밀게에 귀신을 풀었다 ㅋ 모든건 계획대로 ㅋ
     
구름위하늘 22-10-18 15:44
   
어이구... 왜 그러셨어요...

푹찍님 탓은 아니지만
괜한 힘을 혼자만 뺀 것 같습니다. T.T
푹찍 22-10-18 17:57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ㅋㅋㅋ


사실 위와 같은 조정의 공론과는 달리 이륙의 "청파극담" 에 의하면 정창손은 사실 집도 옮기고 살귀환(殺鬼丸)(‘살귀환’은 민간에서 귀신을 쫓을 때 쓰는 약으로서 이를 불에 태워 문 앞에 두면 귀신이 달아난다고 한다.)을
태우는 방식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후일담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711025_004
성종 17년 병오(1486) 11월 25일조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듣건대 호조 좌랑(戶曹佐郞) 이두(李杜)의 집에 요귀(妖鬼)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그것을 물어서 아뢰라."

하니, 이두가 와서 아뢰기를,

"신의 집에 9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어서,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자취를 감추기도 하며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불빛을 내기도 하며 기와나 돌을 던지기도 하는데, 사람이 부딪혀도 다치는 일은 없으나 다만 신의 아내가 살쩍에 부딪혀 잠시 다쳐서 피가 났습니다. 종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사람과 말을 하기를 사람과 다름이 없고, 비록 그 전신(全身)은 보이지 아니하나 허리 밑은 여자의 복장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단지 밤에 두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신이 처자(妻子)를 이끌고 다른 지붕으로 피해 있었더니, 얼마 아니되어 또 따라와서 때없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하기에, 신이 생각하기를,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잠시 피해보았으나 결국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 돌아오니 귀신이 없어졌다’는, 일종의 ‘정답’을 말하며 고변을 끝맺는다.

중요한 사실은, 떳떳한 마음가짐=귀신? 어쩌라고 쒸 ㅋ 을 통해 귀신을 퇴치하는 유형의 귀신담이 체제를 정비하는 시기인 조선전기에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고 조선후기에 더욱 왕성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즉 귀신인정? 어 인정~ 하지만 고스트버스터는 화포가 짱 ㅋ
다른생각 22-10-18 19:41
   
조선시대 문학에서 귀신을 묘사한 야그를 보면 대충 그 시절 귀신을 어떤 시각으로 봤는지 알수잇죠..
사또가 자매 귀신 소원을 들어준다든지.. 등등..
서양과는 의미와 취급이 달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