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말 부터 99년 까지의 군번이 IMF 군번이죠.
이 군번은 역대 어느 군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경험했죠.
그것은 입대영장이 나왔을 때 우리가 흔히 연상하던 그런 모습이 아닌
기쁨(?)을 경험했죠.
나라가 온통 난리인 판국이라 군대라도 들어가서 지출이라도 줄이려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입영대기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의 경우 휴학을 하면 특별한 일 없으면 영장이 몇 달 안에 나왔었습니다.
저 또한 군대를 가려고 입대신청을 했지만(97년 초가을) 병무청에서는
빨리 군대를 가려면 휴학을 하는 것이 그나마 빨리 영장이 나온다는 조언에 휴학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IMF가 터지면서 입영신청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저도 그 다음해가 되도록 영장이 나올 생각을 안했었죠.
아무튼.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각 훈련소마다 적정 인원을 넘어서는 인원으로 인해 수용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기거하고,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보급품 보다는 대충 맞춰서 있는대로 보급을 받아서 자대를 갔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당시 병사들의 월급이 일괄적으로 2-30%(정확한 수치 기억 안남) 삭감되었고,
보너스도 절반인가로 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등병 월급이 9,6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보급품도 줄어서 각 부대마다 자잘한 도둑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오죽했으면 하사관들도 자신들이 병생활할 때나 있었던 속옷도둑이 다 있냐고 할 정도 였죠.
양말, 속옷은 쉴새 없이 없어지면서 돌고도는 품목이었고,
가끔 전투화나 전투복들도 많이 훔쳐 갔었습니다.
먹는 것도 정말 열악했었는데
군대에서 처음 눈물 흘렸던 때가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짜장면이 점심메뉴로 나왔을 때 입니다.
저희 소대가 마지막 이었고 그 중에서도 우리 분대가 마지막이었는데
이미 짜장소스는 진작에 떨어져서 흔적도 안남았고,
반찬이었던 짠지는 양념만 조금 남은 거 배식반이 자기네 비벼 먹는다고 면 넣고 비비고 있었죠.
별 수 없이 면만 받아다가 양념통에 조금 남은 말라버린 고추장 흔적에 비벼 먹다가,
그것도 떨어져서 간장 뿌려서 먹고 그것도 떨어져서 소금 뿌려 먹다가 포기했죠.
짬시키는데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입니다.
그 외에 각종 반찬들도 유통기한 같은 거 없이 무조건 떨어질 때 까지 나왔습니다.
오이소백이 같은 것은 하도 발효되어서 오이가 섬유질 흔적만 남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오이소백이 국물에 담겨 나왔죠.
저야 푹 익힌 오이소백이를 좋아해서 맛있게 먹긴 했지만 신김치 같은 것을 싫어하는 병사들은 고생했죠.
항상 적정 인원보다 보급이 적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나마 연대 취사반에 파견나가 있는 취사병 중 왕고가 저희 중대 출신이라
다른 곳 보다 조금 더 받았음에도 그 모양이었습니다.
우유도 일주일에 한번인가 밖에 안나왔죠.
저희는 수색중대라 일부 보직들이 생명수당이 나왔었는데
중대행보관이 생명수당만 따로 모아서 라면을 사다가 소대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나눠 줬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대와는 다르게 라면을 일주일에 1개 때로는 2개를 받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
다른 부대는 한달에 1개 꼴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80년대 군번도 군대에서 굶주리지 않았다는데 밀레니엄을 눈앞에 뒀었던 저희는
IMF라는 희대의 사건을 맞아서 말 그대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군생활을 했었네요 ㅠ.ㅠ
밑에 군대 배식이야기 나왔을 때 80년대 군번도 안그랬다는 소리에
울컥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