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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26 11:06
유럽 보다 200년 앞선 우리 부기법 간교한 일제에 의해 세계 역사에 올릴 기회 강탈 당하다
 글쓴이 : 민아
조회 : 4,066  

유럽 보다 200년 앞선 우리 부기법 간교한 일제에 의해 세계 역사에 올릴 기회 강탈 당하다


사개치부법 [四介治簿法]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독특한 부기법.

고려시대의 수도인 송도(개성)를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개성부기·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송도사개치부법이라고도 한다. 이 부기법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서양의 복식부기와 근본 원리가 같아 일찍부터 국제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론이 있으나, 고려시대 전성기에 발생한 서양의 복식부기법보다 200년 이상 앞서 개발된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러한 사실은 개성이 일찍부터 상업도시로 발전한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부기 조직은 봉차(奉次:자산) 1개, 급차(級次:부채) 1개, 이익 1개, 손해 1개로 이루어졌으며, 이처럼 부기 조직(문서)이 모두 4개라는 데서 사개치부법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으로 만들어진 개성장부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기본이 되는 것은 일기장과 분개장(分介帳)이다. 


일기장에는 초일기(草日記)·중일기(中日記) 등이 있으며, 분개장에는 봉차장·급차장·원장(元帳)·외상장책(外上長冊)·타급장책(他給長冊)·결산장 등이 들어 있다.

일기장과 분기장 외에 통장을 통칭하여 주요 장부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은 일기장과 장책이다. 일기장 가운데 초일기는 영업일지에 해당하는 단순한 거래의 기록이고, 중일기는 정서한 일기책으로 분개인 장책에 전기(轉記) 매개구실을 한다. 장책은 복식부기에서의 총계정원장에 상당하는데, 외상장책은 준 것에 대해 나중에 갚아야 될 것을 기록한 장부이다. 


개성장부에는 이 밖에도 보조장부에 속하는 현금출납장·물품거래장·위탁물처리장·어험수지장(어음수지장)·회계책·손익계산장 등이 있다. 개성상인은 이러한 장부를 사용하면서도 장부의 기록과 계산의 편의를 위해 독특한 부호를 개발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대조 또는 전기할 때 쓰는 타점법(打點法), 대차의 완결을 표시하는 열기법(列旗法) 등이 있으며, 금전의 출납에 대해서는 '상(上)', '하(下)'의 문자를 사용하는 등 독특한 기록법을 창안하였다. 또 1∼9의 숫자에 대해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개발한 │, , , ,, , ±, ×, ÷ 등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였다.



**1920년대 일본학자들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회계학회에서 이 사개송도치부법이란 것이 보고되자 일본학자들이 주장한 것으로 서양선교사에 의해 전래되었다는 설로 무마 시켰다. 그 당시 세계 학회 학자들이 이 사개송도치부법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지만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 현실에 묻혀 결국 잊혀지게 되었다.**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은 무엇인가?

 

회사나 관공서에서 각종 회계장부를 정리하며 사용하는 단식부기 또는 복식부기는 일반적으로 일본을 통해 서양의 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쓰는 부기는 그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에게도 전통적으로 쓰던 부기가 있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특히 개성상인들의 장사 수법은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이 부기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고유의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은 이미 6백여 년 전 송도(개성)의 상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송도사개치부법은 처음에는 엉성한 형태로 사용되다가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따라 점차 보완하여 나간 것이며 상업의 규모나 형태, 종류에 따라 또는 상인의 필요에 의해 보조장부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개치부법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1940년대까지 개성상인들이 사용한 치부법이다. 이 같은 내용은 1916년 현병주가 <실용 자수(自修)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상인들은 처음에는 명심록(銘心錄), 초일기(草日記), 일기책(日記冊)을 중심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외상장부, 장기(掌記) 등의 보조장부를 사용하였다.

우리만 하여도 어릴 적에 현금을 내지 않고 술이나 밥을 먹으면, “장끼에 달아두세요” 하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것이 그 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말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장부에 어떻게 회계 표시를 하였을까?

현금거래의 경우 돈이 들어오면 상(上)자를 쓰고 돈이 나가면 하(下)자를 쓰며 물품이 들어오면 입(入)자를 쓰고 물건이 나가면 거(去)자를 쓰며 타인에게 금전을 빌려준 경우는 환급(還給)을, 금전을 차입시에는 환입(還入)이라고 적었고, 이익이 발생한 경우는 과입(過入) 손실이 발생한 경우는 과거(過去)라고 쓰는 등 나름대로 일정한 형식으로 기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장부의 일종인데 지금의 우리가 봐서는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그 사람들 나름의 기준에 의해 기록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기본적인 장부인 일기장의 종류로는 초일기, 일명 명심록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당일 현금의 출납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요즈음의 전표와 같은 역할을 하였으며, 일기장은 일명 일기책이라고도 했는데 현금출납부나 분개장, 현금계정의 역할을 하였다.


장책(長冊)은 일기를 토대로 하여 일기에 기록된 내용 중 소멸된 것 이외의 모든 거래를 각 해당 계정에 집계하는 장부로서, 현대 부기의 원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부에는 대체로 날짜와 거래내용, 금액의 순으로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 부기(簿記)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1899년(광무 3년) 황성신문 10월 22일과 23일자에 광흥학교에 특별과를 신설하고 야학으로 산술, 부기, 일어를 가르친다는 광고가 효시였고 복식부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05년 전후이다. 그곳에서 부기를 가르쳤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고 1900년에는 사립 광성상업학교의 학과목에 부기 과목이 있기는 한데 실제로 가르쳤는지는 불분명하다. 1906년 보성전문학교에서 부기학 교육이 실시된 것이 실제 부기를 가르친 확실한 증거이며 그 후 1909년 이후 상업학교는 부기가 필수과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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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것은 지금의 k-pop 한류 보급 만큼 중요하다

우리역사를 부정하고 친일을 역사를 아무 여과 없이 가르친다.

또한 행동하는 역사학자들은 갈 수록 사라지고 몸보신 역사학자들이 연구나 탐구를 뒤로한체 탁상에서 호위호식 하면서 중국 일본 서양에서 주는 자료만 가지고 연구를 한다 그리고 이들과 제자들이 이 나라 역사를 자지우지 한다.

베니스 개성상인에 안토니오 꼬레아가 송도출신으로 송도사개치부법을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 당시 유럽에는 지금으로 말하면 회계관리자나 자산관리자가 부기를 하지 않는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그 당시 유럽의 회계관리는 형편 없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허구적 맹락이 존재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 펙트는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영상을 제작해 본 카페에 올리겠습니다


출처 http://cafe.daum.net/kpopGalaxy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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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타 12-01-26 12:43
   
이게 밀게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개떡 12-01-26 14:04
   
동아시아 게시판은 장식인가요.
마이꼴 12-01-26 17:55
   
뚜엣? 쎗트?  좋은말 다 놔두고...내용 좋아할 사람 많겠구만...
헤이얀 12-01-27 02:38
   
옛날에 읽은 베니스의 개성상인.. 생각나는 이야기군요. 물론 행정병이라면 관심을 받을라나 밀게랑은 상관없어 보입니다.. ㅠ-ㅠ
다구리11 12-01-28 23:13
   
잘봣습니다 ...근데 이건 동아게쪽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