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되돌아보면 조선의 흥망성쇠가 모두 하나의 이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해 흥했고, '성리학'을 통해 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이 조선의 것만은 아닌데 어떻게 조선을 흥하고 또 망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성리학을 사상으로 삼고 이를 토대로 우리 나라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이상주의에 있습니다.
즉, 성리학이 말하는 인간 본성과 우주만물의 원리에 대한 해석에 대해 그것 자체로 진리로 판단하고 그에 맞게 세상을 제단하여 '성리학' 속의 이상 세계를 꿈꾸었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에서 '이(理)'라고 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에 존재하는 본질로 우주 만물은 하나의 '이'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윤리 규범이 모두 같다고 생각해 자연을 도덕적 기준으로 삼고 자연 재해 등도 인간의 잘못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실은 현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의 문제가 되며 도덕성의 문제가 됐을 때 현실 사안은 사안 자체가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들의 해몽에 따라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 사회가 철학을 중시하고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깊이 연구한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현실을 외면하고 종국에는 파벌과 학파의 이익에 나라까지 팔았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이를 반성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고려말의 이성계 장군은 출신의 미천함을 깨고 실력으로 고려말 혼란을 타개하였으나 정치적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군인에서 정치인이 돼 권력으로 나라를 얻고 그것을 국제 사회에 공인 받기 위해 '사대'의 예로 스스로 명나라의 제후국이 됐습니다.
그리하여 국호를 하사 받고 이를 통해 정권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실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큽니다. 하지만 후에 성리학을 연구하던 많은 신진사대부들이 성리학의 이치에 몰입해 '사대의 예'를 우주만물의 이치와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여기며 조선을 나락으로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실리라는 것은 당장 오늘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방, 궁극에는 자주국방으로 가야합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주변국들에게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수 천 년을 이 자리에서 민족과 국가를 이루며 살았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세기를 돌이켜보건데 아직 우리에게는 힘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미국의 울타리가 아직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2023년의 대한민국은 50년 전의, 1973년의 그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이제 자주국방을 통해 전투기까지 개발하는 나라가 됐죠.
이제 당장 미국과의 관계를 청산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꽤나 오래도록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광해군 당시의 국제 정세 때처럼 미국이 현저하게 위상이 낮아지고 새로운 절대 강자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때 선택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야 말로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져야겠죠.
(지정학적 위치상 미국 국력의 현저한 감소는 앞으로도 가능성이 낮겠으나 동북아 영향력에 대해 국한 할 경우를 상정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동북아 국가들, 중국이나 러시아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과 맞먹는 전력적 지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꼭 핵무장 만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원자력추진잠수함과 이를 토대로 전략원잠을 확보하는 것일 것입니다. 비록 핵탄두 자체는 탑재할 수 없어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장비하고 남해와 동해상에서 작전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다면 동북아에서 우리를 쉽게 대할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신뢰를 지켜 나가고 예의를 차려 동맹으로서의 동반자관계를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에 맞는 노력 또한 허구적으로 대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에 대한 우리의 예가 우주만물의 근원적 질서와 닿아 있다는 맹신론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며, 기본적인 사대적 친미주의자들은 이시대에 배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자는 이상주의자가 필요하지만 군대에서는 전투 전문가가 필요하며 정치에는 현실주의자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