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국이 대단한게, 러시아 병력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접경에 총 10만명 집결, 탱크 장갑차 수 백여대, 전투기 폭격기 100여이상 배치 암튼 이런걸로 후덜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큰 감흥도 그리고 그닥 큰 숫자로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솔직히 그 정도로 제대로 전쟁이나 하겠어?란 생각이 들 정도니... 현재 한국은 어떤 강대국이라도 핵무기 말고는 재래식 무기 전력으로는 절대 쉽게 침공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지...
임진왜란 10만 양병설은 실제 존재도 안 했던 헛 소문을 교과서에 올려버린 흑역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어떤 기록에도 10만 양병성을 주장했다는 말은 안 나오고 후대 제자 중에 한 명이 주장하고 기록한 것을 교과서에 실은 것인데 정식 기록도 아니고 교차 검증도 안되는 그냥 뻘 소리입니다.
이게 정말 황당한 이유가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 정부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병사의 수가 14만이 넘어요;;
단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그렇지 정규군은 이미 10만이 훨씬 넘음. 편제 상 20만이 넘어야 하는데 평시이니 당연하게 축소 운영한 것이 이 정도임.
이미 10만이 있는데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됨;;
사람들이 자 모르는데 임란 후기에 조선은 전시 징병으로 병력 수가 100만을 넘김;;
대부분 징집병이니 향토 수비나 하고 있으니 그렇지 숫자는 많음. 단지 정부가 주력으로 운영하는 정예병이 20~30만 수준 이였음.
10만 양병설은 정말 조선을 우습게 본 역사학자나 아니면 일뽕 놈들이 조선을 깍아내리려고 극히 개인적인 기록을 정설인 마냥 만든 허구라 봄.
상식적으로 중앙집권 체계도 못 가지고 150년간 전국 시대를 격은 일본도 30~40만을 징병해서 처들어오는데 오랜 기간 중앙집권 체계를 가진 조선이 고작 10만을 못 굴릴까? 지방 분권 체계였던 고려도 여진과 전쟁에 30만을 동원했는데???
실제론 달랐습니다.
전란때 포루투칼 선교사들이 일본애들 따라 다니면서 기록한것만 봐도 부산 점령할때 그냥 걸어 들어갔다고 하죠.
저때 성문 앞에 지키던 군사만 간부급이었고, 여기도 지금으로 따지면 유디티 특전사정도 되는 인물들이었고, 여긴 엄청 잘 싸웟다고 함.
실제로 이름있는 사무라이 애들이 다이다이 뜨니 밀렸을 정도 문젠 많은 수가 계속 덤비니 우리쪽이 지쳐서 나중에 잡히거나 죽임을 당했죠.
당시 해자 위치에 목밴 시체가 엄청 나온 것도 이이유죠.
류성룡을 위시한 김성일등 전쟁 안난다고 하고 전시 준비하라니 백성들이 힘들어한다고 전쟁 안나니 전시 준비 줄이라고도 했죠.
문젠 부산 점령 당시 상황을 묘사한거보면 사실상 성문이 잠기지 않을정도로 개판 이었고 이렇다할 바리게이트도 존재하지 않았고, 창고에 대포랑 화약이 있어지만 쳐들어온다는걸 몇시간전부터 알았지만 그걸 꺼내놓지도 않았고 운영할 수 있는 인원도 없었습니다.
안 넘어가게 화약창고라도 터뜨려야 하는데, 그대로 넘겨주었다죠.
10만 양병설이 나올 수 있는거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할 상황인데, 류성룡부터가 징비록 쓰면서 태세 전환해버리니.
일본 애들은 화살 안맞을라고 그냥 깃발들고 150센티도 안되는 애들이 그냥 성벽을 걸어서 넘어갔단 애기가 나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상상이 가실거임.
군사도 사실상 없었고, 책임자나 부산에 잇던 백성들 도망가기 바빴고, 결국 외부서 들어온 전문군인들만 고군분투하다가 참수 당한게 펙트임.
전란 후의 대부분 군인들이나 의병도 전라도에서 일어난게 펙트고 여기가 많은 수를 차지함.
사실상 전문 군인이 아닌 민초였음.
근데 여기 인원이 의외로 잘싸워서 왜놈들이 고전한거죠.
그런 대단한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해야만 하는 현실이 어떻게 보면 참 슬픈 거죠. 지정학적 위치가 더러워서 절망적인 출산율 속에서도 어떻게든 최대한 단 한 명이라도 더 군대에 보내 숫자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하필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는 무조건 유지해야 하는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