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86년.
대만이 중국의 갖은 술수에 의해 국제무대에서 점점 코너로 몰리고 있던 나날.
대만 해군은 갖은 조사끝에
현재 대만이 가진 함정 건조의 유일한 옵션은 "울산급"이라는 결과를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유는
1.러시아 견제를 이유로 서방 세계가 한참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고 있느라 중공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음.
2.이는 곧 서방제 무기 도입의 원천금지를 의미하다보니 직도입은 말할 것도 없고 라이센스는 물론에 어떻게든 들여온다쳐도 무장 해제된 깡통 수준의 함정만 어찌어찌 들여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함.
3.그러나 그때까지 수교를 맺고 있던 한국은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중국의 눈치를 보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무장된 함정을 팔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승선원 교육 패키지와 원한다면 대중 군사동맹 비슷한 교류강화도 가능하다고 본 것임.
그러나...
1988년 갑자기 모든 것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지금도 갖가지 추정이나 미루어 판단할 뿐 아직까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만 특유의 반한 감정이 그당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
대만은 자신들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못살던 한국에게서 함정을 사온다는 것 자체를 엄청난 수치로 여겨 "저런 나라에게서 어떻게 그런 무기를 사오느냐"며 비난을 이어갔고
이 분위기는
88올림픽 서울 개최를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여는것이 말이 되느냐"며 국제사회에 한국의 식용 개고기 문제를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을 뿐 아니라
대만의 수준낮은 미디어들은 너나 할것 없이 우리나라 서울의 저개발 지역, 소위 달동네를 찾아다니며
낙후된 서울의 이미지,
냄새나고 허름한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데 혈안이었다.
"이런 판자촌이 즐비한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는 함정을 사오려 하느냐"
대만 국민의 이성은 마비되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수교국이었던 한국의 위신과 이미지를 이유도 없이 깎아내리는 것도 모자라 조롱하고 트집잡았던 대만
단순히 미디어의 잘못이었을까, 그 뒤에 누군가가 또 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이 부임한 예창통 해군참모총장은 "울산급은 판자로 만든 배"라며 실제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던 그 계약서의 서명을 거부하고(현대중공업은 이 당시 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봤음)
돌연 프랑스의 최신예 구축함 '라파예트 급'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의문을 갖는 이가 있었다.
함정 건조 사업에 관여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인칭펭 대령이 바로 그이었다.
조사 끝에 밝혀진건 갖가지 얽히고 섥힌 대만 해군 수뇌부의 비리와 타락.
조사끝에 밝혀진 사실을 인칭펭 대령은 참지 않기로 한다.
해군 수뇌부와 정치@권이 저지른 비리에 대한 폭로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중화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언젠간 중화를 수복하고 만방에 그 위대함을 떨칠 중화의 중흥을 위해서.
실수였다.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그의 폭로가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훗날 정치인들이 사주한 조직 폭력배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밝혀진 인칭펭 대령의 사망은 끝내 대만 해군의 자체 증강 능력의 존재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부관참시한 꼴이 되어버렸다.
한 나라의 군인이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뒷골목의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독살당하고 그 독살당한 배후에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존재가 드리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해군 기술장교는 숱하게 옷을 벗었다.
자신의 명예와도 같은 군복을 벗는 것으로 눈물을 갈음하고.
그렇게 대만 해군의 증강 계획은 지리멸렬하게 와해되고 만다.
※정치인들은 프랑스 회사로부터 라파예트 급을 밀어주기로 한 댓가로 5억원 씩을 받았다.
일련의 사건과 시간이 흐르고 대한민국은 비교적 홀가분하게 그러나 최후의 의리만은 지켰음을 분명히 하고서,
92년 중국과의 수교조건을 받아들여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선포한다.
라파예트급은 잘 인도되었다.
무장해제된 깡통 수준의 함정의 모습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