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상, 이전 미국이라면 핵폐기 선결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겁니다.
헌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선결조건 없이 정전협상에 임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즉, 북핵폐기는 2순위로 밀린 분위기 같습니다.
제가 이전에 발제한 글에서 말씀드린 것 같이, 육자회담으로 대표되던 지역질서는 이미 붕괴했습니다.
이미 붕괴해 산산이 부서진 틀로 보면, 현재의 움직임이 납득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될 겁니다.
미국이 어떻게 저 사악한 북한과 대화를 하고, 하물며 실효도 없을 정전협상을 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죠.
헌데 말이죠, 미국이 언제 한 번이라도, 정의와 질서의 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밀리터리 게시판에서라도 순진한 생각, 틀에 박힌 생각은 하지 말자고요. 미국은 미국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미국에게 있어 미국이 패권을 쥐는 현재의 질서가 가장 큰 이익입니다. 고로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지고지상의 과제이며, 패권유지에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누구와도 관계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수십년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건 자기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기준일 뿐입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일입니다. 이미 미국은 중국과 손잡고, 중국을 지금까지 키워줬습니다. 그러더니 패권을 중국하곤 나눌 수 없다며 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엔 무단으로 핵개발한다며 제재를 가하던 인도와 동맹을 한답니다. 80년대초까지 파키스탄하고 동맹을 맺고 인도를 비난하던 게 미국인 건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제 파키스탄은 악의 축이고, 인도는 동맹이랍니다. 아마 파키스탄 정치인들도 어이가 없을 겁니다. 국제정치외교라는 게 이렇게 유동적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하고 손잡지 않을 이유는 뭡니까?
북한이 한 도발, 적화통일? 이딴 건 미국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도움이 되냐? 마냐? 그게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풀어쓰면, 육자회담 시절 질서는 무너졌고, 중국이 적국이 된 이상, 북한은 골칫덩이가 아니라 인도처럼 얼마든 대화도 하고, 경제교류도 가능한 대상입니다.
물론 단지 질서가 변했다, 무너졌다,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해봐야 안 먹힐 건 뻔합니다. 막연하죠.
그러니 구체적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몇 년전부터 주장하는 바이지만, 북한의 비대칭 무기 고도화, 핵전력 고도화 모두 중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국은 북한을 핵무장 상태로 오랫동안 존속시킬 생각이라고 봅니다. 왜냐면 중국 입장에선 그 편이 가장 값싸게 전략적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국이 북한을 존속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북한을 먹고 살게 해주거나.
북한이 삥뜯고 살게 해주거나.
중국은 알다시피 후자를 택했습니다. 왜냐면 첫번째는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생각이 없습니다. 보수우파를 자칭하는 분들이 의외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북한이 비단 남한한테만 더럽게 굴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중반 미국인들이 한국을 가리켜 우리 젖꼭지를 물어뜯는 맹수란 늬앙스로 표현했듯이.
북한 역시 소련과 중국을 맹렬히 뜯어먹던 기생충이었습니다. 70년대 정점을 찍은 북한의 경제적 번화상 뒷면엔 동구권 각국들의 눈물나는 없는 살림 쪼개 보태주기가 있었습니다. 물경 수십년을 얻어먹는 삶에 익숙해져 벌어먹는 삶을 지금도 못 배워먹은 게 바로 북한입니다.
즉, 북한은 특성상 자립자족이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외부의 원조가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한 국가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전례를 보면 중국 역시 북한에게 질릴대로 질린 나라입니다. 자기들 입장에서 전략적 필요만 없었다면 진즉에 관계 끊고 내다버렸을 것이 북한입니다.
중국조차 북한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자립경제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중국은 시장이란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예전도 지금도 미래도 중국은 생산자였고, 생산자이고 싶어하는 나라입니다. 소비할 생각 없이 생산을 해서 팔아먹을 생각만 합니다. 딱,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가 필요해 껄떡거리던 강대국의 모습, 그것이 지금 중국의 모습입니다.(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제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장기적으론 경쟁관계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국이 친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겁니다.)
고로, 중국은 북한이란 나라에 생산기반을 마련하고, 그렇게 생산한 물자를 소비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값싸게 원료를 제공받고, 비싸게 제품을 팔 생각만 하죠. 딱 식민무역, 식민약탈경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경제봉쇄기에 중국은 북한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만을 하고, 주로 군사적 자원을 제공함으로서 자력 무장을 지원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은 중국에 대해 그 나름대로 이를 갈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살아남을 길은 하나뿐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엄마(소련), 아빠(중국)처럼 북한을 먹여살릴 수 없습니다.
이제 엄마, 아빠는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북한에게 핵은 유일한 생존수단입니다. 어차피 배는 고파도, 중국이 굶어죽게는 안 둡니다. 그냥 죽도록 배가 고플 따름이에요. 중국이 원하는 건 북한이 죽도록 배가 고파, 창자가 비틀어져서 미라가 되더라도 그냥 살아남는 겁니다.
여태까지 딱 그렇게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중국과 일본은 죽이 딱 맞는 베스트 프렌드였습니다. 6자회담이란 틀은 그래요, 남북한을 두고 아무 것도 희생하는 일 없이 옆에서 훈수만 두면서 남한은 삥뜯기고, 북한은 삥뜯고 살게 만들어 영구분단시키고, 필요할 때 이리저리 써먹는 데스 게임.
이러니 중국과 일본은 열심히 육자회담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헌데 제가 말씀드렸죠?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ilitary&wr_id=649783
최근 대한민국 행정부의 움직임은 그래서 주변국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 겁니다.
"나 사장하고만 얘기할 거니까, 직원 꺼지고, 옆집 가게 사장 꺼져."
한반도의 평화 혹은 전략을 가지고 대화는 미국하고만 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한 것입니다.
보다시피 정권초부터 일어난 북한과의 협상 이벤트를 모두 보시면. 주변국을 모두 제낀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북한과의 정상회담 정보를 얻지 못했고, 중국조차도 그랬습니다. 철저히 한국과 미국, 북한 이 3자만이 긴밀히 움직였습니다.
최근 북한과의 유화적 움직임은 유독 한국과 미국이 분주합니다.
일본은 훼방 놓느라 바쁘지만, 미국이 쌩을 까고 있고.
중국은 뒤늦게 끼어들려고 바쁩니다.
헌데 둘이 하든 말든, 기차는 바쁘게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미국이 왜 이런 한국이 깔아놓은 판에 기꺼이 들어온 걸까요?
물론 미국에게 이익이 되니까 들어왔을 겁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왜?
한국이 강해져서? 북한이 강해져서?
결론을 말하자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유용해져서 그렇습니다.
물론 일본이란 나라 크기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 국뽕에 쩔어서 미쳤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헌데 잘 생각을 해봅시다. 미국의 입장으로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보자고요.
- 북한의 핵전력을 무력으로 제재로 제거할 수 있는가? 없다.
- 한국군을 북한과의 분쟁으로 소모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
- 한국이 생산하는 전략자원을 단시간에 대체할 수 있는가? 없다.
- 한반도 분쟁으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
자,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는 그냥 조용히 있어주면 되는 동네였습니다. 쓸데 없이 힘빼고 싶은 동네가 아닙니다. 헌데, 최근엔 조건이 더해졌습니다. 한국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미국 자신의 패권질서 확보에 필수적 존재가 된 겁니다. 현재 한국은 반도체, 2차전지라는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분쟁이 생긴다면 그저 석탄, 천연가스만으로도 전세계가 휘청이는 마당에 서구경제권은 침체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수가 생깁니다. 고로 한반도는 어느때보다 안정화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핵을 고도화시킨 북한을 피해없이 소각할 능력도 없습니다.
한국에게 건 쇠사슬을 하나씩 풀어주는 것 역시 이런 미국 자신감의 상실과 연관이 깊습니다.
유사시라도 가능하면 한국이 단독적으로 최소한의 피해로 북한을 소거하고, 흡수하는 것이 미국에게 유리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무장은 고도화하고, 첨단화할 수록 미국에겐 유리합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몇 가지 메시지가 전해졌을 테고, 미국은 다른 궁리도 시작합니다.
분명히 한국은 명백한 메시지를 전했을 겁니다.
"한반도의 안정화 이후에야 한국군의 대외 군사활동이 보장될 수 있다."
현재 유럽군은 해체 상황이고, 러시아 하나를 상대하는 데도 벅찹니다. 지금 미국은 없는 군사력까지 쪼개서 유럽을 지켜주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른 양자간 마찰은 여러분들 역시 다들 아실 겁니다. 현재 미국은 자신만이 아닌 동맹국의 기여가 간절한 상황인데, 가장 유력하고, 중요한 후보가 한국입니다.
한국의 군사력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투사시키려면 결론적으로 북한이란 존재를 해결해야 합니다.
지도에서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손을 잡던가.
그럼 미국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성이 적을까요?
누가 말대로 북벌론, 소중화론처럼 북한은 사악하니까 무조건 지도에서 지워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제재를 할까요? 미국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고요.
제재를 계속하면, 한국에게서 어떻게 군사력을 빼낼 겁니까? 핵무장한 북한이 있는데, 그건 모르겠고 군사력 빼달라면 빼줄 건가요? 턱도 없는 일이죠? 그렇다고 전쟁을 택한다? 그럼 가뜩이나 소중한 한국군이 소모되고, 전략자원 공급에 타격이 오잖아요? 군사력, 경제력 모두 타격을 받아 중국에게 뒤집어지는 꼴이 됩니다.
그 꼴을 미국이 보겠습니까?
지금 미국한테 남은 선택지가 하나뿐입니다.
북한이 이뻐서, 미국이 실은 빨갱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북한하고 정전협상 맺고, 한국과 북한을 경제적으로 연결시키고, 결국 자신과도 연결시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밥숟가락 놓을 수가 없어 말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핵이 없어서 망한게 아니고, 우크라이나가 핵이 있어 영토를 빼앗긴 게 아닙니다.
이들 모두 내부에서 무너졌습니다. 소련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졌고, 이건 미국의 의도한 것입니다. 경제전쟁에 패배해 붕괴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내부 친러파 국민에게 의해 영토를 뜯겼습니다. 핵이 있었다 한들 러시아에 핵가지고 위협이 먹혔겠습니까?
그러니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을 활용하고, 동시에 한반도를 안정화시켜, 전략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꾀하자면. 실질적 수단은 종전협상과 함께 북한을 미국의 영향권 안에 집어넣는 길 뿐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고, 궁극적으론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예전같은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일본이 미국 입장에서 맘에 들까요?
이러니 미국이 일본 생까는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해군이 베링해협에서 얼쩡거리며, 순항훈련을 하는 게 우연이라고 보시나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ilitary&wr_id=646484
이미 남방 항로는 미국이 패권을 가지고 있고, 유리한 형국입니다. 만일 중국이 시비를 건다면 사실 한반도 근해에서 걸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북극항로의 관문인 부산을 손에 쥐지 않고선 북극해 일대에 해상가스전 지분을 얻는다쳐도 안전히 가져올 수가 없고, 유사시엔 물류 역시 한반도를 손에 쥔 세력에게 끊어질 테니까요.
물론 기존 항로가 있는데 무슨 북극항로 이야기냐, 할 수 있는데. 경제는 효율성입니다. 중국이 상품을 주로 수출하는 유럽시장, 북미시장 역시 북극항로에 연결될 것이고, 곧 물류 흐름이 자연스레 움직일 겁니다. 물류의 흐름은 중국 혼자 억지를 부린다고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자, 미국은 남방항로와 북방항로 모두를 자신들의 패권 하에 넣고자 합니다.
남방항로의 핵심파트너가 싱가폴이라면, 이제 북방항로의 핵심파트너는 한국이 될 겁니다.
동북아 지정학적 가치만 아니라, 세계 양대 해로가 될 북방항로로 봐도 한반도, 특히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넘사벽의 위용을 갖게 될 겁니다.
즉, 미국에게 있어 한국은.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상입니다.
한국은 이미 일본의 가치를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지금 당장 1인당 GDP가 어쩌구 저쩌구가 아닙니다. 미래를 보고, 실질적 가치를 살필 일입니다.
미국이 행정부가 바뀌어서, 착해서, 평화를 사랑해서 종전협상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다 합당한 이유가 있고, 미국에게 이익이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